"정말, 이 여행 그만둬야할까?"
인도의 북쪽 라다크 지방을 여행하던 중 자신에게 되묻던 질문이다.
난 이 여행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했으며 그 모든 것들에서 그와 다른 모든 것을 배워가던 중이었다.
이제야 하나의 인격을 가진 주체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있었는데, 그런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순전히 아이들 때문이었다.
인도 라다크 지방 판공초와 누브라벨리로 유명한 레(Leh)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작은 마을 투르툭(Turtuk)
인도-파키스탄 3차 전쟁에서 인도가 파키스탄 소유이던 지역을 빼앗아온 곳이다.
2010년에 여행자에게 개방되기 시작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이 2013년이니 고작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도로 1,2,3순위가 몰려있고, 험하기로 유명한 인도 라다크 지방의 도로이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가 다녀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난 때묻지 않은 아이들을 만나고 그 꼬마들에게서 분명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아니, 배운 것은 있었다.
분명 난 그 꼬마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쪽이지만 말이다.
난 본인 사진을 찍히기 싫어하는 것 만큼 사람들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함부로 찍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내가 사람들 찍는 경우는 단 두가지다.
찍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허락을 받거나, 피사체가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
그 외엔 없다.
그리고 투르툭(Turtuk)의 아이들은 항상 내게 먼저 다가와 사진을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포토??" 라고 귀엽게 말하면서 말이다.
좋다.
귀여운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는데 거절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난 필름카메라도 아니고,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셔터를 누르는데 돈도 들지 않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난 뷰파인더를 통해 그들의 눈을 바라봤다.
그런데 우습게도 조금 무서워지 시작했다.
작은 산골마을에, 개방된지 3년밖에 되지 않아 분명 때묻지 않아야할 아이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눈에서는 기묘할 정도로 두려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랑스럽게 웃음 지을거라던 내 예상은 단박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몸을 추스리며 셔터를 눌러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때? 이게 너야. 예쁘지?"
난 싱긋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머리속에서는 어떻게 이 사진을 인화해 꼬마들에게 선물할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 때 아이들이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Give me money"
"Give me one pen"
"Give me this"
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우두커니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이미 꼬마들은 내 사진기 넥 스트랩을 잡고 징징거리고 있었으며, 계속해서 돈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다.
'씨팔 이게 뭐지?'
난 순박하고 조용한 이 마을에 사는 꼬마들이 예상치 못하게 돈을 달라고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은게 아니었다.
이 곳 현지인들은 제대로 영어를 할 줄 모른다.
분명 그 단어와 문장을 알려준 사람은 3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이 마을을 다녀간 몇 되지도 않을 여행자들이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것이 아니더라도, 여행자들이 이 곳에 오지 않았다면 꼬마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정말, 이 여행 그만둬야 할까?"
대체 여행이란게 뭔지 정의를 내릴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머리가 핑핑 돌았다.
'꼬마들을 이렇게 만든건 여행자란 가면을 쓴 또 다른 나다.'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짜증이 났고, 난 꼬마들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는 계속해서 게스트하우스가 지어지고 있었다.
고작 1,000명은 살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고 외진 마을은 끊임없이 공사중이었다.
인도의 자본이 들어오는 것이다.
여행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해 이 작고, 멀고, 아름다운 마을에 계속해서 호텔을 지어대는 것이다.
"정말, 이 여행 그만둬야 할까?"
난 여행자라는 가면을 쓴 채,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마을을 점차적으로 훼손시키고 있는 편에 서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누군지 알아야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사실 난 아직 답을 내릴 수 없다.
분명 여행의 순기능도 있겠으나, 이와같은 부작용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가서던지, 상대방은 반대편의 목적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것은 비단, 여행의 부작용이 아니다.
또 하나의 법칙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속에나 나올 법한 작고 예쁜 마을에서 마냥 행복할 수 없었다.
돈을 쥔 자들과 그 것 조차 모르던 자들. 그들이 서로를 향해 말하는 방법.
그 밖에 여행이 가질 수 있는 부작용에 관해.
난 투르툭이란 마을에서 또 다른, 그 밖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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