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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루앙프라방) 온 도시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루앙프라방 어슬렁거리기

by 빛의 예술가 2013. 8. 22.




라오스의 근 현대사는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게 쓰여져 있다.


우리나라가 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인 일본에게 독립을 쟁취해낸 것과 동일하게 그네들도 2차 대전 후 프랑스에게 독립을 쟁취했다.


그 후 우리나라의 김구, 여운형, 박헌영, 이승만 세력이 각기 이끄는 임시 정부와 민족 자주 통일론을 필두로 투쟁했던 것과 유사하게 라오스도 3파로 나눠진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우리나라 이승만이 미 군정을 등에 업고 초대 대통령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라오스의 3파중 미국을 등에 업은 1파가 정권을 장악한 것까지 흡사할 정도로 비참한 근 현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땅에서 베트남전(월남전)에서 패망한 미군이 물러나게 되자 1975년 12월 2일 다시 한번 독립을 얻게된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가 과연 진정한 독립국가일까? 생각해본다.


불과 한 두 세기 전, 어리석게도 미소 양국이 한반도를 향해 침략의 야욕을 보이고 있을 때 남쪽에 살던 우리들은 서로를 빨갱이로 몰아치며 민족의 단합된 힘을 보이지 못했다.


한반도의 허리를 무 자르듯 갈라버린 미국과 소련의 계획 그대로 쓰여져버린 아픈 역사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외딴 도시에서 다시금 떠올라 비참한 기분에 휩싸였다.


적어도 라오스는 당당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게 다른 점이다.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도시 전체가 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온 동네가 계획된 것처럼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있다.


당신이 어느 곳에 숙소를 구하고, 어느 거리를 걸어도 청량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깔끔한 거리와는 별개로 어느 도시든 현지식당은 어느정도의 지저분함을 유지하기 마련인데, 루앙프라방 역시 강변 주위를 둘러보면 위생이 불결해보이는 현지 식당을 몇 군데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위생이 불결한 것과는 별개로 그 나라, 그 도시의 제대로 된 맛을 보기 위해서는 현지식당만큼 제격인 곳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현지 식당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내가 돈이 없거나, 수미달 누나의 협박에 진 것은 절대 아니다)





방비엥(Vangvieng)에서 이미 그 맛을 인정받은 라오스식 쌀국수 카오삐약센!


예전에 먹었던 그 것보단 조금 떨어지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폭풍섭취!






어제 미달누나를 등에 업고 즐겁게 커플사진을 찍던 문연이는 내내 수미누나 옆에 가서 앉기를 반복한다.


아무래도 미달누나와 헤어진 모양이다.


루앙프라방 왕궁 앞에 펼쳐져 있는 샌드위치&커피 가게에서 오레오 밀크셰이크를 마시며 루앙프라방을 어슬렁거릴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 곳에서 만들어주는 오레오 밀크셰이크(Oreo milkshake)의 맛이 기가 막힌데, 오레오 과자 완성품을 믹서에 통째로 집어넣어 우유와 함께 갈아버리는 식이다.


제조 과정이야 어떻든 기가막힐 정도로 맛있다.


그래도 루앙프라방에 서식하는 내내 오레오 밀크셰이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오레오가 부족해 근처 슈퍼로 오레오를 사러 뛰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Ruang prabang)에는 수 십개의 사원이 존재한다.


라오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은 푸시 언덕(Phousi hil)에 존재하고 있고, 그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원들이 히스토릭 디스트릭트(Historic district)에 밀집되어있다.


직선거리로 약 1~2km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오레오 밀크셰이크를 하나씩 들고 천천히 걸으며 루앙프라방을 감상하는 것이 제격이다.




사실 이 많은 사원 하나하나의 이름과 역사적인 의미, 건축 배경은 알지 못한다.


그 것을 알고 싶은 사람은 가이드북을 하나씩 구입하여 하나씩 둘러볼 일이지만 이미 난 크메르 양식의 지붕에 지쳐있을 무렵이었다.


대체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의 고대 건축 지붕이 어떻게 다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존재하는 그대로 푸른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있는 사원들을 감상하기로 했다.




위쪽 건축물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봤던 건축 양식과 그 색체를 비슷하게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과거 크메르 문명이 현재 캄보디아 시엡립(siem reap)에 앙코르 와트 사원군을 건축하기 전 만들어본 건축물이라고 했다.





역사 구역(Historic district)을 걸어다니는 내내 새파란 하늘과 푸른 야자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때쯤이면 오레오 밀크셰이크는 다 녹아버리기 때문에 근처 슈퍼마켓에서 물이나 콜라따위를 사서 마신다.





그렇게 루앙프라방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겹겹이 쌓여있는 지붕의 아름다운 사원들을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가이드북을 사서 이 사원이 무슨 사원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언제 건축되었는지 확인하며 돌아다닐 바에는 망막에 끊임없이 투영되는 아름다움의 향연을 만끽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자연과 잘 조화되는 노상 카페를 지나고,





또 사원과 만나고,





또 다른 사원을 만나기를 반복한다.


이미 주석을 달 수 없는 경관이다.











이렇게 사원을 2,30여개 정도 둘러보고 강 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면 또 다른 현지 식당을 발견할 수 있다.


카오삐약이라는 한글로 메뉴를 장식해두었는데, 우린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에 오기로 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이틀동안 저 가게는 방문할 때 마다 문을 닫은 상태였다.




경험상 한국어로 메뉴가 장식되어있는 현지식당은 맛있을 확률이 높다.


아마 루앙프라방을 떠날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숨겨져있는 사원을 몇 개 쯤 보지 못했던 사실이 아니라, 저 집에서 카오삐약센을 맛보지 못했던 일이다.




계속해서 사원이 보인다.


이 쯤 되면 왜 루앙프라방 온 도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된다.


마치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어느 곳으로 발길을 향하던 문화유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무수히 많은 사원들의 입장료는 대부분 무료다.


하지만 왕궁이나, 1513년에 세워진 왓시엔톤같은 유명한 사원은 입장료를 받고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물론 우리는 들어가지 않았다.


굳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멀리서 모든 건물이 보이기 때문이다.


미달누나는 다시 한번 말한다.


"야 지붕 봤으면 다 본거야!!!!!!"




비록 라오스가 최근에 독립을 했고, 일차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접경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어있는 약소국 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문화유산 보존이 뛰어날 정도로 잘 되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실이 프랑스의 식민통지를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전의 역사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여서일 수도 있고, 1975년 공산주의 혁명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답을 찾고자 하지 않았다.




일본에게 식민통치를 당하며 어마어마한 문화재를 약탈당하고, 궁이란 궁은 모두 훼손시켜버린 그들이 미워지기도 했지만, 21세기 세계적인 도시라는 서울 한 복판에서 국보 1호가 불타버리던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남의 탓만 할 일도 아닐 것이다.


내가 세계일주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국보 1호 숭례문이었다.


마침 복원공사를 완료하고 일반인들에게 개방된지 수삼일이 지났을 때였다.



문화재청은 불타버린 돌과 비교적 상태가 좋은 목재를 그대로 사용해 몇 년만에 복원을 끝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내 눈에는 예전보다 아름다워보이지 않았다.


역사를 등한시하고 문화 유적을 사랑할 줄 모르는 민족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생각했다.


막말로 이런 못사는 나라도 문화유적을 잘 보존하고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앞만 보고 미친듯 뛰어가는걸까? 


생각했다.




숭례문쪽으로 운전할 일이 있다면 지붕을 보도록 하자.


앞만 보고 막힌 도로를 짜증내지 말고, 잠깐 고개를 돌려 그 아름다운 막새며, 치미, 잡상을 보는 것 만으로도 족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