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따오에서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한다.
아직 임시 자격증이지만, 정식 자격증과 똑같은 효력을 발휘한다는 작은 명함 크기의 코팅된 종이를 지갑에 넣고 나니 마음이 뿌듯해진다.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증인 것이다.
세상에 이처럼 낭만적인 자격증이 있을까?
생각하며 내가 보유한 그런 류의 자격증을 생각해본다.
전산관련 자격증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어찌된 영문인지 난 전산 관련 자격증이 4개도 넘게 있는 것이다.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나니 특이한 자격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은행텔러"
내 꿈이 행원이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수강했던 어떤 과목 첫 시간에 교수님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은행텔러 자격증 따오면 지금부터 제 수업 들어오지 않아도 A-학점은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수업 안들어가고 딴 자격증이다.
약속대로 A-를 주더라.
그 밖에 '윈드서핑(Wind-surfin)자격증'은 모든 과정을 수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격증을 만드는데 3만원을 달라고 해서 만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자격증이 없다고 서핑보드를 빌리지 못하는 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윈드서핑은 자격증이 아닌 돈의 문제다.
그리고 카페 창업을 준비하며 취득했던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커피는 꽤나 낭만적이긴 하다.
하지만 바다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
이처럼 내가 보유한 모든 자격증을 나열해도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보다 멋진 자격증은 없었다.
난 그 정도로 뿌듯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격증을 취득하면 보통 섬을 벗어나 다른 여행지로 가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린 미달누나의 중급(Advance)코스를 기다려주며 세월아 네월아 놀기로 했기 때문에 꼬따오에서 계속 머물기로 한다.
게다가 리조트도 공짜!
아무 걱정없이 바다를 즐기기로 한다.
부다뷰(Buddha view) 리조트에는 여러 국적의 팀들이 있는데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강좌하는 한국팀,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랑스팀 처럼 각 국적별로 팀들이 있다.
우리는 한국을 좋아하는 프랑스팀 소속의 제레미(Jeremy)와 얼떨결에 술을 마시고 친해져 부처님 바위(Buddha Rock)에 있다는 멋진 뷰 포인트로 걸어가기로 한다.
제레미는 코에도 피어싱 귀에도 피어싱, 피어싱을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피어싱이 꽤나 커보여 귓볼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손가락만한 구멍이 들어갈 정도였다.
내 귀에 달려있는 피어싱은 꼬마 장난 수준이었다.
그런데, 제레미의 그 구멍을 보니 피어싱 관련해서는 꼬마 장난에서 멈추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을 계속 걸어가면 제레미가 말한 뷰 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플립플롭을 신으면 걷기 힘들거라는 제레미의 말에 우리 셋은 모두 신발을 벗고 계속해서 해변을 걷는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었을까?
이렇게 돌로 만든 다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살포시 발을 올리고 제레미를 원망한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돌 다리가 무진장 뜨거웠던 것이다.
미달누나는 그에게 응징(?)을 가하고 투덜대며 걸어간다. 어쨌든 걷기는 하는 것이다.
미달누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제 끝나겠지, 생각하면 또 다른 돌 다리가 나타나고 그렇게 20여분을 더 걷는다.
계속해서 걸어간다.
뜨겁게 달궈진 돌 다리 도보 30분 째
발바닥이 뜨겁다.
여기 계란을 풀어놓으면 먹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래도 이렇게 걸으면 뭔가 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만 더 걸어가니 제레미가 말했던 뷰 포인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별로 안 예쁘다.
게다가 바다에 들어갔는데 물이 뜨거웠다.
이런 경험, 처음이다.
미지근한 바다는 몇 차례 들어가본 적이 있지만 뜨거운 바다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태국 바다에 핵 실험이라도 했나? 싶을정도로 뜨거웠다.
결국 우린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놀기 시작한다.
미달누나는 제레미를 응징(?)하고 제레미는 도망을 다니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나 대신 맞아줄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바다를 찍었다.
그리고 바위 옆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난 바다를 보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약간은 씁쓸한 태국 맥주의 맛이 혀에 감돌고, 바다는 계속 푸르렀다.
아주 조금 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바다는 수차례나 갔었다.
한국에도 아름다운 바다가 많고, 타국의 바다도 수 차례나 다녀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게 바다를 보며 즐긴 적이 있었을까? 반문해본다.
없었을 것이다.
항상 무엇인가에 쫒기듯 바다를 바라봤고, 바다에 뛰어들었고, 바다를 뒤로 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충분했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 행복했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있노라니 미달누나와 제레미가 방해를 시작한다.
제대로 바다에 못 들어갔으니 수영장에 가자고 한다.
제레미가 아는 리조트 수영장이 근처에 있는데, 아주 시원하고 좋단다.
그렇게 우린 다시 정체모를 리조트 수영장으로 걷기 시작한다.
참, 걸어간 것은 나 뿐이다.
배신자 제레미와 마녀 미달누나는 근처에 주차되어있던 제레미의 스쿠터를 타고 갔다.
난 성인 군자의 마인드로 악당들을 용서한 채 뜨겁게 달궈진 돌 다리를 쓸쓸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졸라 뜨겁다.
두 사람 용서하지 않을테다!
그렇게 복수의 칼날을 갈며 만나기로 약속한 리조트의 수영장에 도착한다.
리조트 숙박객이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고 적혀있었으나, 그런 룰(Rule) 따위 무시해버린다.
베트남 무이네 해변에서 깨달은 것들 중 하나다.
그리고 제레미가 소개해준 수영장을 보자마자 두 악마들을 용서하기로 한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바다보다 푸르른 수영장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바다와 달리 뜨겁지도 않았다.
우린 누가 오래 잠수하는지 대결을 하기도 하고, 한가롭게 수영장을 떠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잠수 대결은 제레미가 이겼다.
스쿠버 다이빙 강사 답게, 제레미는 1분 30초가 넘게 물 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는 폐활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저물어 간다.
오늘 저녁은 나의 영웅(?) 꼬따오 형님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형님은 처음 만난 이래 우리와 식사한 비용을 모두 지불했었다.
벌써 3일 째다.
그게 민망해 우리가 사겠노라고 수 차례 말해보기도 했지만 나의 영웅(?)은 그렇게 말 했었다.
"저도 예전에 대학생 때 유럽 배낭여행 하면서 많이 얻어 먹었거든요. 학생도 나중에 내 나이가 되면, 학생들 한테 많이 사주세요."
그렇게 오늘 저녁도 신나게 얻어먹으러 간다.
늦잠을 자고, 늦은 점심을 먹고, 바다에 뛰어 들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저녁을 얻어 먹고,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다 잠에 드는 일상.
그렇게 난 태국의 남쪽 섬 꼬따오(Koh Tao)에서 모든 것을 잊은 채 숨쉬고 있었다.
정치가 어떻고, 전쟁이 어떻고, 정쟁이 어떻고, 정규가 어떻고.
모두 하얗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즐겼다.
마치 한 마리의 야생 개가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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