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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달랏) 한적한 고산 도시 달랏, 걸어서 둘러보기(하)

by 빛의 예술가 2013. 7. 3.

14시가 되기 전 달랏 역으로 급하게 돌아온다.


하지만 기차가 반드시 출발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멍청히 역장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금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달랏 역사에는 앤틱한 소품이 많이 비치되어있었는데, 구형 도요타는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 자리에 포드의 T1이라도 있었다면, 하고 생각했다.




13시 45분


어림짐작으로 사람들을 세어보니 대략 열 명은 되어보였다.


최소한 열 다섯명 이상이 되어야 기차가 출발한다고 하였으니,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시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다시 한번 내가 탈 수도 있는 멋진 기차를 보러 철로로 발걸음을 향한다.



왼쪽에 보이는 기차가 내가 탈 기차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기차다.










기차의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살펴봤더니 용광로 같은 것이 보였다.


자동차로 따지면 엔진같은 것이겠지만 난 기차에 문외한이므로 잘 모른채 지나간다.


사람 두명이 나란히 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삽으로 석탄을 집어넣는 광경이 생각났다.


물론 그럴리 없다.


어쨌든 지금은 21세기이니 말이다.





그렇게 기차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역장이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기차가 곧 출발하니 표를 사도 좋다는 것이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표를 구입했다.


하지만 금새 내 표정은 울상으로 바뀐다.


Dalat-Tri mat-Dalat 왕복 기차표가 124,000동(약 6$)이었기 때문이다.


떼제베가 놀러와서 뺨맞고 울고 갈 가격이다.


꼴랑 30분 거리를 왕복할거면서, 124,000동이라니!



베트남에서 6$도 쓰지 않으며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을 미달/수미 누나들이 생각났다.


이유없이 누나들에게 미안했지만 내 손엔 이미 기차표가 쥐어져있었다.




그리고 기차는 출발했다.





기차가 출발한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124,000동 값어치를 하네!'라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해발 1,500m에 이어진 철로를 따라 양 옆으로 짙푸른 녹음과 아기자기한 집들이 늘어서있다.


게다가 날씨까지 선선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5월 날씨와 맞먹을 정도로 화창하고 쾌적한 기온이었다.


그렇게 기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기차에 탄 사람은 모두 15명이었는데, 그 중 10명은 중국말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4명은 웨스턴이었다.


나를 제외한 동양인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중국에서 해외여행 붐이 일고 있다는 것도 빈말은 아닌 듯 싶었다.


동남아시아 어느 곳을 가든 중국어로 떠들썩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영어로 적힌 간판 만큼이나 중국어로 적힌 간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트라이맷 역


달랏에서 이 곳까지는 기차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역에서 내리면 1시간 후에 다시 기차가 달랏역으로 갈 예정이니, 그 전까지 돌아오라고 안내 해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약속한 것 마냥 한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난 이 곳이 어디인 줄도 모르고, 뭘 봐야할 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종종걸음으로 쫒기 시작했다.





철길을 건너 좌측에 보이는 길이 내가 따라간 길이다.





계속해서 뒤를 밟으니(?)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Chua Linh Phuoc라는 이름의 절이다.


사실 지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는 곳이었다.



















사찰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주위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절을 하고 트라이맷 역으로 돌아가던 찰나 익숙한 얼굴의 여자 두 명이 보였다.


한 명은 우리 어머니와 동년배로 보이는 나이였고, 다른 한 쪽은 딸 같아 보였다.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조합이다.


나도 어릴 때는 어머니와 둘이서 강원도로 종종 기차 여행을 가곤 했었는데, 그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났다.



딸로 추정되는 여자가 유창한 영어로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나를 어딘가에서 봤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억양이 나와 맞지 않아 어디에서 만났다는건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때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자가 말했다. "sand dune"


맞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했던 그 장소는 '무이네'였다.


White sand dune에 혼자서 일출을 보러 갔을 때 이 사람들을 만났었던 기억이 났다.


나에게 카메라를 건네고 본인들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딸은 영어가 유창했지만, 어머니쪽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난 신분을 밝히기로 했다.


예전에 중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고 중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흠칫 놀라며 잃어버린 아들/동생이라도 만난 것 마냥 나에게 잘 대해주기 시작했다.


달랏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는 옆에 나란히 앉아 달랏의 어디가 좋았고, 어디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서로 나눴다.



그리고 도착한 달랏역에서 난 두 사람의 초대를 받아 커피를 마시러 가게 되었다.


두 사람은 내게 '택시'란 것을 태워주었는데, 나도 돈을 조금 보태야겠다는 생각에 2만동 짜리 지폐를 디밀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럼 커피를 내가 사야하는건가!?'라고 생각을 하니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두 사람을 따라 들어간 아기자기한 카페


예전에 우체국으로 사용되던 역사적인(?)건물이라고 소개까지 해주며 함께 들어간다.


냅킨이 가지런히 정렬되어있는 것이 두려웠다.


'뭔진 모르겠지만 조낸 비싸보이는 카페에 들어왔고, 난 택시비를 내지 않았고, 셋이서 커피를 마셔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딸로 추정되는 인물은 커피에 쿠키까지 주문을 했는데 난 이런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0_0;;


하지만 나의 쪼잔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벌벌 떨리는 두 손으로 지갑을 열어 계산을 하려고 하는 찰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이 본인이 사겠다며 또 다시 내 돈을 한사코 받지 않으신다.


그래도 택시를 공짜로 타고 온 것이 미안해, 몇 번 더 손을 내밀었지만 끝끝내 거절하셨다.


'무이네에서 사진 한번 찍어준 값 치고는 정말 비싸게 얻어먹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어머니와 딸이 맞았고, 모두 상해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은퇴 기념으로 함께 여행을 왔고, 딸은 싱가포르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며, 본인의 직업을 boring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지금 세계일주 중이며, 시작한지 한 달쯤 되었다고 말하니 딸 쪽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본인도 여행을 좋아해,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날 것 같다고 말한다.


나도 언젠가 될지,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곧 다시 보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메일주소와 중국 메신저 아이디를 주고 받은 뒤 헤어졌다.





공짜 택시에 커피&쿠키까지 얻어먹고 신나는 표정의 나






카페 앞에서 난 그들과 헤어졌다.

바로 앞에 에펠+동방명주 탑이 보였다.



이건 내가 얘기를 할 때 그네들이 가장 크게 웃어줬던 이야기다.

"상해에서 오셨다고 하셨죠? 저도 가봤어요. 그런데 저 탑, 동방명주같이 생기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