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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인도차이나 반도) 그렇게 우린 헤어진다

by 빛의 예술가 2013. 10. 13.


수미 누나가 먼저 방콕(Bangkok)으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과 만나고 그 사람들과 모두 헤어지길 반복했지만 그 때는 이런 기분에 휩싸이지 않았었다.


아마 두 달이란 시간 동안 함께 여행했기 때문에 생긴 감정일지 모른다.



배낭을 코앞까지 와 있는 픽업트럭에 실어준다.


매일같이 봐서 마치 내 소지품처럼 느껴지는 수미누나의 초록색 배낭이었다.


배낭여행이 처음이었던 수미누나는 내가봐도 놀랄만큼 즐겁게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문연이는 다음 날 방콕으로 돌아갔다.


녀석은 태국을 조금 더 여행한 후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라오스에서부터 만나 중간정도 함께 여행을 시작했고, 이제 이별인 것이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얼굴을 들이밀고, 팔을 뻗으며 방해하던 녀석이었기에 찍힌 사진이 많을 줄 알았다.


그렇게 안심하고 사진을 훝어보니 정상적으로 나온 사진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우스워 웃는다.


내게 녀석의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는 것도, 녀석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웃는다.





나와 미달누나는 말레이시아에 갔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었다.


마녀는 동료 마녀가 한국으로 떠나 쓸쓸한지 별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쿠알라룸푸르의 볼 거리도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 정도 시간을 보낸 후 미달 누나는 한국으로, 나는 인도로 떠난다.





우린 그렇게 모두 헤어졌다.


이제부터 날 못살게 구는 마녀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방해를 하는 녀석을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마녀들의 눈을 피해 조금 비싼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호텔스 닷컴사이트의 예약 기록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과거, 어느 해 겨울, 오랫만에 한국의 겨울을 접한 내 눈앞에 이 곳은 너무 춥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어 뜨거운 남국의 섬으로 도망을 갔었다.


그 때 이 사이트를 이용해 호텔을 예약 했었는데, 가격이 1박에 70,000원을 호가하고 있었다.


그 기록과 지금 모습이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그래, 마녀들이 없으면 간만에 좋은 숙소에 들어가 여독을 풀 수도 있겠다.'




무거운 내 배낭을 쳐다본다.


'그래, 마녀들이 없으면 가끔씩 몰래 택시도 타고 해야지. 배낭도 무거운데 계속 걸을 수는 없잖아.'




배낭 속에 숨어있던 헤드폰을 꺼낸다.


'이제 마녀가 불러대는 노래도 억지로 들어줄 필요가 없겠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야지'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마녀들과 방해꾼이 없어졌다.


이제 신나는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다.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난 뭐든지 혼자서도 잘 하니까.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거니까.


언제나 그랬으니까.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혼자였다.


아무도 내 곁에 없었다.


혼자 쿠알라룸푸르의 LCTT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마녀 둘과 방해꾼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날 좀 못살게 굴어도 상관없으니,  아니 지금까지 이야기한거 사실 다 거짓말이었고 모두들 나한테 잘 해준 기억밖에 없으니 계속 같이 여행하자고 조르고 싶은 맘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난 혼자였다.




소변이 보고 싶었다.


내 큰 배낭과 보조 배낭을 메고 소변을 볼 순 없었다.


누군가에게 배낭을 봐달라고 부탁을 해야하는데, LCTT에는 정신없이 터미널을 쏘다니는 타인들 밖에 없었다.


결국 큰 배낭을 화장실 문 앞에 두고, 보조 배낭을 멘 채로 소변을 봤다.


누가 큰 배낭을 건드리진 않을까, 옆을 힐끔거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힘들여 소변을 보고 손을 씻자 실감이 들었다.


'이제 다시 혼자다.'






우린 함께 찍은 사진도 많지 않았다.


태국, 서로 다른 시끄러운 음악이 양 옆에서 고막을 자극하는 어느 바에서.


종업원이 우릴 찍어준 사진이다.



참 지랄같게도 찍었다.


모두의 그리운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난 모두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렇게 흐리멍텅한 사진만 봐도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세계일주를 함께 시작했던 멋진 사람들"




끝.


인도차이나 반도


끝.


인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