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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카트만두-포카라) 라면을 먹다 결정한 안나푸르나 트래킹

by 빛의 예술가 2014. 5. 2.


'인도로 돌아가야겠다.'


네팔에 도착한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인 파키스탄 비자 수령에 실패했으니 아쉬울 게 없었다.


하지만 태국의 카오산에 버금가는 여행자 기반시설을 갖춘 이 곳,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이나 '인도로 돌아가야겠다.' 다짐만 한 채 계속해서 카트만두를 배회하는 여행이 계속되었다.





더르바르 광장은 몇 차례나 다녀왔지만 단 한번도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일부러 돈을 내지 않으려고 꼼수를 쓴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표소를 보지 못했고, 광장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 터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었기 때문에 돈을 내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곳에 세워진 많은 중세 유적들은 현재 네팔사람들의 삶과 공존하고 있었다.


입장료를 내야한다는 사실은 마지막 방문 때 깨닫게 되었다.






간만에 머리를 감고(?) 상쾌하게 광장을 산책 중이던 나는 여느 때와 달리 머리를 풀어헤친 상태였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광장 구석구석을 촬영하고 다니던 중 경비원 한 명이 달려와 내게 묻기 시작한다.


"티켓?"


그 말을 듣고나서 내 머리속에서는 이 사람이 정말 경비원인지 아닌지 생각하기 시작했고, 옷차림과 장비로 봤을 때 진짜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럴 때는 되물어보기 방법이 최고다.


"Ticket for what?"


그러자 경비원은 한 손을 쭉 뻗어 어느 곳을 가리켰는데 거짓말처럼 그 곳에는 매표소가 존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가격도 뚜렷하게 적시되어있었다.


[외국인 : 750 네팔 루피]


한화로 거의 8천원에 육박하는 믿기지 않는 가격에 잠깐 동안 매표소의 실체를 의심하게 되었지만, 외국인들이 그 곳에서 표를 사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튀어야겠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다녔을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니 한 방에 경비원에게 걸렸다.


지금 보니 드레드 락을 푼 모습도 꽤나 단정한 편인데 왜 경비원의 눈에 쏙 들어갔을지 그게 의문이긴 하다.


지갑 속에 750루피라는 거금이 없었던 나는 경비원에게 말했다.


"그럼 나 돌아갈래"



경비원은 순순히 나를 놔주었고, 그 때 부터 난 미달누나가 유적지를 보는 방법을 사용해서 더르바르 광장 곳곳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참, 간만의 포스팅에 잊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다시 알려주겠다.


미달누나가 유적지를 보는 방법은 "지붕만 보면 다 본거다."의 명제에 입각하고 있다.





거짓말처럼 경비원을 피해 옆으로 돌아가자 건축물의 지붕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타까운 눈으로 열심히 지붕만 찍어대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애처로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 중 가장 슬픈 눈으로 본인을 쳐다보던 네팔인 아주머니.





'750루피 없으면 냉큼 꺼지라'고 말하시는 듯한 처량한 눈빛이다.




그리고 난 포카라로 이동했다.


네팔과 인도 국경은 여러 곳이 있지만 이 곳에서 가장 쉽게 인도로 입국하는 방법은 포카라를 지나 고락푸르로 향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카카르비타로 가는 지옥행 버스를 타고싶지는 않았다.


더불어 포카라에 가면 히말라야 16좌 중 한 곳인 안나푸르나가 시내에서도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은 우기이기 때문에 베이스캠프까지 가더라도 아무 것도 보고 오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버스는 쾌적한 편이다.


소요시간은 약 6시간 정도이며, 아침에 출발하는 첫 차를 타면 점심이 조금 넘어 포카라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포카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시내버스를 타고 레이크 사이드(Lake side)로 향하는 일이었다. (요금 : 15 네팔루피)


이 곳의 여행자 거리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뉘는데 댐 사이드(Dam side)와 레이크 사이드(Lake side)가 그 것이다.


물론 후자 쪽이 훨씬 번화했고, 대부분의 기반 시설은 이 곳에 모여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이 때 까지는 무거운 가이드 북도 열심히 들고 다녔다.


추천된 숙소를 훑어보니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무작정 걷던 중 히말라야 인이라는 숙소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곳은 나의 세계일주 중 좋았던 숙소 Top10에 들 정도로 안락하고 좋은 시설을 자랑했다.


싱글룸 요금은 300네팔루피로 조금 비싼 편이지만 한화로 대략 3천원이라고 생각하면 부담없이 머무를 수 있다.


외관 사진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중국인 사장 혹은 중국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호텔로 추정된다.




호텔 객실 내부다.


내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아 지저분해 보이지만 찬찬히 보면 매우 깔끔하게 쾌적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형광등의 조도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5개의 등을 개별적으로 끄거나 켤 수 있을 정도였다.




화장실도 쾌적 쾌적




짐을 대충 풀어놓고 출출해진 나는 라면이라도 먹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포카라의 레이크 사이드는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지만 끝에서 끝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도 무방하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 '산촌 다람쥐'에서 라면을 주문하고 신나게 기다리기 시작한다.





사실 카트만두에서 한식을 무지막지하게 먹었기 때문에 그리 그립지는 않았지만, 매번 먹을 때 마다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 주던 라면이다.





나는 건물 바깥 테이블에서 라면을 먹었기 때문에 계산을 하러 건물에 들어간 찰나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주인이 내게 묻기 시작한다.


"어 한국 사람이었어요? 나 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 "하하핳핳핳 라오스 사람 같진 않구요?"


"좋게 말해서 태국이었는데, 사실 라오스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트래킹 안해요?"


- "네? 트래킹이요?"


"네 트래킹이요"


- "아-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지금 우기이기도 하고.."


"같이 가세요. 이 분 내일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시는데"


여주인이 가리키는 사람을 보니 남자 한 명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라고 생각했더니 다즐링(darjeeling)에서 한 번 마주쳤던 한국인 남자였다.




그 남자는 정확하게 내일 아침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간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난 트래킹 준비물이 전무한 상황이었으며, 방금 전에 이 곳 포카라에 도착한 상황이라 트래킹에 회의적인 입장이 강했다.


덧대어 우기의 히말라야 트래킹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거머리와 싸워야 하며 어렵사리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가도 설산을 못 보고 내려오는 경우가 태반이란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네팔 비자 만료 기일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었다.


심지어는 안나푸르나 입산 허가서도 없었다.



그런 악 조건이었지만 남자와 여자 주인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입산 허가서요? 여권이랑 돈 주시면 여기서 내일 아침에 받아 줄게요. 그럼 되잖아."


"네팔 비자요? 얼마나 남으셨는데요? 7일이요? 여기 이 분은 6일 남았어요."


"운 좋으면 설산 보는거고.. 사실 올라가실 때는 안보이겠지만 새벽이랑 밤에 봉우리가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거머리는 소금 바르면 돼. 소금."


"트래킹 준비물 별거 없어요. 필요한거 있으면 여기서 빌려가세요. 개인 짐도 맡아줄게요"




그렇게 난 30분도 채 되지 않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결정한다.


남들은 30일 넘게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떠난다고 하던데, 난 어찌된 영문인지 30분 만에 결정을 해야했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 속에서 트래킹에 관한 시뮬레이션이 시작 되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기 15시간 전의 일이다.








산촌 다람쥐는 한국인 트래커들의 집합소와도 같은 곳이었는데, 등산용 폴이나 장화, 배낭, 레인커버 따위를 무료로 대여해 주는 곳이었다.


트래킹을 할 때는 일단 몸이 가벼워야 했기 때문에 배낭 하나를 빌려 그 곳과 보조 배낭에 필요없는 물품을 구겨넣기로 결정했다.


그 남자와 나는 의기 투합하여 내일부터 시작될 산행을 준비하기로 마음 먹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짐을 꾸리는 일이었고, 그 다음은 초코바와 소금을 구입했다.


그리고 한국인 보다 한식을 더 잘 만드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찾아가 네팔 전통 막걸리인 '창'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걸리를 마시며 결정했다.


"ABC 4박 5일이면 충분하겠죠?"


남들은 보통 6박 7일, 길면 9박 10일까지도 잡는 일정이라고 하던데.. 우리는 트래킹에 관한 지식이 전무했으며, 비자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 해버렸다.


마지막 남은 막걸리로 건배를 하며 내일부터 시작될 트래킹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남자와 난 이 여행에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게 된다.


물론 그 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라면을 먹다 30분도 고민하지 않고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