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이다.
공식적으로는 셋째날.
내가 묶었던 숙소는 카 비 게스트하우스였고, 싱글 팬 룸을 4.5불에 이용했다.
다행히 아침에 샤워할 때 단수가 되지 않았다.
좋다.
씻을 때 물이 계속 나오는 게 좋다고 헤벌쭉거리고 있는 꼴이라니, 우스웠다.
그래도 좋다.
어제 저녁 이야기를 좀 하겠다.
수도 프놈펜에서 6시간동안 온 도시가 정전이 되었을 때 정전이 되지 않은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저번 포스팅에서 말했던 나가월드(Naga world)가 그랬고, 여행자 거리에서 강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보이는 히마와리 호텔(Himawari Hotel)도 그러했다.
히마와리호텔 로비 와이파이 비밀번호다.
사용할 사람은 가서 해도 좋다.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동영상 스트리밍까지 볼 수 있을 정도의 속도였다.
아쉬운 것은 로비와 외부가 연결되어있어 에어컨이 없다는 점.
그래도 온통 정전으로 난리인데 선풍기 바람이라도 쐬는게 어디냐.
좋았다.
후배 성휘와 먹은 만찬.
여행을 시작한지 거의 1주일 만에 먹은 한식이었다.
삼겹살을 2인분 먹고, 찌개&밥을 먹고 소주도 먹었다.
이미 현지 식단에 적응해버린지라, 저렇게 많은 가짓수의 반찬이 나왔을 때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역시 한국 식당..
가끔 가는게 신상에 이로울 듯 하다.
게다가 물도 공짜로 얻었다.
왼쪽은 냉 보리차, 오른쪽은 정수기에서 담은 냉수
그리고 잠들기 전에 후배가 넘겨준 영화 킬링필드(Killing field)를 봤었다.
내가 내일 뚜올슬랭과 킬링필드에 간다고 하니 이 영화를 보고 가면 이해가 잘 될거라고 준 것이다.
착한 녀석.
묵직한 영화였다.
내가 태어나기 얼마 전 있었던 캄보디아 내전 이야기.
환기조차 잘 안되는 고시원 크기의 카 비 게스트하우스(ka vi guesthouse)에서 다소 무거운 그 영화를 보고 이내 잠에 빠져든다.
프놈펜 셋째날
자전거를 하루 연장하고 뚜올슬랭(Toul Sleng) 박물관으로 간다.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구글맵 혹은 아무 게스트하우스/여행사에서 주는 시티맵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그 방향에 맞춰 달려가면 된다.
프놈펜은 그만큼 길 찾기가 쉬운 것이다.
박물관 가는 길
큰 길에는 어김없이 표지판이 있어 찾아가기가 수월했다.
박물관 입구.
Genocidal crime이란 단어가 슬프게 다가온다.
캄보디아 내전 이야기를 하겠다.
사실 난 역사학도도 아니고, 남의 나라 내전을 그렇게 잘 설명할 자신은 없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건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학살되었다는 것.
1970년 3월 론 놀 장군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크메르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게 된다.
국왕은 이에 반대하고 폴 포트란 사람은 크메르 루즈라는 조직을 만들어 그에 대항한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캄보디아 곳곳에 미군의 폭격기가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투하하게 되는데, 실상은 베트남 전쟁 중 월남편에 서 있던 호치민의 보급로를 차단함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 폭격으로 캄보디아 민간인이 수 십만명 사망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폴 포트가 지휘하는 크메르 루즈들은 정부군과 싸워가며 결국 수도 프놈펜까지 진격하게 되고, 수도를 함락시킨 후 지식인들,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 의사나 교수 등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무에서 시작한다는 미명아래 벌어진 일이었다.
위쪽에 해당되지 않는 선량한 민간인들은 집단이주 당한 외딴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 내전은 베트남의 개입으로 끝을 맺는데, 그 전까지 폴 포트가 지휘하는 크메르 루즈가 학살한 민간인만 약 300만명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뚜올슬랭 박물관(Toul sleng museum)과 킬링필드(Killing field)는 잔인하게 학살되어간 캄보디아 인들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뚜올슬랭 박물관
지금은 박물관으로 입장료까지 받고 있지만, 40년 전만 하더라도 이 곳은 감옥이었고 밤이되면 강제로 트럭에 태워져 킬링필드로 보내는 전초기지였다고 한다.
사실 처음 든 생각은 꽤나 넓은 방에 침대가 하나 있네?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게 만든 족쇄와 탄통을 보자 무언가 사무치는 기분이 들었다.
발견 당시, 위 침대에는 사람이 잔인하게 죽어있었다고 한다.
영화 킬링필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아래 접시에 한끼 식사를 담아 던져주는 듯 했다.
물론 이 감옥은 나오지 않지만, 민간인들이 모두들 멀건 죽 같은 것을 작은 접시에 담아 순식간에 마시고 또 다시 일을 하러 가는 장면은 나온다.
정말 와닿았던 표지판
"웃지 말 것"
당신이 이 곳의 의미를 모르는 외국인이더라도, 웃지 말 것.
당시 희생자들이 입고있었던 옷도 진열되어 있다.
희생자들 사진
마치 서대문 형무소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힘써온 의사들을 만나는 것처럼 마음이 짠해졌다.
18번이란 명찰을 달고 있던 소녀
얼굴에서 온갖 두려움과 공포, 현실에 대한 순응과 비장함마저 묻어나는 듯 했다.
실제 사용되던 족쇄
뚜올슬랭은 총 3동으로 만들어져있는데, 위 사진이 세 번째 동이다.
도망갈 수 없도록 철조망을 쳐 놓은 건물이다.
콘크리트를 대충 깨부셔 문으로 만들어 사용했던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1평도 되지 않을 면적의 공간이 보인다.
희생자들이 저 멀리 들려오는 트럭소리에 두려움에 떨었을 그 공간.
처참히 살해된 유골도 전시되어있다.
둔탁하고 육중한 둔기에 맞은 듯 두개골이 파열된 유골이다.
희생자들의 유골
이 모든 것을 보고 돌아갈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살해될 이유조차 없었던 순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에겐 '조국의 독립'이란 이상이 있었고,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까지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뭘까?
대체 어떤 연유로 끌려온 줄도 모르고, 왜 수감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왜 죽어야하는지 몰랐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 둘 씩 죽어 수 백만명이 될 때까지 크메르 루즈의 학살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왕궁으로 돌아오며 먹은 오믈렛
뚜올슬랭을 보고와서 입맛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정말 맛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의 오믈렛 with 프라이었다.
아마 흘린 눈물 한 방울은 캄보디아인들을 추모하는 것이기도 했으리라.
숙소로 돌아와 어제 친해진 툭툭기사와 킬링필드에 간다.
거리는 툭툭을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거리다.
난 왕복 요금을 10불 지불하고 다녀왔다.
가는 길에 지도를 보라며 지도까지 던져준다.
가방 메는 법
캄보디아에서는 가방을 아무데나 던져놓고 있으면 오토바이를 탄 날치기들이 사정없이 가방을 낚아챈다고 한다.
그래서 툭툭기사가 가방을 이렇게 메라고 알려줬다.
우스꽝스러웠지만 이 정도라면 안전했다.
그렇게 1시간을 달리면 Killing field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이 킬링필드는 수 백 여곳에 분산되어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킬링필드가 바로 CHOKUNG EK 이 곳이다.
입장료는 5불이다.
그리고 매표소 직원이 국적을 물어보는데, 그 이유는 오디오 투어를 하기 위해 언어 셋팅을 해 주는 것이다.
오디오 투어
사실 이 킬링필드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예전에 쓰던 건물은 한 채도 남아있지 않고, 오로지 나무와 구덩이만 있을 뿐이다.
(최근에 위령비를 세워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이 오디오 관광이란 것을 생각한 듯 하다.
지도에 번호를 매겨두고 숫자 패드가 적혀있는 오디오를 들으며 천천히 걷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꽤나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이 곳에 오는 듯 했다.
킬링필드 투어를 함께 할 오디오
사람들을 죽인 후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구덩이를 대나무로 막아두었다.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팔찌다.
이처럼 표지판에 보이는데 위쪽에서는 13을 누르면 그에관한 설명이 나오는 식이다.
킬링 트리
크메르 루즈의 극악무도한 살인법을 알게 해준 나무다.
살아있는 어린아이의 두 발을 붙잡는다. 그리고 크게 한번 휘둘러 머리를 나무에 내려치는 식으로 죽이고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넣었기 때문에 그 나무에 킬링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것도 어린아이의 어미가 보는 채로
죽였다고 한다.
발견 당시에는 나무에 살점과 뇌, 온갖 뇌수가 튀어 악취가 나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위령비를 세워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오디오에서는 이 건물 양식이 고대 크메르의 기법을 이용한 양식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조금 구역질이 났다.
그런게 중요한걸까?
반문해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위령비의 건축 양식이 그리도 중요한 설명 거리란 말이냐?'
영화 킬링필드(Killing field)의 엔딩 테마송은 Imagine이었다.
맞다.
전쟁을 반대하는 그 남자, 존 레논의 음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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