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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다즐링) 협궤열차와 굼에서 만난 산책길

by 빛의 예술가 2013. 12. 21.

인도 다즐링(Darjeeling)에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열차가 있다.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뉴 잘패구리(New Jalpaguri)발 다즐링(Darjeeling)행 협궤열차가 운행했지만, 현재는 운행하지 않는다.

(2013년 7월 기준)


대신 "KURSEONG-TUNG-SONADA-GHUM-DARJEELING" 구간은 아직까지 협궤열차가 운행하고 있으니 꼭 한번쯤은 타보는게 좋다.


철로의 폭이 대략 90cm밖에 되지 않아 기차 폭이 매우 좁은 것도 인상적이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울울창창한 다즐링(Darjeeling)경치와 아찔한 낭떠러지, 그리고 우기가 아니라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산 칸첸중가와 능성이를 타고 도는 설산을 보며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기의 다즐링에 방문했다 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칸첸중가와 설산은 보기 힘들겠지만, 히말라야 산맥을 치감아도는 안개를 뚫고 달려가는 작은 기차 안에서 계속해서 탄성을 질러대는 당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연진누나와 나는 느즈막히 점심을 먹고 기차를 타기 위해 안개로 휘감긴 다즐링을 가로질러 역으로 향한다.


벌써 다즐링에 도착한지 나흘이 지났다.


그 동안 이 곳에는 햇빛이 한 순간도 들지 않았다.


방에 널어둔 스포츠 타월은 항상 촉촉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 타월로 몸을 닦으며 빨래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애석하게도, 숙소 창 밖으로 보여야할 칸첸중가는 구름과 안개에 가려 능선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다즐링(Darjeeling)발 협궤 열차(Toy train)는 하루 두 번 운행한다. (2013년 7월 기준)


그 밖에 JOY-RIDE란 관광상품을 개발해 하루 네 차례 운행하고 있었다.


물론 관광상품 답게 매우 비싼 가격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335루피) 협궤열차를 탄다면 일반 토이 트레인(Toy trian)을 추천한다. (2등석 20루피)


연진누나와 내가 역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JOY-RIDE기차에 탑승했다.(ㅜㅜ)


당신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래 기차 시간표를 찍어왔다.


위쪽이 토이 트레인, 10시 15분과 16시에 다즐링에 출발한다는 뜻이며, GHUM, SONADA, TUNG, KURSEONG 모두 다즐링보다 아래 있는 산간 마을 이름이다.








협궤열차를 탈 때 TIP이 있다면 다즐링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무조건 오른쪽 좌석에 앉는 것이 좋고, 반대 노선이라면 왼쪽 좌석에 앉는 것이 좋다.


험준한 산을 가로지르는 기차이기 때문에 반대편에 앉는다면 코 앞에 펼쳐진 산 능성이 밖에 볼 수 없다.


티켓을 구입할 때 오른쪽 좌석을 달라고 하면 된다.



연진누나가 나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은 이 때 알았다.


티켓을 구입하는데 여권번호와 이름, 나이를 적으라고 하길래 적고 있었더니 그녀가 말했던 것이다.


"어? 저보다 동생이네요?"


정확하게 누나가 몇 살인지 기억나진 않는다.


그래봐야 나보다 한 두살정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미달 누나와 수미 누나가 나보다 두 살 많은 마녀들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진누나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마녀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긴, 미달/수미 누나들도 처음엔 마녀같아 보이진 않았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기차에 탑승한다.


'누나들은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겠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협궤열차는 특유의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열차는 순식간에 다즐링을 벗어나 산 속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펼쳐진 산 중턱에 위치한 다즐링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그 풍광에 넋을 잃어 사진찍는 것도 잊은 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서둘러 작은 사진기를 빼내들고 찍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안개로 둘러싸인 다즐링은 그 정도로 아름다워보였다.









조이 라이드 트레인(JOY-RIDE TRAIN)이 상대적으로 비싼 이유는 왕복 운임 및 박물관 입장료 포함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바로 다음 역인 굼(GHUM)역 까지 밖에 운행하지 않으며, 박물관은 3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협소했기 때문이다.


대략 30분이면 다즐링역에서 굼역까지 도착할 수 있고, 그 전에 뷰 포인트(BATASIA LOOP)에서 한번 정차하게 되는데 우기가 아닐 때는 설산이 웅장하게 보인다는 곳이다.




굼(GHUM)역에 내리게 되면 보이는 박물관


히말라야 철도를 주제로 꾸며놓은 박물관이며,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대부분의 것들이 사진으로 촬영되어 전시되어있다.







난 이 곳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3분이란 시간을 소비했지만, 연진누나는 쿨하게 1분도 보지 않고 바깥으로 나간다.


얘기를 들어보니 다즐링(Darjeeling)에 두 번째 방문한 것이라 했다.


"여기요? 예전에 와봤어요... 볼거 없어요.."


연진누나는 마녀누나들과는 다르게 부산사투리가 약간 섞인 나긋나긋한 억양으로 말을 했는데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냥 돌아가기 아쉽지 않아요?"


굼(GHUM)역에서 다시 다즐링(Darjeeling)으로 돌아가기 위해 협궤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내게 누나가 말했다.


사실 아쉬웠다.


오는 길에 만난 풍경도 충분히 멋지긴 했지만, 누나의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 그녀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 때문일 게다.


혹은 다즐링(Darjeeling)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굼(GHUM)의 산책길을 만나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기차를 타지 않았다.


다즐링으로 돌아가는 협궤열차를 뒤로한 채 우린 굼(GHUM)시내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차에서 우리 찾는 건 아니겠죠?? 다즐링에서 동양인 두 명 실종. 그런 식으로 기사도 뜨고 ㅋ"


그렇게 농담을 할 때는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걸어봐요"


누나의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다즐링(Darjeeling)과 마찬가지로 이 곳 역시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천천히 걷던 중 몇 개의 갈림길을 만났으며 우리는 기분이 내키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누나는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강아지에게 던져줬으며 -_- (나도 배가 고팠다), 이 강아지는 귀엽고, 저 강아지는 더 귀엽다는 얘길 들으며 녀석들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모두 똑같아 보였다.


그러던 중 산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났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나무들은 안개 속에 파묻혀 있었으며, 가볍게 흩날리는 비가 적요한 분위기를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은 류의 적요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름도 없는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간혹 나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다즐링(Darjeeling)으로 가는 방향의 반대로 계속 걸어갔다.




산책을 좋아하는 연진누나는 시간이 될 때 마다 여행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혼자서 인도는 수 차례 다녀갔으며, 인도차이나, 남미까지 다녀온 사람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시큰둥 했다.


본인에게 여행은 치유(Hiling)가 목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얘기를 하며 안개 속을 걷고, 간간히 보이는 나무 숲 사이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길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자동차도,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걸으며 이 곳이 더 좋아졌다.


모든 것이 역동적이었던 미달/수미누나와 함께 했던 인도 차이나 반도에선 볼 수 없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고요하며, 안개가 휩싸일 때면 몽환적이기까지 한 이 도시가 마음에 쏙 들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4시가 지나고 있었다.


"누나 우리 다즐링까지 어떻게 돌아가죠?"


 - "기차 있으면 기차 타고, 없으면 걷죠 뭐"



그 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직 이 산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돌아갈 방법부터 생각하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랬다.


숙소까지 어떻게 돌아갈 지는 그 때가 되어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지금 해야할 일은 안개로 둘러싸인 이 몽환적인 산길을 계속해서 걷는 것이다.





그렇게 우린 해가 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걷고,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언제부터인가 다즐링 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계속해서 걷기 시작했다.



"내일은 더 멀리 가볼래요? 


내일 콜카타(KOLKATA)로 가서 태국행 비행기를 타야한다는 연진누나는 오늘 산책이 정말 좋았다며 내일 또 가자고 말한다.




그래서 내일도 목적지 없이, 방향만 잡은 채 계속 산책을 할 예정이다.


이 짧은 산책이 이번 내 세계일주와 닮아있었다는 사실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숙소에 돌아와 맥주 한병을 마시며 창 밖을 바라봤다.


나는 지금 인도 다즐링(Darjeeling)에 있다.


밤에도 어김없이 비와 안개가 도시를 휩싸고 있었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산책길을 함께 한 연진누나가 알려줬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걷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걷기 시작하면 안개로 치감겨 보이지 않던 풍경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