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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다섯째 날

by 빛의 예술가 2017.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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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 [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결정

2017/05/11 - [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첫째 날

2017/05/18 - [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둘째 날

2017/05/24 - [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셋째 날

2017/05/25 - [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넷째 날



[마지막 날, 아침]

트래킹 마지막 날 아침.

벌써 몸은 이 곳, 히말라야에 적응한 듯 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어났으며, 문을 열자 보이는 울창한 산과 나무, 흐르는 강과 짙푸른 하늘이 당연한 풍경처럼 보였다.

어제 우리는 10시간 가까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서 뉴 브리지(New Bridge)까지 걸어왔기 때문에, 

오늘은 대략 4시간만 걸어가면 ABC트래킹의 시작과 끝인 나야풀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트래킹 뒤풀이는 포카라에서 하자. 창 마시면서"


그렇게 우린 마지막 코스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7시 50분 뉴브리지를 출발하여, 나야풀에 도착하니 12시였다.

조금 더 빨리 걸을 수 있었지만, 당분간 이 곳을 볼 수 없을거란 생각에 조금은 느릿느릿 딴청도 피워보고 이제 트래킹을 시작하는 트래커들에게 인사를 하며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마지막 날은 내내 날씨가 쾌청했는데, 심지어 내려가는 길에서 줄곧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의 만년설이 보였다.

'이게 원래 시작부터 보이는 모습이었구나.'


우리가 오를 때는 사흘 내내 비가 내리고, 사방이 물안개에 휘감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정경이 마냥 부럽지는 않았다.

이전 여행기에서 이미 밝혔듯이, 오히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조금 더 극적이어서 감동도 컸기 때문이다.



나야풀에 도착해서는 포카라까지 가는 로컬 버스를 탔다.

요금은 110네팔 루피.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지막 날, 점심]

로컬 버스가 포카라에 도착한다.

이 도시의 기묘한 점은 트래킹 전과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


트래킹 전의 포카라가 조용하고, 친절하며, 안락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면, 트래킹 후의 포카라는 조금더 역동적이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 곳은 실제로 변하지 않았다. 

아마 변한 것은 '본인'일 것이다.



마지막 날의 점심은 포카라에서 먹었다.

이미 우리의 트래킹은 끝난 것이다.

트래킹 시작 전 강연이가 소개해준 '소비따네'란 음식점에서 ('소비따'가 주인 이름이다.) 점심을 먹었는데,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네팔 주인이지만.

한국 요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미스테리한 음식점이었다.


우린 점심을 먹고 각자 숙소에서 할 일을 한 후 저녁에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약속한다.

물론 5일 전 주문해둔 창은 잊지 않는다.


"사장님! 나마스떼"

"안녕하세요"

"5일 전에 말씀드렸는데, 오늘 저녁에 창(네팔식 막걸리) 마실 수 있죠?"

"네 저녁에 오세요"

"알겠습니다. 이따 뵈요"



우스운 얘기를 들었다.

이 곳에서 밥을 먹던 중 몇몇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 어떤 여자는 이런 말을 했다.


"여기 사장님(네팔인)이 우리 엄마보다 김치 볶음밥 잘하는거 같아 ㅠㅠ 허어어허엉 맛있어"



[마지막 날, 저녁]

우린 산촌다람쥐에 맡겨둔 짐을 찾았으며, 각자 다른(하지만 한 골목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간다.

난 두 개의 배낭을 풀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눕는다.

웃음이 났다.


그러던 중 핸드폰이 생각났다.

"참, 핸드폰"


5일. 생각보다 그리 많은 연락은 오지 않았다.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에게는 출발 전날 이미 작별인사를 해 둔 터였다.

핸드폰을 10여분간 쳐다보다 흥미를 잃어버린다.

5일간 웹에 접속하지 않는다 해서, 세상이 전복될 만한 사건은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난 그보다 운동화가 신경쓰였다.



ABC트래킹 내내 나와 함께했던 내 운동화는, 본연의 샛노랑을 잃어버리고 거무튀튀하게 변색되는 중이었다.

중국에서 이 운동화를 처음 신고 조깅을 하던 중, 회사 상사를 만났을 때 병아리 같다며 귀여워해주셨는데.


노랑 병아리가 트래킹 한번에 까망 토종닭이 돼버렸다.


난 어떻게든 병아리를 살리기 위해 세탁소로 갔다.

"이거 세탁 좀 해주세요"


네팔인 세탁소 주인은 내가 내민 운동화를 마치 폭탄인양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물론 소금이 묻고 진흙과 비에 절어있긴 하지만, 내 소중한 운동화를 그런 눈으로 대하는것에 조금 맘이 상했다.

해서 한 마디 덧붙인다.


"꼭 다시 노랗게 만들어 주셔야되요"


그렇게 내 운동화를 런더리 샵에 맡기고 숙소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침대에 눕는다.


'뭐 운동화 신고도 히말라야 올라갈 수 있네'


그리곤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마지막 날, 밤]

강연이와 난 그날 밤 약속대로 소비따네에서 만난다.

주인은 약속대로 네팔식 막걸리인 '창'을 많이 준비해 두었으며, 우린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주문해 두고 창을 마시기 시작했다.

트래킹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다음은 어디로 여행을 가는지 묻기 시작했다.


네팔 비자가 며칠 남지 않아 녀석은 당장 내일 포카라를 떠난다고 말했다.

나는 이 곳이 마음에 들어 하루 더 머물고, 모레 인도로 출발할거라 얘기했다.


우린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하고 (트래킹 내내 같이 붙어있었는데, 카톡 아이디조차 몰랐다) 언젠가, 길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네팔 전통 술안주 SUKUTI 수쿠티, 돼지의 맛에 닭똥집의 식감 이다. 창과 함께 마시면 일품]



술이 조금 오르자 녀석이 내게 그 얘기를 했었다.


"형, 전 아직도 뭘 해야될지 잘 모르겠어요"


철학적인 질문이다.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조금 애처롭지만 나이의 앞자리수가 3이나 4인 사람들도 꽤나 많다.

더욱 비참한 사실은 나는 그렇지 않을거라 자위하며 살아가는 그런 부류의 존재다.


난 그런 얘기를 해주며 덧대어 말했다.

너나 나나 여행을 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 답을 찾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까지 함께했던 ABC트래킹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우린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한국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8천 미터급 산의 절반 이상을 올랐었다.

한 편으로 그 일은 인생의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냥 높은 산 중턱까지 다녀온 거다.


그리고 당연히 산 한번 올라갔다 해서 네가 뭘 하고 싶은지, 존재 의미나 자아 성찰따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자꾸 쌓이고, 그 상황에 대처하는 본인의 모습을 보다보면,


분명, 네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을거라.

고 얘기해준다.



술이 돌았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당연히 당신은 당신이다.

그리고 당신의 물음에 대한 해답은, 당신만이 찾을 수 있다.


사실 나도 아직, 

대체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런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행동하고,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고민하며 점점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난 이런 멋진 고민을, 굉장히 낭만적인 장소에서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 또 한번 웃음이 났다.


취한게 아니다.

분명 취하지 않았는데, 킥킥 웃음이 터져나왔다.







안나푸르나(ABC)트래킹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