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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인도-콜카타) 인도 여행의 시작 '기다림'

by 빛의 예술가 2013. 11. 9.


2013/07/04 - [다같이 돌자 지구 한바퀴/■당신이 모르는 그 여행지] - (Good)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콜카타 국제 공항까지 - 어떻게 돈을 찾을까?



인도에 도착했다.


모두와 헤어지고 혈혈단신으로 도착한 인도에선 시작부터 많은 일이 있었다.


환전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보이지 않는 ATM을 찾으러 공항 밖으로 나갔다가 공항 출입이 거부된 것부터 시작해서


ATM이 공항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2시간이 넘게 총을 든 공항 군인과 실갱이를 한 것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아 인도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 일들.


결국 책임자를 만나 돈을 찾았지만 시계를 보니 대중교통 시간이 모두 끊긴 한 밤중이 되버렸던 일.


어렵사리 찾아간 게스트하우스의 방은 감옥을 연상케 했고, 침대는 바닥보다 더러워보였으며, 샤워실은 청소를 한지 10년은 지난 듯 온갖 이끼와 검댕으로 가득 찬 모습에 놀란 일.


이 모든 것이 인도 입국 첫날 있었던 일이다.





1.구걸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외딴 곳에 떨어졌는데 그 나라 화폐가 지갑에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비참하다는 것 말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보자 몇 가지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난 지금껏 국경을 넘을 때 도착지의 화폐를 미리 준비하지 않고 다녔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험을 바탕으로 생긴 습관처럼 내 몸에 짙게 배어있었다.

태국(Thailand)에서 캄보디아(Cambodia)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리엘을 미리 환전하지 않았으며,

캄보디아(Cambodia)에서 베트남(Vietnam)으로 넘어갈 때 베트남 동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었다.

베트남(Vietnam)에서 라오스(Laos)로 넘어갈 때 라오 킵을 준비하지 않았었고, 마지막 태국(Thailand)에서 말레이시아(Malaysia)로 갈 때 역시 링깃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그렇게 땡전한푼 없이 걸어다니며 숙소를 먼저 찾은 다음 자국 화폐를 환전하거나 인출하는게 순서였다.



인도는 국제공항에 도착을 하니 환전소나 ATM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착오였다.

한번 공항을 빠져나간 사람에게 출입이 거부된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환전소는 공항 입/출국장에 위치하고 있었고, ATM은 공항 출국장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입국장이든 출국장이든 난 들어갈 수 없다.

그때 생각했다.

'게이트마다 둘 씩 짝지어있는, 재래식 직사화기와 50cm는 되어보이는 몽둥이로 중무장한 군인을 때려 눕히고 간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사고능력은 안드로메다 저 멀리로 날아간지 오래였다.

6개의 게이트를 직접 돌아가며 난 30분 전에 인도에 도착했으니 ATM에서 돈만 찾고 나오겠다고 아양도 떨어보고, 협박도 해보고, 외국인의 신분을 내세워 국제적 분쟁을 일으키기 싫으면 나를 들여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논리적 설득도 해보았다.

얘기가 통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내 영어를 모두 알아듣고 있었다.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었다. 공항 노숙은 공항 안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지 난 이미 공항 밖을 벗어났다.






그래서 난 구걸을 시작했다.

인도 도착 첫날 부터 인도인들에게 구걸을 하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Hey I need to ride a taxi cause I wanna moving to sudder street. but I don't have indian rupee even I cannot get inside the airport so..... Please give me money"
"나 택시 타게 돈 좀 줘"

총과 몽둥이로 무장한 군인이 나를 힐끔 거리더니 대답한다.
"싫어(No!)"

"Then I'll take a bus, Please"
"그럼 버스 타고 갈 게, 조금만 줘"

총과 몽둥이로 무장한 군인이 나를 힐끔거리더니 대답한다.
"싫어(No!)




그렇게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난 구걸을 포기할까 생각해봤지만 공항에 게이트는 많았다.

게이트를 다 돌면 택시비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생각에 다른 게이트로 옮겨가며 구걸을 했다.

결과는 0루피.

치사하게도 인도 사람들은 길 잃고 돈 없어 불쌍하지만 핸썸하게 생긴 동양인 남자에게 불친절했다.

그렇게 게이트를 다 돌고 나자 게이트에 접근만 해도 서로 무전을 때리며 나를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힘이 들었다.

여행중 미달&수미누나들에게 온갖 핍박과 구박(그리고 사랑 쬐끔)을 받으며 성장해온 나지만 이건 너무했다.

공항에 들어가 돈만 찾고 나오겠다고. 10분도 안걸리는데 그걸 '보안상의 이유'로 거부하다니 말이다.



그래서 주저 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인도를 먼저 다녀갔던 지인들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인도는, 그냥 기다리면 되요"


그래 기다리자, 대신 배낭이 무거우니 주저 앉아서 기다리자.

이미 내 주위에는 매우 지저분하고 초췌해 보이는 (하지만 핸썸한) 동양인이 큰 배낭 두 개를 집어 던져두고 바닥에 주저 앉아 구걸을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가 되고 있었다.



난 그 와중에 사진도 찍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셀카를 찍었더니 역시나 흔들린 사진이 되었다.


<작품명 : 인도인에게 구걸하는 한국인>


<감상 포인트> 

1. 외딴 곳에 떨어져 다급하고 위험하며 분노가 치미는 상황에도 평정심을 유지한 채 셀카를 찍는 여유를 보이는 주인공의 객기를 유추해볼 수 있다.

2. 심하게 흔들린 사진에서 시간적 배경과 주인공의 강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3. 사진의 오른쪽 벽에 배불뚝이 아저씨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주인에게 도움을 주러 다가오는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4. 이 사진은 '땡전 없으면 잘 사는 동양인도 가난한 나라 인도에서 구걸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작금의 신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를 총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물질적 관점과는 별개로, 정신적 측면에 입각하여 돈 없으면 사람이 한 없이 초라해질 수 있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올해의 퓰리처 특집 사진상을 받을 확률이 높아보이는 웰 태이킹 포토다. (난 바쁘니 이 포스팅을 읽는 사람 중 하나, 나 대신 출품을 해라. 저작권은 당연히 내꺼임)








그렇게 몇 번이나 땅바닥에 주저 앉자 보다못한 인도 군인은 책임자에게 날 데려갔고, 결국 공항안으로 다시 들어가 돈을 인출할 수 있었다.


인도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인도에 도착해서 인도 루피를 인출할 때 까지 3시간이 걸린 상황이 우스웠다.


그리고 이게 인도라면 충분히 기다리겠노라고 다짐했다.





2.숙소 


대중교통이 모두 끊겨버렸기 때문에 공항 노숙을 할까 생각했지만, 이미 내 두 발은 공항 바깥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시 군인들과 그 실갱이를 하며 공항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선불 택시(Pre-paid taxi)를 잡아타고 콜카타의 여행자거리 서더 스트리트(Sudder street)로 향한다.


이미 한 밤중이 되어 도착한 숙소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미달누나의 침대 시트에 관한 어록이 떠올랐다.



"야- 그래도 동남아 숙소는 침대 시트가 하얀색이잖아?! 깨끗한 줄 알아야지'



사진에는 침대가 매우 깔끔하게 표현되었지만 그건 내가 화이트 밸런스를 잘못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도저히 저런 침대에서 그냥 잘 수는 없다고 판단해, 돗자리를 깔고 베개에는 방석을 깔고, 미달마녀가 쿠알라룸푸르행 버스에서 가져다준(?) 담요를 덮기로 했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난 침대에 쓰러져 기절했다.


그 정도로 졸렸던 것이다.


이틀에 걸쳐 2시간 정도밖에 눈을 붙이지 못했으니, 지금까지 구걸하며 버텨온 시간이 대단하다고 느끼며 잠을 청했다.







3.SIM카드 


콜카타(Kolkata)에서의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인도는 두 달 정도 여행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심카드를 사기로 맘 먹었다.


내 머리속의 인도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수준이었으니 통신사로 보다폰(Vodafone)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미리 말해두건데, 당신이 인도 SIM카드를 사고자 한다면, 인도의 1위 통신 사업자인 에어텔(Airtel)을 선택하는게 바람직하다. 1위는 괜히 1위가 아니다. 한국의 S사 K사 L사 정도로 비교하면 안된다. 인도는 3G커버리지 지역 자체가 다르다.)


뭐 보다폰 유명하지 않은가!


축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 유명 축구 팀의 스폰서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갔다.


작은 매장이었는데 다짜고짜 레퍼런스(Reference)와 여권(Passport)게다가 증명사진(Photo)까지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레퍼런스가 뭐냐고 물어보니 넌 외국인이기 때문에 인도 사람이 추천을 해줘야 심카드를 살 수 있다고 답해준다.


'SIM카드 그냥 하나 주면 되지 뭐가 그렇게 복잡해?'속으로 생각하며, 어제 구걸하던 힘을 끌어모아 그냥 달라고 애교섞인 눈 웃음을 날렸지만 그 인도인은 내게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SIM카드를 사려고 하면 레퍼런스와 여권, 증명사진, 그리고 돈이 필요하다. 레퍼런스는 당신이 머무는 숙소 사장님께 부탁을 해봐라."




기분이 나쁘기도 전에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난 착각하고 있었던 게 틀림 없었다.


난 고등교육을 받았고 인당 GDP가 2만불이 넘는 나라에서 왔으니 이런 검은 피부의 못사는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멍가게 만한 이동 통신사의 사장에게 절차를 다시 듣고 나니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우쳤다.



그래서 다시 깔끔하게 포장된 인도의 보행자 도로를 걸어 숙소로 돌아간다.



깔끔깔끔.


인도에서 이 정도면 '깔끔 보행자 도로' 탑 랭킹 10위 안에 들 지도 모른다.






숙소에선 레퍼런스를 달라는 내게 3시간을 기다리라고 말해준다.


어제도 기다리고, 오늘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렇게 인도는 내게 기다림부터 다시 알려준다.



남는 시간이 지루해 근처를 돌아보니 보다폰 정식 매장이 있었다.


게다가 크고 깔끔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매장으로 들어가 번호표부터 뽑은 후 직원에게 슬쩍 물어본다.


"SIM카드 사려면 현금, 여권, 사진만 있으면 되지?"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Yes"였다.




그렇게 난 절차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해줬던 구멍가게 사장을 찾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어졌지만 참기로 한다.


깨달음을 준 건 사실이니 말이다.


그리고 레퍼런스가 없어도 SIM카드를 살 수 있다는 것 역시 깨달음이다.


양자가 충돌한다고 해서 깨달음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엔 정말 깔끔깔끔한 콜카타(Kolkata)의 보다폰 매장









그리고 난 2시간 여를 기다려 SIM카드를 받았다.



난 아이폰5를 사용하고 있어서 Nano Sim card가 필요하니 없으면 컷팅기를 이용해 잘 잘라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직원은 씨익 웃더니 나노 심 카드(Nano Sim card)를 가져 왔다.


인도 웬만한 매장에는 일반 심카드, 마이크로 심카드, 나노 심카드가 비치되어있으니 컷팅기로 잘라쓸 필요는 없다.


준비물은 위쪽에 말한 것이 전부이고, 특별한 준비물이 있다면 증명사진 정도.


요금제는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으며 가격이 저렴해 난 3Gb데이터 요금제를 선택해서 개통했다.




그나저나 사진에 찍힌 내 섹시한 발을 보니 맘이 또 설렌다.


내 발이 저렇게 새까맣게 변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저건 안씻고 더러워서 까매보이는 발이 아니다.


인도차이나 반도 5개국에서부터 인도까지 씩씩하게 두 발로 걸어오며 길 위에서 까맣게 타버린 내 멋진 발이다.





그렇게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그리고 도착해서, 또 심카드를 사며 또 배웠다.


인도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관해 속성으로 교육을 받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기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