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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카트만두) 카트만두와 타멜 거리에서 깨닫는 나와 당신의 삶

by 빛의 예술가 2014. 2. 21.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위치한 곳을 수도(Capital city)라 칭한다.


우리나라의 수도는 서울과 세종이고, 중국의 수도가 북경이듯, 한 나라는 보통 한 곳에서 많은 경우 세 곳 정도의 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네팔(Nepal)의 수도는 카트만두(Kathmandu)다.




처음 카트만두 깔랑키에 도착해 찢어진 레인커버와 녹으로 범벅이 된 멜빵끈을 부여잡고 바라본 시내는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아주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그랬다. "이게?? 한 나라의 수도야?" 


지금껏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그 나라의 수도를 방문해 봤지만 이토록 처참한 광경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폐차장으로 가기 직전인 만신창이의 버스가 도로를 활보하고 있었고, 그 도로마저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흩날리고 있었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칭칭 감겨있는 전선 탓에 전신주는 이미 본연의 기능을 상실해버렸다.


땅에 고정되어 전선의 무게를 지탱해야할 녀석은 외려 전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것에 묶여 늘어진 상태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기울어진 전신주를 바라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당신들 그리고 나를 떠올렸다.


꼴이 우습냐는 전신주의 질문에 '주체가 되어야 할 것들이 외려 객체에 묶여 그 힘과 방향성이 전도되어버린 게 아니냐?' 반문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꼴이 우스웠다.


전신주 주제에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가소로워 조소했다.


그리고 녀석을 향한 비웃음이 우리를 향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티슈를 꺼내 멜빵에 묻은 끈을 벅벅 문질러댄다.


조금 나아졌다.


이대로 배낭을 메면 멜빵에 묻은 녹이 내 셔츠에도 묻어버리겠지만 괘념치 않기로 마음 먹는다.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난 전신주처럼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배낭을 끌어올린 채 여행자 거리인 타멜(Thamel)로 발길을 향한다.





카트만두의 타멜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내가 가본 어떤 여행자 거리보다도 광고판이 많았던 곳'이다.


광고판만 바라보고 천천히 길을 걷더라도 내 눈 앞에 들어오는 광고판의 절반 밖에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그 것들은 넘쳐났다.


그리고 진짜 카트만두를 보기 위해선 이 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실제로 론니플래닛에서 소개하는 카트만두의 타멜은 태국(Thailand)의 카오산(Khaosan)에 버금갈 정도로 여행자들을 위한 기반 및 유흥시설 따위가 잘 차려진 곳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당연히 이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타멜 밖으로 나가지 않는 여행자들이 부지기수지만, 타멜을 벗어나 아주 조금만 걸어나가도 전혀 다른 카트만두를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숙소는 타멜 거리에 위치해 있고, 대부분의 음식점, 주점 역시 타멜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서점과 카페, 여행사, 등산용품점도 쉬이 찾아볼 수 있으며 한국어로 쓰여진 밥집과 숙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카트만두에서 선택한 숙소는 체리 게스트하우스라는 이름의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숙소도 고려해봤지만, 수미달 누나들 더불어 연진누나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지라 조금 더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들 좋은 사람들이었고, 함께 했을 때 즐거운 기억만 가득했지만 수 십년을 모른 채 살아오던 타자와 만나 의견을 조율하며 함께 여행을 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내키지 않아도 해야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잃어야하는 것도 생긴다.



사가르마타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이들의 비참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은 '초모랑마' 혹은 '사가르마타'라고 불려야 옳다.


이들이 애초부터 그렇게 불러왔으며 지리적 경계 역시 이들의 영토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의 높이를 잴 수 있다는 에베레스트란 사람이 찾아와 산을 측량하고는 이름을 바꿔버렸다.


더 우스운 사실은 네팔 정부의 허가조차 받지 않은 채 자행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말한다.


'네팔? 거기 뭐 국력도 없고 돈도 없는 나라여서 그렇지 뭐'


그렇게 우린 당한다.


'독도는 우리 땅'


물론 빼앗길지 지켜낼지 그건 모른다.


하지만 이미 독도와 다케시마, 동해와 일본해를 병행표기하고 있는 세계 지도가 부지기수라는 점부터가 뺏긴 것이다.


나 역시 그 것이 언제부터 시작된 일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자고 일어났더니 동해가 일본해로 변해 있었고, 독도가 다케시마로 바뀌어 있었다.


참 지랄맞게도 말이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가르마타가 에베레스트란 이름으로 돌변했다.


더 서글픈 사실은 그 것이다.


무수히 많은 여행사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코스(EBC)를 적시해둔 곳은 있어도, 사가르마타 베이스캠프 코스라 말하는 곳은 없다.


이미 본래 이름을 회복할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뭐 그렇다.


훗날 당신이 바다보며 소주에 회나 먹자고 작업중인 여자 혹은 남자에게 '오늘은 서울로 못 돌아가겠네. 여기서 쉬고 갈까?'를 외쳐대기 전,


'우리 일본해나 다녀올까?'라고 말했을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배낭을 와이어로 묶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신종 털이 수법이 있는데 낚시대를 이용하여 창밖에서 배낭을 끌어 훔쳐간다는 게 그 것이다.


이왕 혼자가 된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싱글룸(Single room) 체크인이라는 호사를 치르고 있는데 배낭을 묶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우스워졌다.


'이 방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원칙적으로는 그 것이 맞다.


하지만 '어떤 것'은 들어올 수 있다.


소문에 따르면 그 것은 낚시줄인 셈이다.




이렇듯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간절해진다.


매우 단순하여 보통의 일상을 살아갈 때와는 제법 다른 욕구인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통의 일상을 살아갈 때는 어떤 욕구가 있었던가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의 전신주로 태어났던 내가 자의든 타의든 몸에 전선을 감아가며 결국 그 것에 의존해 지탱할 수 밖에 없어진 현실과 그 전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상따위가 생각났다.


분명 이 전선을 풀어버린다면 쿵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쓰러져버릴 것이란 것도 생각났다.


사실 여러가지를 알고 있었다.


단순했다.


보통의 일상을 살아갈 때는 주체적 삶에 대한 욕구였다.


역설적이지만, 주체적으로 변하기 위해선 옆으로 쓰러질 필요가 있었다.


분명 그랬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여행 중에 세 번째로 먹는 라면이자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주문해 먹는 라면이었다.


그렇게 땀을 흘려대며 물을 들이켜가며 가까스로 라면 한 그릇을 비워낸다.


그 모양새가 우스웠을까? 내가 라면 먹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국인 커플이었다.


분명 장소는 한식당이었지만, 난 중국 사람들을 알아보는 촉이 나쁘지 않다. 내가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원하게 물을 마신 후 말하기 시작한다.


"뭘 봐?"




그네들은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내게 포카라(Pokhara)에 다녀왔는지를 물어본다.


그 억양을 듣고 국적을 확신한다.


그리고 중국어로 말을 바꾼다.


"아니, 여기 머물다 포카라로 갈거야"


그렇게 말을 했더니 뭐가 그리 반가운지 연신 웃으며 나를 살갑게 대하기 시작한다.


숙소 이야기에서부터, 포카라는 좋으니 꼭 가보라는 둥 실없는 얘기로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진다.


어색하게 사진을 찍는 것에서부터 메신저 아이디 교환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불필요한 이야기를 네팔 여행기에 적는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과는 카트만두에서 지내는 1주일 동안 가끔씩 만났다.


이 역시 불필요한 이야기이며, 불필요하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적은 문장일 뿐이다.







네팔의 카트만두는 중세시대의 모습을 잘 보존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더르바르광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면 믿을 수 없는 규모의 고대 건축물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우습게도 현대의 네팔인들이 지어놓은 신식 건물보다 높고 위풍당당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네팔의 카트만두이다.





난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이 공간을 걸으며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혼자가 되었고, 대부분의 시간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금해졌다.


과연 나는 내 몸뚱아리를 치감아 돌던 전선 중 몇 가닥이나 제거한 것일까?


아니, 제거 하긴 한 걸까?


제거 했다면 난 쓰러진 것일까? 혹은 몇 가닥 남은 전선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중일까?


어찌되었든 이런 불필요함 속에서 필요함을 찾아내어, 스스로 위풍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을까?








생각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