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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콜카타) 콜카타에서 보낸 엉망진창 신나는 하루

by 빛의 예술가 2013. 11. 17.

인도의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 마자 난 옷을 홀랑 벗고 몸 구석구석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조용히 눈을 감고 내게 질문한다.


'가려운가?!'


안가렵다.


이런 곳에서 자고 일어났지만 베드버그에 물리지 않은 것이 신기해 다시 몸 구석구석을 관찰한다.


수미누나가 선물하고 간 한국산 모기향을 피워놓고 잤더니 모기에도 물리지 않았다.


수만 가지 종의 벌레에 물리지 않고 잠을 잘 잤다는 성취감에 난 씩식하게 샤워를 하러 간다.





이미 어제 신나게 샤워를 했던 깔끔한 샤워장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샤워를 한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생각하며 주문을 외듯 생각한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 오히려 더럽다는 것은 내 상념일 뿐이다.'


그렇게 무사히 샤워를 마친다.


기분이 좋아졌다.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이런 사소한 일에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깔끔한 인도 거리를 하염없이 걷는 것도 좋았고, 콜카타의 상징 마더 테레사 하우스를 찾아가는 길도 좋았고, 인도 박물관(Indian Museum)을 찾아가 둘러보는 것도 좋았다.


길가의 공공 화장실 옆에서 짜파티를 만들고 있는 주인과 농담을 하는 것도 좋았고, 짜이를 한잔 마시며 달라붙는 거리의 부랑자들에게 정답게 속삭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No Rupee, 짤루!'

'나도 돈 없다고!! 꺼져!'


모든게 좋았다.




1.인도에서 기차표 구입하기


인도에서 직접 기차표를 구입할 수 있으면 인도 여행의 절반은 준비가 된 셈이라고 한다.


하여, 나도 기차표를 구입해보기 위해 오후 일과를 투자하기로 맘 먹었다.


어제 구입했던 보다폰 심카드는 아직 개통되지 않아 말썽이었기 때문에, 기차표를 산 후 다시 대리점에 찾아가 개통해달라고 하면 맛있는 탄두리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보람찬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동남아시아 만큼은 아니지만 인도 역시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Travel Agency가 지천에 즐비했다.


기차표를 가장 쉽고 편하게 구매하는 방법은 숙소 주변에 있는 Travel Agency로 가서 기차표를 사면 끝이다.


물론 조금의 커미션이 붙겠지만, 여긴 인도다.


스위스나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붙어봐야 얼마 되지 않는 커미션일 뿐이다.


아무리 덤탱이를 써봐야 한국 돈으로 1~2,000원만 더 내면 된다.


하지만 난 그게 아까웠다.


그래서 무작정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영수증으로 이렇게 조악스런 종이 쪽지를 준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 영수증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연구하고 있으려니 옆에 앉은 인도인이 여기서 내리라고 말을 한다.


"그래요, 고마워요!"



인사를 하며 뛰어내리 듯 버스에서 하차한다.


인도의 버스 역시 탑승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올라타든 내리든 버스는 천천히 이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도 상황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우리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대한국민이 아니더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멋지게 착지는 했지만, 역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그렇게 역을 물어 찾아갔더니 조그만 티켓 부스가 나왔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표같은 것을 받아가는 걸로 보아 티켓 부스가 맞는 것 같았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에게 짤로를 외쳐가며 어렵게 창구 직원과 대면했지만 뉴 잘패구리(New Jalpaguri)라고 말하니 씨익 웃으며 다음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존엄성을 무시받은 난 표를 사고 있는 사람을 밀치고 창구에 머리를 디밀고 외친다.


"뉴 잘패구리(New Jalpaguri)!!"


창구 직원은 흠칫 놀라더니 만국 공용어를 사용해 여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난 멍청히 서서 깨달았다.


'인도인이라고 모두 영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콜카타에는 기차표 예매소가 따로 있다.


역도 아닌데 기차표를 파는 곳이 있다는 얘기다.


인도에서는 이런 예매소가 즐비해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기차표는 역이나 여행사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졌던 난 조그만 역에 가서 뉴 잘패구리행 기차표를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다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기차표 예매소를 찾는데 성공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과연 기차표를 살 수 있게끔 생긴 공간이 보였다.


웃으며 직원에게 다가가니 나를 제지하며 말한다.


'지금 점심 시간이야, 30분 기다려'


학습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미 ATM에서 돈을 뽑기 위해 3시간여를 사투했던 경험은 내 몸에 학습되어있는 것이다.


30분 쯤이야.


베토벤 교향곡 9번도 다 못 들을 정도의 짧은 시간일 뿐이다.


알겠다고 대답한 후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과연, 교향곡이 끝나기 전에 직원은 오후 업무를 시작하며 내게 손짓한다.




직원이 말한다.


"어디가?"


"뉴 잘패구리(New Jalpaguri)"


"여기 종이에 출발 역이랑, 도착역, 열차번호랑 원하는 자리, 날짜 적어서 돌려줘"



이미 인도 열차의 다양한 클래스와 침대를 선택하는 방법은 공부했기 때문에 의기양양하게 적어내린다.


열차 번호는 모르니 공란으로 남긴 채 직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난 직원의 "여기봐"란 소리와 함께 최면에 걸린다.


한국에서 10년 전에나 사용하던 CRT모니터가 시야에 나타난 것이다.


정말 10년 만에 다시 만나니 무지 반가웠다.


그렇게 난 때가 꼬질꼬질 묻은 CRT모니터를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직원이 뭐라고 말을 했지만 듣지 않고 흘려버린다.



그리고 받아든 기차표.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출발 날짜가 오늘로 잘못 적혀있는 것이다.


"여기 잘못됐어, 나 오늘 안가. 내일 갈거야"


그렇게 말하니 직원이 놀라며 말한다.


"내가 오늘 가냐고 말했을 때 너가 맞다고 했잖아!"


나도 놀라는 척하며 말한다.


"아냐~ 나 내일 갈거야. 이거 취소하고 다시 뽑아줘"


그러자 직원이 내가 기입한 종이를 내밀며 말한다.


"봐, 너가 출발 날짜 오늘로 적었잖아."


이번에는 놀라는 척이 아니라 진짜 놀랐다.


내가 날짜를 잘못 기입한 것이다.


게다가 취소를 하려면 취소 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취소 수수료를 낼 수 없었다.




여행사에서 쉽고 편하게 조금의 커미션을 내고 기차표를 구입할 수 있었지만, 어렵게 버스를 타고 물어물어 찾아온 예매소에서 취소 수수료까지 물어가며 기차표를 사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줘, 얼만데? 몇 시 출발?"



출발 까지는 5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 부랴부랴 짐을 싼다.


인도에서 타는 첫 기차이기 때문에 많은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특히 옆을 보는 사이에 짐을 가지고 증발(?)해버리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도의 소매치기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준비를 제대로 해야했다.



보조가방 지퍼 사이를 이리저리 와이어로 두르고 자물쇠를 두 개나 잠궜다.






완성!


다음으로 할 일은 핸드폰을 개통시키는 것이었다.


이미 돈을 다 냈지만 왜 아직 개통이 되지 않았는지 따질 겸, 독촉 겸 겸사겸사 보다폰 매장으로 달려간다.


"이거이거 빨리 다시 개통해줘, 나 오늘 다즐링으로 갈거야."





성공!!


원래 콜카타에서 하루를 더 보내려 했지만, 나의 바보짓으로 오늘 출발하게 된 나는 눈물을 머금고 게스트하우스의 주인과 이별한다.


그리고 여행자 거리인 Sudder street에서는 역까지 바로가는 버스를 탈 수 없기 때문에 걸어서 20분 정도를 이동한다.


땀을 뻘뻘뻘 흘리며 버스를 탔다.


인도사람들은 희한하게 머리를 땋은 잘 생긴 동양 남자가 땀을 흘리며 거대한 가방을 두 개나 메고 다니는게 신기했나보다.


계속 말을 건다.


게중에 기차역으로 가니 나를 데려다 주겠다는 남자 두 명을 만났다.


느낌이 왔다.


'날 기차역으로 데려다주고 돈을 달라는 수작인가!?'


하지만 길을 몰랐기 때문에 남자 두 명을 쫄래쫄래 따라간다.


머리 속으로 생각한다.


'만약의 상황이 일어나면덩치가 큰 놈을 때려 눕히고 가방을 벗고 작은 쪽을 제압해야겠다'


그렇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남자 둘을 따라가던 내 눈앞에 기차 역이 보였다.


남자 두 명은 내가 타야할 기차의 플랫폼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손을 흔들며 사라진다.


생각했다.



'난 아직 인도를 여행할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2. 기차를 기다릴 때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인도 콜카타의 기차역.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깔끔한 대합실에 한번 놀랐다.


개는 대합실에서 오줌을 싸고 있었고, 쥐는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사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국의 대 명절인 춘절때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탔던 적이 있었다.


'아수라'가 존재한다면 그 곳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들 만큼 난장판이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눈을 감고 되뇌인다.


나도 그들과 동화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도 초보 여행자처럼 멀뚱멀뚱 서서 기차를 기다릴 순 없었다.


그래서 개가 오줌을 싸고 쥐가 돌아다니는 대합실에 주저 앉았다.


그 때 부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절반 정도는 사라졌다.


기분이 좋아져서 습작활동을 시작한다.


DSLR을 꺼내면 시선이 집중될 것 같았기 때문에 작은 똑딱이로 인도의 기차역을 표현해보았다.








그렇게 저속셔터를 사용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는데 열중하고 있으려니 기차가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인도의 기차는 친절하게 영어로 상황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대신 플랫폼이 바뀌었으니 주의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잠깐 뭐? 플랫폼이 바뀌어?


배낭을 힘겹게 메고 뛸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그리 멀지 않은 플랫폼이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인도의 기차와 조우한다.



내가 택한 것은 SL등급 객실, 침대 위치는 3층이었다.


1층이 가장 편은 알고 있었지만 가장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것은 3층이다.


아무래도 첫 경험(?)이니 3층에서 인도의 기차를 경험해보는게 좋다고 결정한 것이다.




큰 배낭은 가장 밑바닥에 와이어로 묶어두고, 보조 배낭은 머리맡에 두고 역시 와이어로 묶어 두었다.


그런데 그 짓을 하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외려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들의 가방에는 아무런 시건장치도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게 더 현명하고 안전한 방법일까?'


아무렇게나 가방을 던져놓는 것과 와이어로 꼼꼼히 잠궈 도난을 방지하는 것.


억척스럽게 티를 내며 도난을 방지하는 모습 역시 표적이 될 수 있고, 현지인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자물쇠를 풀기에, 난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 많은 초보 여행자일 뿐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나를 원망하며 천천히 잠을 청한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아직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모닝콜처럼 날 깨운 것은 '짜이'파는 아저씨의 '짜이 짜이~' 소리였다.

(짜이 : 홍차에 우유를 끓여서 만드는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차, 생강이 가미된 것이 맛있다. 근래들어 전통 제조법을 무시한 채 홍차 티백에 따뜻한 우유를 섞어 만드는 저질 짜이도 탄생했다.)


'그래, 미달 누나가 인도 기차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마시는 모닝짜이가 최고라고 했었지'


"아저씨~ 여기요~ 짜이 한잔 주세요"


3층에서 고개만 배꼼히 내밀고 돈을 건넨다.


아저씨는 달리는 기차에서 능숙하게 짜이를 담아 건넨다.



기분이 좋아 상쾌한 마음으로 셀카도 찍었다.


내가 15년 전 쯤에 선물받았던 30만화소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화질이 구현되었다.

(30만 화소 토이카메라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 첫 디지털 카메라이기 때문에 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애석하게도 아이폰5 전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기차에서 마시는 짜이는 정말 맛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묶어둔 짐은 모두 안전하게 놓여있었으며 기차는 계속해서 질주하고 있었다.



기차표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출발해 결국 잘못된 날짜의 기차표를 구입한 것에서부터, 급하게 짐을 싸고, 핸드폰을 개통시키고, 생각보다 깔끔했던 인도 기차역 대합실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며, 모든 것이 아련하게 스쳐지나갔다.





참, 그런데 여행기가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냐구?


하루가 엉망진창이어서 그렇다.


굉장히 밝고 즐거운 엉망진창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웃으며 짜이를 다 마시고 나니 어느덧 기차는 뉴 잘패구리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