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0 - [다같이 돌자 지구 한바퀴/■아시아]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결정
2017/05/11 - [다같이 돌자 지구 한바퀴/■아시아]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첫째 날
[6:30]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30분이었다.
지저귀는 새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 소리에 지금 내가 어디서 잠에 깨어났는지 상기할 수 있었다.
'여긴 히말라야다.'
'그리고 난 안나푸르나로 가고 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좌측 하단 파랑점이 현 위치]
어제 줄곧 여기까지 올라왔고, 그리고 또 줄곧 올라갈 차례다.
'오늘은 어디까지 올라가야될까?'
밖으로 나가 확인을 하기 위해 문을 열자마자 어마어마하게 선선한 공기와 희뿌연 안개, 그리고 흩뿌리는 내리는 비가 내 몸을 적셨다.
기분 좋은 비였다.
가만히 소리를 듣고, 산의 냄새를 맡고, 온 몸으로 선선한 공기를 느낀다.
그 지점부터 희뿌연 안개에 가려져 내가 어디까지 볼 수 있고 또 어디서 부터 볼 수 없는지는 중요치 않게 되었다.
대자연 앞에 가치판단이란 무의미한 것이었다.
'오늘, 어디까지 가야되는진 모르겠지만, 밥 부터 먹자'
[환복]
아침으로 오믈렛과 밀크티를 마신 후, 숙박비 그리고 어제부터 먹었던 밥값을 정산한 후 다시 트래킹을 준비한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우리가 출발할 때도 쉬지않고 내리고 있었다.
7:39분 둘째날 트래킹 출발
우린가 어제 만났던 거머리가 입문 코스라면, 오늘부터는 제대로 된 거머리 AREA(구역)이 펼쳐진다.
걱정과 달리, 거머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게 아니라 길 옆에 무성히 자라나있는 숲이나 나무 잎사귀에서 출몰한다.
(아주 가끔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큰 나무, 높은 수풀 주위를 헤쳐나갈 때)
소금을 물에 적셔 신발과 양말에 녹여내고,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건 문제 없었지만 가장 끔찍했던 기억은 이것이다.
어제 트래킹을 하며 입었던 옷을 그대로 다시 입어야한다는 것.
우린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옷을 많이 가져가지도 않았고, 설혹 빨래를 한다고 해도 이런 날씨에 마를 일이 만무했다.
뽀송한 잠옷(이라고 해봐야 다른 셔츠)을 벗고, 어제 입었던 반팔 셔츠를 입을 때의 끔찍함.
롯지(Lodge)의 주인 부부는 '으악' 소리를 지르며 옷을 갈아입는 우리 모습을 보며 웃었다.
젖은 옷이 내 피부와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땀냄새도 났다.
그 축축한 감촉이 싫어 그냥 옷을 다시 갈아입을까? 고민하던 찰나, 주인 부부가 그렇게 말해줬다.
"그게 현명한 거예요, 지금부터 비 맞으며 30분만 걸어가면 똑같아져요."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었다.
롯지(Lodge) 주인 부부의 말이 맞았다.
쉼 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진흙길을 걷다보니 지금 입고 있는 옷에 대한 불만이 사라졌다.
내가 어제부터 입고 걸었던 옷인지, 오늘 처음 꺼낸 뽀송했던 옷인지, 그건 전혀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이 곳에선 30분만 걸어도 똑같아진다.
[안녕하세요]
조금 걷다보면 그치지 않을까? 예상했던 날씨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쏟아졌고 길은 진흙으로 변모했다.
여전히 이 곳을 오르는 사람은 없었으며, 가끔씩 하산하는 팀, 그 밖에 원주민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는다.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공기는 상쾌했으며, 내 눈에는 거머리가 보였다.
다리에 붙어있다.
"아오~~~거머리!!"
소금 신발+양말로 무장한 나인데, 대체 어떻게 내 몸을 잘도 기어오르는지 의문이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약 4마리의 거머리에게 헌혈을 했고, 그때마다 난 그들에게 소금을 뿌리는 걸로 영화 관람권을 대신했다.
[거머리의 습격에서 피하기 위해 신발과 양말에 소금을 녹여 바른다]
이 곳의 인사는 '나마스떼'다.
인도와 같은 인사법이며, 양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약간 숙이며 '나마스떼'라고 말하는 것도 흡사하다.
울울창창한 이 거대한 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린 꼬박꼬박 인사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장면들은 꼬마들이다.
꼬마들에게 '나마스떼'라고 인사하면 처음에 경계하는 눈으로 우릴 보다 이윽고 작은 두 손을 모으고
'나마스떼'라고 응답한다.
강연이와 난 그 모습이 귀여워 만나는 꼬마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곤 했는데, 조금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Hi~ Hello~"
로 대답하는 꼬마들이 그런 부류였다.
그렇게 그들에게 길을 묻고, 계속해서 산을 오르던 중 인사말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어제부터 한국 사람은 커녕, 산을 오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우린 좌우로 고개를 돌린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강연아 너가 안녕하세요 했니?"
"아니요. 제가 왜 갑자기 안녕하세요라고 하겠어요ㅋ"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자 산 비탈 위 사람이 보인다.
네팔 원주민이다.
그럼 대체 누가 우리에게 인사를 한거지? 잡담을 하고 있던 찰나, 다시 한번 그 소리를 듣는다.
"안녕하세요"
이번엔 우리 모두 네팔 사람을 곧장 바라본다.
[초대]
이미 우린 산비탈을 올라가 목소리의 주인공과 마주하고 있었다.
"한국말 하시네요?"
"네 예전에 한국에서 일했었거든요."
"아 그렇구나~ 우리 한국 사람 처럼 생겼나요?"
남자는 애써 내게서 눈길을 돌리고 강연이를 본다.
"네~ 그럼요"
아무래도 난 아닌가보다.
[커피를 대접받고 기뻐하는 한국인(?)]
우린 그 남자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롯지(Lodge)도 아니고 레스토랑도 아닌 일반 가정 집이었다.
음식점은 아니지만 달밧을 판매한다는 말에 우린 달밧을 주문한다.
부엌에 큰 화덕이 있었는데, 이 곳에선 음식도 할 수 있지만 옹기종기 모여앉아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속의 꼬마는 시큰둥한 듯 끝내 우리에게 '나마스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를 위한 달밧 요리가 시작되었다.
어제도 부엌으로 가 도둑 고양이처럼 조리법을 훔쳐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달밧을 요리하는 걸 목도하는 건 처음이다.
비에 쫄딱 젖은 새앙쥐 같은 꼴로, 따뜻한 불을 쬐고 있노라니 나른해지며 행복한 감정이 들었다.
달밧 특유의 향이 후각까지 간지럽히자 우린, 이 공간에 점점 빠져들었다.
[우리에게 말을 건 주인공의 부인]
[완성]
그 곳에서 달밧을 맛있게 먹고 시계를 봤다.
12:30
얼떨결에 초대를 받고 들어간 곳에서 우린 점심식사를 한 셈이다.
이런 우기에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냐는 우리의 질문에 남자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아니오"
이런 날씨라도 ABC에 오르면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느냐고 다음 질문을 한다.
남자는 현명하게 대답한다.
"그건 올라가 보기 전엔 모르죠"
[우중산행]
비는 아직도 계속된다.
점심을 먹었으니 힘을 내서 계속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걷는 내내 이런 어마어마항 풍광이 펼쳐지는데 사진만으로 그 느낌을 전달하기 힘들겠지만, 여하튼 이렇다.
"강연아 너 제주도 가봤니"
"네 가봤죠"
"형이 수학여행 때 천지연 폭포를 봤거든, 그런데 저 산에서 흘러내리는 이름없는 물줄기가 그 폭포보다 3배는 커 보인다"
이 곳에는 폭포라는 이름도 붙지 않았지만,
계곡을 넘어 산비탈, 골짜기로 쏟아져 내리는 물이 마치 폭포인양 거대한 소리를 두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뒤를 돌아보자 '꽤 많이 걸어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인가도 드물고, 원주민도 쉬이 찾을 수 없었다.
비가 많이 내려 가끔 위험한 장면도 연출 되었는데,
그리 많진 않지만 이런 구간도 ABC 트래킹 구간에는 존재한다.
다리를 수평으로 찍어 그리 위험해보이지 않지만, 사실 저 다리는 아래와 같이 생겨먹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내 다리]
트래킹화를 신고 있는 강연이와 달리, 난 러닝슈즈를 신고 계속해서 산을 올랐는데
바위나 진흙길을 걸을 때면 비에 젖어 쭉쭉 밀려 휘청거릴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 다리는 사정이 좀 달랐다.
물을 많이 먹은 나무가 도중에 부러질 수도 있었으며, 부러지지 않더라도 내 신발 밑창이 미끄러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강풍이 불어닥쳐 다리 밑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고, 후들거리는 내 다리를 주체하지 못해 떨어질 수도 있었다.
계속 내린 비로 계곡은 어마어마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우린 물이 쏟아지는 그 굉음에 압도당해 하염없이 나무 다리를 바라봤다.
물론 트래킹화를 신은 용감한 강연이가 먼저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나무 다리의 중간쯤 다다랐을까 갑자기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생각한다.
'난 이 급류에 빠진 강연이를 구해낼 능력이 없다. 줄을 찾자"
그렇게 허둥대고 있을 찰나 강연이는 몸을 푹 숙여 무게 중심을 팔과 다리로 분산시켰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날렵한 동물처럼, 녀석은 조심스럽게 나무 다리를 끝까지 건넌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여자였으면 분명 저 녀석에게 반했으리라'
그 멋진 모습에 용기를 얻어, 운동화를 신은 나는 부들부들거리며 힘겹게 나무 다리를 건넌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Lost]
사실 우리가 올라오던 중 상점을 하나를 지나쳤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그 곳에서 한국 라면을 판매하고 있었다.
달밧은 맛있고, 리필도 가능하단 장점이 있어 우린 매일같이 그 음식을 섭취했지만 그 상점에서 라면을 보는 순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거 먹고 싶지않아?"
물론 상점을 지나쳐 계속 걸을 때, 이미 라면은 한봉지 씩 우리 배낭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 저녁 칼칼한 라면을 먹을 생각에 힘을 내서 걷는다.
그런데 점점 인적이 드물어지고,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형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거죠?"
무게를 줄였다지만 배낭은 무시못할 정도로 무거웠으며, 길은 미끄러웠다.
비라도 그쳤으면 좋으련만, 외려 아침보다 더욱 맹렬한 기세로 몰아치고 있었으며 사방은 안개로 자욱해 우리가 맞는 길을 선택했는지 나도 궁금해졌다.
그래,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길을 물어볼텐데.
악재는 겹치는 걸까? 그 모든 상황이 그 시간, 그 곳에 있던 우리에게 닥쳤다.
원주민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표지판부터 찾아보자"
그렇게 계속해서 걷던 중 우린 표지판을 발견한다.
'구르중, 촘롱.. 고레빠니? 여긴 어디지?'
뒤이어 원주민도 나타난다.
촘롱으로 가고 있던 우린 '촘롱 촘롱'이라고 촐싹거리며 지명을 말했는데, 원주민은 유창한 영어로 화답했다.
"너희 길 잘못 들었어, 반대로 다시 가야해"
아마 잘못된 길로 50여분간 왔던 모양이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선 대략 30~40분 정도 더 걸어야한다.
물론 손해본 1시간 반과는 별개로, 거기서 다시 촘롱을 향해 걸어야한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우린 슬피 울며(사실 울진 않았다) 빠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포카라에서부터 사온 초코바를 하나씩 나눠먹는다.
"강연아 힘내자, 뭐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지"
내 말에 녀석은 웃으며 화답한다.
"네! 그럼요"
녀석의 얼굴을 봤다.
진심이었다.
생각했다.
'내가 여자였으면 분명 저 녀석에게 반했으리라'
[지도는 이렇게 생겨먹었다. 우린 강을 건너자마자 길을 잘못 들었다]
[히말라야 롯지]
우린 계속 걸었다.
계속 걷는 우리처럼, 비도 계속 내렸다.
이번엔 원주민이 알려준 올바른 길로 한 걸음, 한걸음 내딛기 시작한다.
그렇게 촘롱-시누와-뱀부-도반을 지나 히말라야까지 가기로 결정한다.
아직 젊은 강연이는 두말할 것도 없지만, 나 역시 그리 떨어지는 체력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걱정하던 고산병은 아직 둘 모두에게 오지 않았으며, 내리는 비는 오히려 우리의 땀을 식혀주는 소중한 존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비는 소중한 존재에서, 좀 그만 내렸으면 하는 존재로 바뀌기도 했고
이윽고 온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우의까지 벗고 비를 맞으며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목적지인 히말라야 마을이 보였다.
19:20
둘째 날,
대략 10시간 가까이 걸어온 셈이다.
옷을 벗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니 몸 곳곳에 거머리가 붙어있거나, 물고 튄(?) 흔적이 보였다.
놈들을 하나씩 떼어내니 피가 흘렀다.
모기에게 물렸을 때와는 딴판이다.
정말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하지만 큰 통증은 없다.
오히려 피가 흐르는 그 모습이 오늘 10시간 동안 맞은 비처럼 느껴져 우스웠다.
우린 그 곳 식당에서 한국인 3명으로 꾸려진 ABC팀을 만났는데, 빵과 볶음면을 먹는 그들은 우릴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랬다.
우리에겐 신라면이 있는 것이다.
[히말라야 마을, 히말라야 롯지에서 만난 한국인 3명]
오늘 하루 10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걸은 탓에 발은 쭈글쭈글해졌고,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지만, 우린 히말라야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무척이나 즐거웠다.
얼마나 즐거웠냐면, 이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그 정도로 즐거웠다.
[길을 잃고, 다시 찾다]
ABC트래킹.
지각 출발을 했던 첫째 날에 이어, 길까지 잃어버린 둘째 날.
저녁 식사를 하고 강연이와 그 얘기를 했다.
"우리 포터나 가이드를 고용했으면 길을 잘못들진 않았을텐데 그치?"
그리고 놀랍게도 녀석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모범 답변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이게 더 재미있잖아요"
그랬다.
포터와 가이드를 고용한 후 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연히 그 쪽이 더 안전하고, 즐거운 트래킹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난, 나처럼 생겨먹은 동행을 만난 것이다.
직접 지도를 보고 방향을 설정하고, 모르겠으면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며, 길을 잃기도하고, 잘못된 길로 가다 지름길을 찾아내기도 하는.
누군가가 보기에 엉망진창이라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우리의 트래킹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운 좋게 녀석도 좋아하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방식 말이다.
밤이 되어 침대에 몸을 뉘인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실 난 오늘 길을 잃었을 때, 진짜 트래킹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살아오며 몇 번 말해보지 못했던 그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 행복하다"
'세계일주 여행기 > 아시아(A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넷째 날 (2) | 2017.05.25 |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셋째 날 (2) | 2017.05.24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첫째 날 (1) | 2017.05.11 |
(여행기/안나푸르나) ABC트래킹 결정 (0) | 2017.05.10 |
(여행기/안나푸르나) 생초보의 안나푸르나 트래킹 (1) 준비물 편 (5) | 2014.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