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얘기를 해보자.
내가 여행을 떠나오기 전 인천공항에서 다급하게 구입했던 것이 플라스틱 소주였다.
우리나라 돈이 현금으로 많지 않아 한 병밖에 구입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한국사람은 공업용 알코올 맛이 나는 소주를 가끔씩 마셔줘야 원활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주제에 맞지 않게 소주보다 위스키를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건 맥주지만 삼겹살이나 불닭볶음 따위의 맛깔난 음식을 먹다보면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한국 사람임에 틀림 없다.
미달,수미 누나들을 만나고 나서 캄보디아에서 한번 소주를 마셨었다.
그때 한번 헤어졌기 때문에 누나들이 가져온 소주와 참치, 신라면을 뜯어 조촐하게나마 파티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하나밖에 없는 소주를 배려라도 하듯, 그녀들은 내 술은 마시지 말고 다음에 여행하며 마시라고 말해줬었다.
어찌나 고마운지 눈물이 찔끔 날 뻔 했었다.
이날도 우리 넷은 어김없이 루앙프라방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원을 지나쳐 오레오 밀크셰이크를 마시고, 라오스 샌드위치를 먹으며 계속해서 휴식을 취한다.
그러던 중 저녁을 먹고 강이보이는 좌식 카페에 앉아 콜라라도 마시자고 의기투합한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미달누나가 좋아하는 카드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몇 판정도 이겼던 걸로 기억하는데, 승패는 사실 안중에 없었다.
카드놀이를 하는 내내 오늘은 술이라도 한잔 마시자는 얘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선글라스를 열심히 쓰고 다녔지만 선블록을 바르지 않아 네거티브 판다(Negative panda)가 되어버린 내 얼굴
해가 저물고 우리는 술 안주를 사러 시장으로 찾아갔다.
맛있게 생긴 치킨 구이 한점을 사고, 중국에서 자주 먹던 프라이드 스프링 롤 따위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콜라도 한병 사자고 해 수퍼마켓으로 들어간다.
그때 눈에 띄던 라오라오
그랬다.
어디선가 웹에서 떠도는 글을 읽었을 때, 라오스에는 한국의 소주와 비슷한 증류주가 있는데 그 이름이 라오라오라는 것이었다.
대략 눈 짐작으로 봐도 700ml는 되어보이는 큰 병에 가격까지 8,000킵(약 1$)밖에 하지 않았다.
열 병정도 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술이었으므로 한 병만 사서 마셔보기로 한다.
우린 종이컵을 사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에 저렇게 페트병의 주둥이를 칼로 잘라 잔으로 사용하고, 난 애주가 답게 항상 휴대하고 있는 플라스크에 라오라오를 잔뜩 담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놈의 플라스크가 문제였다.
8oz는 족히 되는 내 플라스크에 라오라오는 한없이 들어갔고 난 그때부터 기억이 없었다.
이렇게 앉아서 술을 마셨던 것도 기억나지 않고,
왜 안주가 없어졌는지 기억나지 않고,
왜 카드놀이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미달누나의 새침한 표정으로 봐선 내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난 쓰러졌다.
잠에서 깨어나니 침대였고, 다음날부터 누나들과 문연이의 놀림감이 되었다.
세 악마들은 내가 취한 사이 내 보조 사진기로 동영상까지 찍어놓고 나를 놀려댔는데 부끄러워서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있다.
미달누나는 내가 술을 못 마신다고 잔뜩 놀려댔고, 술을 잘 마시는 수미누나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문연이는 나를 보고 귀엽다고 놀려댔다.
어쨌든 취한 건 사실이고, 라오라오는 굉장히 무서운 술이란 것이 확인된 것은 그 다음 날이다.
어제 라오라오를 잔뜩 비워낸건 나였기 때문에, 누나들은 라오라오를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라오라오 한 병을 절반씩 나눠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며 그녀들이 말했었다.
"야~ 술 잘 넘어가네? 문! 너 술 진짜 못 마시는구나?"
"한 병 더 사야되는거 아냐? 캬캬~"
그 말을 하고 1분뒤 아름다운 누나들 두 분은 졸도 했다.
정말이다.
사진 촬영 : 문연이 핸드폰
마녀같은 누나들은 술에 취해도 별 주사가 없었다. (그래 보였다)
나란히 침대에 가서 똑같은 자세로 눕더니 쿨쿨 잘도 잔다.
그 정도로 라오라오는 위험한 술이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미 잊었다.
누나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한 문연이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넷이서 함께 장만한(?) 라오스 팔찌.
내가 술에 취했던 날 함께 찍었던 사진이다.
모두들 아직까지 팔목에 걸고 다니는지, 안녕한지 궁금해진다.
난 아직까지 차고 있는데.
그리고 아주 가끔씩 그 정도로 위험한 술 라오라오가 마시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서 일 수도 있고, 그네들이 그리워서일 수도 있겠다.
"미달누나, 수미누나, 문연군 모두 잘 지내고 계시죠?"
'세계일주 여행기 > 아시아(A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기/루앙프라방-훼이싸이)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국경도시 훼이싸이로 (5) | 2013.08.27 |
---|---|
(여행기/루앙프라방) 꽝시폭포 (4) | 2013.08.23 |
(여행기/루앙프라방) 온 도시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루앙프라방 어슬렁거리기 (0) | 2013.08.22 |
(여행기/방비엥-루앙프라방) 넋을 잃게 만드는 라오스 13번 국도 & 루앙프라방 야시장 (4) | 2013.08.12 |
(여행기/방비엥) 베트남 쌀국수보다 10배는 맛있는 라오스 쌀국수 "카오삐약센" (5) | 2013.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