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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잡문(旅行雜文)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물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by 빛의 예술가 2013. 9. 20.

그런 질문 많이 받는다.


여행을 하다 만난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은 내 나이나 이름, 국적따위의 속칭 한국인이 궁금해하는 애초에 정해진 정보보다 내가 '무엇을 하던'사람인지 궁금해 했다.


가끔 답변조차 귀찮을 때는 얼렁뚱땅 '대학생'이라 답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했던 일에 큰 관심을 보인다.


내가 적당히 가감을 해 극적인 플롯을 꾸며내는건진 몰라도, 사실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거기에서 내가 '무엇을 했던'사람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다.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에 만난 우리가 과거에 무슨 짓을 했던,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고 여행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그런 질문을 받았다.


주로 동양인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또래들은 모두들 일하고 있잖아요? 돈 벌고, 저축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책임을 다 하고 있는데 불안하지 않으세요?" 



아마 그런 취지일 것이다.


'네 나이 또래들의 친구는 모두 번듯한 직장을 구해 일을 하고, 경력을 쌓고, 비전을 만들고, 주변의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재형저축을 꾀해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내집 마련의 장대하고 달콤한 꿈을 위해 비상하는데, 대체 넌 수 만 불이나 되는 돈을 탕진하며 무슨 뚱딴지 같은 세계일주냐?'


내 친구들을 생각하며 불안하지 않냐고?


그래, 사실대로 휘갈겨적자면 졸라 불안하다.




월급 꼬박 꼬박 입금해주던 회사 때려치고 나와서 불안하고,


고작 2년 남짓한 경력으로 나중에 뭐 해먹고 살아야하나 불안하고,


좋은 직장에서 덤으로 얻은 중국어 회화 실력 다 까먹을 것 같아 불안하고,


이렇게 계속 한국을 비운 사이, 내 예비 신붓감이 모두 증발해 버릴까 불안하고,


귀국 후 어디에 머물러야할지 불안하고, 어떻게 다시 집을 구해야할지 불안하다.


다시 전 직종의 일에 종사하며 느낄 예정된 자괴감에 불안하고,


우리나라 사회의 수직적 구조에 악착같이 비집고 들어가 적응할 생각에 불안하고,


각종 전기세, 수도세를 비롯한 공납금에 갑근세, 운이 좋으면 을근세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어떤 중립성도 용인치 않는 우리네 정치판에, 다시 회색분자가 되어야한다는 절망에 불안하다.


한국에서 연일 쏘아대는 신문을 위시한 매스미디어의 난립을 피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언젠가는 도피를 목적으로 '여행'을 선택하지 않을까 불안하고,


주위 사람들의 애처로운 시선, 그리고 그 기대에 불안하다.




그래 졸라 불안하다.


그런데 당신 그거 알고 있나? 세상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 없다는 것.


누구든 그 불안이란 놈을 자기 통제하에 두려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그런 일, 불가능하다.


해서, 난 그런 모든 류의 불안감을 짊어지더라도, 가장 먼저 내가 누군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그 것을 아는 게 내 행복의 시발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쯤되면 질문은 멈추기 마련이지만 어쨌든 끝까지 딴지를 거는 부류들이 있다.


좋은 자세다.


항상 질문을 던지는 것, 그런 자세로 임한다면 당신이 사모하는 여자의 쓰리 사이즈를 알아내는 것도 시간 문제일터.



"그거 한국에서 하면 되잖아요. 왜 하필 여행, 그것도 세계일주에서 본인을 찾으려고 하세요?"



난 그렇게 말한다.


그거, 한국에서 안된다. 절대로 못한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말이다.


그래서 난 그렇게 대답한다.


"The fish doesn't know what is water until jumping up and out of the water."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물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끝.








p.s. 물론 나의 생각으로 성급한 일반화는 할 수 없다. 당신 스스로가 매우 비범하고, 무척이나 현명하여 앉은 채로 세상을 깨우칠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스스로를 찾아내는 일, 가능할 거라고 본다. 혹은 평생을 '나는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 페르소나에 갇혀 살아가든지. 


p.s.2 각설하고, 지금 당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 행복이 거짓에서 우러나온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양 팔 벌려 당신의 행복 그리고 그 지속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