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로 갈까?"
다즐링을 떠나기 전 방향에 대해 고민했었다.
쉽사리 가기 힘든 인도의 시킴(Sikkim) 주로 갈 수도 있었고, 타지마할을 보러 인도 중심부로 방향을 틀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열흘 내내 기다렸던 칸첸중가(Kanchenjunga)를 보지 못했던 탓에 내 눈은 자연스럽게 네팔(Nepal)로 고정되었다.
그 곳까지 가면 칸첸중가는 아니더라도 8,000m이상의 고산을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에서였다.
이 여행기는 다즐링(Darjeeling)을 떠나 실리구리(Siliguri)에 도착해 네팔 국경도시인 카카르비타(Kakarvitta)를 건너 수도인 카트만두(Katmandu)까지 이동하는 이야기다.
시작부터 굉장한 사람과 만났다.
다즐링에서 실리구리까지 가는 합승 지프에서 찍은 위 사진을 보면 운전수의 단호함을 발견할 수 있다.
사이드 미러따위 접어버리고, 핸들은 당연히 한 손으로 잡은 채, 오른손으로는 전화를 하며 구불구불한 다즐링의 산 길을 내려가는 운전수.
'내가 운전을 할 때는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강한 신념이 묻어났다.
내게 운전술을 알려준 남자가 이 광경을 목도한다면, 옆에서 쉬지 않고 2시간 동안 욕설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 곳은 다즐링이고, 운전수의 삶의 터전이다.
내가 조금 걱정한 것과는 달리 아무런 사고 없이 지프는 굉음을 내며 산을 내려간다.
다즐링을 떠나면서 쉴 새 없이 펼쳐진 산과 구름의 풍광은 내가 높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줬다.
지프는 쉴 새 없이 굽이친 길을 달리며 정든 도시와 이별을 가속시켰다.
출발한지 3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평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믿을 수 없이 더운 공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다즐링에서 계속 입고 다니던 두꺼운 자켓을 배낭에 구겨넣고 지프에서 내린다.
다즐링은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고산에 위치한 도시라 이 곳보다 기온이 10도 정도는 낮았기 때문에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상황 파악을 하고 있노라니 호객꾼들이 줄지어 몰려든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그다지 기분이 좋지도 않은데, 내 주위를 둘러싼 호객꾼들에게 호의적일 수 없었다.
한바탕 성질을 부리니 그제서야 다들 내게서 멀어진다.
사실 난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욕설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
초등학생 때는 반에서 '욕 안하는 어린이'투표로 3위를 한 적이 있을 정도니, 아마 예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행을 시작하며 언제부터인가 그 사실이 변했다.
배가 고프면 뭔가를 찾아먹고,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고,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며 싸운다. 내가 지른 소리인데도 너무 커 나 조차도 놀랄 정도로 말이다.
졸리면 바닥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크게 웃었다.
그렇게 난 본능에 충실한 한 마리의 동물처럼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실리구리의 지프 정류장의 모습이다.
배낭을 맨 여행자들을 발견하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호객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에서 네팔의 국경 도시인 카카르비타(Kakarvitta)로 가는 합승 지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난 합승 지프에 올라타자마자 말 그대로 기절을 했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귀중품을 잃어버렸을 때 드는 상실감이 아니라, 뭔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지나갔을 때 드는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지프에서 내리니 내 앞에 떡 하고 아래와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여기 네팔 아니야?!?!'
인도의 출국 심사도 받지 않은 나는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인도와 네팔 사람들이 비자 없이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당연히 지프가 인도의 출국장에 멈춰설 줄 알았던 것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급히 묻기 시작했다.
"야 여기 어디야? 인도 이미그레이션 어디야?"
-"여기 네팔 국경, 인도 이미그레이션 벌써 지났지. 뒤로 2km 돌아가야 돼"
그래서 돌아갔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저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한참 걸어도 인도 이미그레이션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조우한 더위와, 가야할 곳을 지나친 사건 때문에 심술이 날 대로 난 내 모습이다.
계속 걷는다.
다리가 하나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리를 건너가면 된다고 한다.
좋아! 다리 하나 건너는 건 일도 아니지.
오산이었다.
다리가 1km는 되어보였다.
끝도 보이지 않는 인도-네팔 국경 다리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이 인도의 국경 마을이다.
저 멀리 INDIA표지판이 보이길래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갔지만 세관이었다. -_-
이미그레이션은 더 들어가야한단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재촉한다.
인도의 이미그레이션은 이런 곳에 숨겨져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출국장이다.
다가오는 출국장
아니, 내가 다가가는 거겠지.
어느 나라든지 출국 절차는 간편한 편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출국 서류 한 장을 작성해 던져주면 출국 도장을 찍어주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인도는 뭔가 작성할 것이 많았다.
두 장이나 있었다.
배낭을 메고 낑낑거리며 걸어온지라 떨리는 손으로 출국 서류 두 장을 작성하고 기다리고 있노라니 10분 내내 보이지 않던 심사관이 어디선가 어슬렁 거리며 나타난다.
"출국해?"
-"응. 네팔 갈려구"
"네팔은 왜 가는데?"
-"여행"
"인도 다시 들어올거지?"
-"응"
"코리아, 한국에서 왔네?"
-"응"
"안녕하세요. 이거 맞나?"
-"응"
난 그렇게 기계적인 답변으로 출국을 한다.
더웠고, 배가 고팠으며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네팔에 입국할 때는 더웠고, 배가 고팠으며 목이 말랐지만 생글거리며 비자를 받았다.
그게 입국과 출국의 차이점이다.
이렇게 인도의 출국 도장을 받았다면 다시 걸어가야한다.
아까 그 곳으로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한탄하며 옆을 쌩하고 지나가는 릭샤를 힐끔 거렸지만 탈 수 없었다.
'좀 걷지 뭐. 길도 아는데.'
그렇게 헥헥거리며 다시 처음 왔던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네팔은 강력한 모습으로 나에게 환영 메시지를 날린다.
대체 관리는 하는건지, 녹이 슬대로 슬어버린 네팔의 환영 표지판.
최빈국 중 한 곳인 네팔의 경제 사정이 이 한 장의 사진에 묻어나는 듯 해 마음이 조금 아팠다.
물론 내가 덥고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팠다.
어서 국경을 넘어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시 돌아온 그 곳.
하지만 인도 출국 도장을 받은 이제는 웃으며 문을 지나갈 수 있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문 위에 세워져있는 네팔 특유의 지붕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네팔 출국장은 문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우측에 보인다.
계속 앞만 보고 걸어가면 지나치게 되니 주의해야한다.
밀입국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앞만 보고 걸어가면 밀입국에 성공할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뒷 일은 책임지지 않는다.
이 곳에서 쉽게 네팔 입국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발급비는 미국 달러 30USD이며, 네팔 루피도 받는다. 네팔 루피를 낼 경우 1,800루피다. (15일 단수 비자)
이제 네팔 입국 비자와 도장을 받았다면 지옥의 국경 넘기를 행할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도록 하자.
아무 것도 아니니 말이다.
네팔 이미그레이션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유혹하는 릭샤는 과감히 뿌리치도록 하자.
네팔 카카르비타(Kakarvitta)의 버스 정류장
우측에 보면 표를 파는 회사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맨 우측에 있는 부스에 가면 그나마 가장 상태가 좋은 카트만두행 버스 티켓을 끊을 수 있다.
네팔 루피/인도 루피 모두 받고 있으며 달러는 받지 않는다.
나 역시 디럭스(Deluxe)급의 버스를 타고 싶었다.
그런데 돈이 애매했다.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쏟아부으면 가장 좋은 등급(Class)의 카트만두행 버스표를 살 수는 있었지만, 밥 먹을 돈이 없었다.
결국 논 디럭스(None-Deluxe)라는 등급의 버스표를 구입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심지어 가격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다)
지옥행 논 디럭스 버스 여행이 시작됨을 알리는 서막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후에 있을 일은 전혀 모른채, 난 버스비를 아껴 네팔의 전통음식 달밧을 먹으며 행복을 만끽한다.
최후의 만찬이다.
네팔의 디럭스(Deluxe)버스
설마 이게 디럭스(Deluxe)버스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진짜 디럭스 버스가 아니다.
하지만 볼보(Volvo)에 대한 동경 탓에 타타(TATA)자동차에서 만든 버스라도 볼보 마크를 붙여두고, 이처럼 디럭스(Deluxe)같은 문구도 붙여두는 것이다.
인도/네팔에서는 볼보(Volvo)라는 일개 자동차 브랜드가 최상급의 버스와 동의어이다.
그래서 인도/네팔 여행 시 버스표를 구입할 때 등급(class)이 궁금하다면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이거 볼보 버스야?" = "이거 최고급 버스야?"
내가 탄 Non-Deluxe버스는 아래 사진이다.
위쪽에 찍힌 가짜 볼보 버스보다 훨씬 위풍당당하고 잘 나가게 생겼다.
물론 외관만 번지르르할 뿐이었다.
내가 탄 건 분명 카트만두(Katmandu)까지 가는 버스였는데, 이건 택배차였다.
직원으로 추정되는 세 명의 사람들이 탑승해 이리저리 전화를 하며 작은 마을을 돌고 돌며 운반할 짐을 받고 있었다.
'그건 단순 탁송서비스가 아니냐?' 라고 묻는 당신들에게 변명한다.
이 버스는 사람보다 짐이 많이 탄다.
아, 물론 좌석에 사람은 모두 앉는다. 복도에도 사람이 탄다. 지붕에는 짐과 기타 생명체가.. 탑승한다.
그리고 이 흔들린 사진을 마지막으로 카트만두에 도착할 때 까지 사진이 거의 없다.
내가 버스에 탑승하고 분명 버스가 출발했는데 1시간에 1km를 달리는 속도를 보여주었다.
'시속 1km의 버스'
물론 이런 일, 겪은 적 있었다.
라오스 사바나켓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하는데 100번도 넘게 정차를 했던 그런 버스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건 더 심했다.
출발한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미 100번을 정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 명의 직원들은 추진 영업(?)을 시작한다.
짐도 싣고, 달리는 버스에서 머리를 내밀어 계속해서 지명 이름을 말한다.
행인이 손을 들면 멈춰서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4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버스에 사람과 짐이 혼재된 채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타기 시작한다.
복도에 무릎을 꺾은 채 한 줄로 끼여 앉는다.
그제서야 지옥행 버스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 앉은 아저씨의 엉덩이가 너무 컸다.
난 왜 매번 버스를 탈 때마다 펑퍼짐하고 거대한 엉덩이의 인물이 옆자리를 차지하는가? 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찰나, 이번에는 복도에 앉는 남자가 내 다리에 기대 침을 흘리며 자기 시작한다.
참을 인자 하나를 새긴다.
버스에 에어컨은 없다.
창문을 열고 달리지만, 바람도 세차게 불지 않는다.
땀이 흘렀다.
참을 인자를 한 번 더 새긴다.
버스가 멈춰선다.
사람이 또 타기 시작한다.
난 분명 좌석에 앉아있는데 다리를 펼 수도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난 20시간 동안 지옥행 버스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악전고투했다.
엉덩이를 디미는 아저씨에게서 내 좌석을 지키며, 반대쪽엔 계속해서 침을 흘려대는 복도에 구겨앉은 남자의 얼굴을 반대로 돌리며 말이다.
아주 다행인 사실은 좌석이 뒤로 조금 넘어간다는 것 뿐이었다.
지붕에선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난 이런 역경 속에서도 잠을 잤다.
깨어나니 날이 밝아있었고, 버스는 폭우로 뒤집어진 도로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카트만두에 도착하기 2시간 전 도착한 휴게소에서 버스 사진을 찍으려고 쳐다봤더니 지붕에 염소 한마리가 올라가 있었다.
야생 염소가 아니라, 배달용 염소였다.
두마리였다 -_-
어쩐지 천장이 심하게 쿵쾅대더라니.
그리고 이 지옥행 버스는 카트만두에 도착해서 내게 선물을 던져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레인커버가 찢어지고, 녹이 묻은 채 눈 앞에 나타난 내 배낭이 그 선물이었다.
그런데 이 선물을 받고나자 20시간동안 힘들었던 그 버스가 거짓말처럼 뇌리에서 사라졌다.
정말 우습게도 말이다.
카트만두에 도착해 땅을 밟았다.
그리고 내 배낭도 영광의 상처와 함께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사라지고 네팔에 도착한 그 순간이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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