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즐링(Darjeeling)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덕분에 시내 곳곳에 위치한 식당에 거의 대부분 방문했으며, 연진누나와 산책을 하고, 밤에는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꽤나 지루해보이는 일상이지만 거짓말처럼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하루만 더 머물러야지', 그리고 그 다음날은 '또 하루만 더 머물러야지'라는 생각이 반복되었고 결국 난 열흘 가까이 다즐링(Darjeeling)이란 이름의 도시에 머물렀다.
우기였다.
믿기지 않지만 열흘내내 단 일 분도 햇살이 비치지 않았다.
오로지 흩날리는 건 비와 안개 그리고 내 마음이었다.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마음같아서는 집이라도 구해놓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지내고 싶었지만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햇살도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런 망상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던 찰나 이 도시가 내게 선물을 던져준다.
열흘 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던 파란색의 하늘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츄리링 바지를 올려 입고 머리도 제대로 감지 않은 채 집 앞 수퍼마켓에 가던 중 첫 사랑을 만난 기분이랄까?
다즐링의 햇살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다가와 금방 사라져버린다.
결국 DSLR을 꺼낼 시간도 없어, 작은 녀석으로 정신없이 찍어댄다.
혹여나 칸첸중가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봤지만 칸첸중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5분여가 흘렀을까?
다시 안개와 비가 도시를 감싸기 시작한다.
"그럼 그렇지. 이게 다즐링이지."
그렇게 난 열흘이란 시간 동안 안개와 비에 휩싸인 도시를 걷고 도시 외곽을 걸었다.
티벳 음식의 연하고도 매웠던 맛은 한국 음식을 생각나지 않게 만들어 주었으며,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볼리우드(Bollywood)영화를 관람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풍경에 놀라 찾아들어간 카페에서 마셨던 다즐링 차는,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커피보다 세 배 정도는 달콤했다.
그 맛의 근원을 찾기 위해 소나다에 위치한 차 밭까지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멋진 산책로를 발견했다.
일본인 친구 키무라는 숙소를 옮긴 이후 다즐링에서 만날 수 없었으며, 연진누나는 내가 떠나기 이틀 전에 기차를 타고 콜카타(Kolkata)로 떠나갔다.
몇몇 한국인들을 봤지만 말을 걸진 않았었다.
그 중 한 명의 남자는 네팔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다즐링에서 열흘동안 대체 뭘 했냐고 묻는다면, 위쪽에 나열한 것들이 그 답이다.
내 다즐링 여행기를 읽었다면 그런 질문은 하지 않길 바란다.
우기의 '다즐링'은 무엇을 해야하는 도시가 아니라,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는 도시였다.
다즐링(Darjeeling)을 떠나 다시 실리구리(Siliguri)로 돌아가는 지프에 탑승했었다.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안개가 걷혔다.
5분을 기다렸다.
거짓말처럼 햇살 쨍쨍한 날씨는 지속되고 있었다.
생각했다.
"뭐 이런 도시가 다 있지?"
안개 속의 도시 다즐링(Darjeeling)에 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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