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네팔) 신과 자연, 사람이 살아가는 나라. 네팔

by 빛의 예술가 2014. 2. 16.

마니차


처음 마니차의 존재를 깨달았던 것은 차마고도에서 였을 것이다.


중국 운남성을 여행할 무렵 생소하게 생긴, 하지만 그리 특별해 보이지도 않던 마니차에 내 눈길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었고 금시에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어디에선가, 마니차를 발견했던 기억이 있지만 정확한 시점도 장소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답답했다.


'우리나라에는 마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네가 잘못 본 것이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속 시원하겠지만, 그 존재 유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도 부정할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것이 정론이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해 숙소 주변을 배회하던 중 대형 마니차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그 때와 조금 달랐다.


마니차 국내 존재 유무 증명의 과정 선상에 마니차의 유래와 의미따위를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니차는 거대한 경전이라 할 수 있다.


부처의 가르침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나, 시간이 모자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원통형으로 생긴 마니차를 손으로 주르륵 굴리며 기도하면 그 행위 자체가 불교 경전을 한번 통독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즉위진간


티벳(Tibet)은 강대국이었다.


2014년 현재, 당신들의 기억에 강력히 각인된 그네들의 모습은 군사력, 경제력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최약체라는 사실과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중국에 강제로 점령되어 하나의 '자치구'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있겠다. 인도에 망명을 간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갸초 혹은 명상에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틱 낫한 등의 유명인사가 존재하며 하나같이 인도의 간디처럼 비폭력 그리고 평화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 티벳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강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중국의 수도까지 창과 칼을 들고 침략하던 전투 민족이었다.


7세기 경 그들의 일부가 현재의 네팔 히말라야 산맥쪽으로 이주를 시작했고 현재 네팔(Nepal)의 조상들을 티벳과 동일시 하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리고 티벳 불교가 새로운 나라 네팔에 퍼지는데는 1세기도 채 걸리지 않는다.


결국 현재의 네팔 불교는 티벳 불교와 그 본을 함께 하고 있으며 지금 이야기 하는 마니차의 존재 역시 그런 이유에 기인한 것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읽을 수 없거나, 시간이 모자라 읽지 못하는 경우 이 마니차를 손으로 굴리며 기도를 한다.


하여 주변에는 마니차가 돌아가는 경쾌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특유의 소리는 고즈넉한 산사 어느 막새에 위태롭게 붙어있는 풍경이 내지르는 평온한 울림처럼 내 마음속에 서서히 침잠하는 중이었다.




어린 소녀가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채 신기하게 생긴 마니차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직 키가 작아 스스로는 마니차를 굴리기에도 벅찬 어린 소녀에게 할아버지는 조금 더 높은 세상, 그리고 부처의 가르침을 읽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눈이 시릴정도로 아름다워 한동안 넋을 잃고 그 모습만 바라봤다.


그들이 떠난 후에도 아직까지 회전을 멈추지 않는 마니차를 바라보며 그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이 가득한 평온한 하루가 깃들기를 염원했다.








셰르파


처음 고층건물에 크게 전시된 이 아웃도어 브랜드의 이름을 보고 한참 동안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다.


그 브랜드의 이름은 셰르파(Sherpa)였다.


산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같은 사람들도 셰르파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그 이름으로 된 브랜드가 존재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셰르파(Sherpa)는 '산악 등반 안내인'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머리 속에서 셰르파를 휘황찬란한 산악 장비를 몸에 두른 위풍당당한 산악인 옆에서 터벅터벅 걷는 초라하고 왜소한 현지인으로 그려버린다.


그런데 그네들의 이름을 딴 브랜드가 있다.


'셰르파'


마케팅의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이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은 뻔하다. 


셰르파란 이름의 브랜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류가 될 수 없다.


이유는 잘못된 네이밍(Naming)에서 기인한다.


수많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유명 산악인을 모델로 기용하여 이미지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작아보이는 셰르파라는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포지셔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셰르파? 그거 뭐 시다같은거 아냐?'


(잭 트라우트가 이 개념을 설명한다면 나보다 쉽고 자세하게 알려줄 테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의 저서 탐독을 추천하는 바이다.)







하지만 우리는 셰르파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


크게 잘못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셰르파는 그 정도로 단순한 작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산행 준비는 물론, 루트 선정에서 부터 기후 관찰, 시간 안배, 정산 공격(난 이 단어를 참 싫어한다) 전략 설정 등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더불어 웬만한 산악인보다 강한 폐활량과 정신력을 자랑하며, 그들의 뛰어난 직감은 고산에서 그 빛을 발하게 되는데 어디서, 언제쯤 산사태가 일어날지 그 위치를 알아맞추는 셰르파가 있는가 하면, 순간적으로 다가올 위험에 초인적인 감각을 이용해 대비하는 기술을 발휘한다고 한다.


이 쯤 되면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세계 첫 번째로 등반했다고 주장하는 힐러리경만큼, 그의 옆에서 정상을 밟았던 텐징 노르게이라는 셰르파의 위대함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셰르파는 티베트어인데, '동쪽에서 온 사람들' 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티벳(Tibet)에서 온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마니차와 함께 그들은 강성대국이었던 티벳에서 함께 건너온 존재인 것이다.




언젠가 서구인들 중심으로 쓰여진 이 역사가 다시 쓰여질 그 때가 오면, 우리가 셰르파(Sherpa)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뀔 테다.


더불어 셰르파(Sherpa)라는 앰블럼이 각인된 윈터기어(Winter gear)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중,고등학생을 쉽게 만날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윈터기어가 교복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단상


이건 내가 네팔에 발을 딛고 있던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가는 글이다.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서 읽은 것들을 써내려가는 글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끊어내려가던 도중, 당시 촬영했던 사진들을 보면 혼란한 마음을 추스릴 수가 없다.


나는 사진을 끊어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기록이며,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생각을 잘라 써내려가는 글에 사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어울리지 않음에 대한 조화가 네팔(Nepal)이란 나라에 묻어있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하지만 네팔의 이발사는 제 머리를 깎을 수 있다.


멀찍하게 떨어져 위태롭게 걸려있는 작은 거울을 바라보며 빗과 가위를 이용해 머리카락을 다듬는 그 이발사를 보고 네팔의 오해에 대해 말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어쨌든, 중은 제 머리를 못 깎을 지 몰라도 네팔의 이발사는 제 머리를 깎을 수 있다.


우리들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내가 아는 짧은 지식으로 해석하려 해봤자 소용이 없었던, 거기에 덧대어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이 훨씬 많았던,


신이 살아가고, 사람이 살아가고 또 자연이 살아가는 나라. 


네팔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