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물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2013/09/20 - [여행 잡문(旅行雜文)] -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물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 밖에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이 있다.
윗 글에서 통제할 수 없는 불안에 대해 설명했지만, 사람들은 세상의 온갖 불안을 통제하려 한다.
무엇으로?
돈으로.
사람들이 불안에 대처하는 자세는 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열심히 재형저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월급을 100원 받아 50원을 저축하고 60원을 저축한다.
미래의 불안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언제 병들어 큰 병원비가 필요할지 모르고, 언제 배가고파 음식을 사야할지 모르고, 언제 추워져 두꺼운 옷이 필요할지 모르고,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위해 집 살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때 100원이란 월급에서 어느정도의 금액을 미래에 있을 위험에 대비할 것인지는 개개인의 가치 판단에 의거한다.
월급 100원에서 90을 저축할지, 10을 저축할지는 모든 개개인이 상이한 것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할 때는 열심히 저축을 했었다.
대체 내가 왜 저축을 하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100원 가운데 70 심지어는 80가까이 저축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한 달에 20원 밖에 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100원을 받으면 100원 모두 써버리는 부류들이었다.
하지만 우린 그 부류들이 절대 멍청하거나, 기분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알아둬야 한다.
가치 판단일 뿐이다.
그들에게 '미래에 있을 불안'은, '있지도 않을 불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에 더 충실한 것이다.
지금 100원을 쓸 수 있고, 100원을 쓸 때 내가 행복할 수 있으니 지금 100원을 쓴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논리인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자들의 불안에 대처하기 위한 모습이나 자세가 다양한 것에서 투영된다.
그 중의 하나가 '짐'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낭을 메고 앞으로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보조배낭까지 메고, 양 손에는 손 가방까지 들고 다니며 힘겹게 이동을 하는 여행자들이 있는 반면,
'정말 그게 가진 짐의 전부예요?'라는 질문을 나올 법한 간촐한 차림의 여행자들도 있다.
나도 후자였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랩탑에 DSLR까지 들고 다니는 전자에 가깝다.
난 무엇이 두려워 이런 전자기기들을 들고 다닐까? 반문해 본다.
사진 작업?
사실 난 장난스럽게 주장하는 것처럼 사진작가가 아니다. 사진과 인연을 맺은 시간에 비해 그리 멋진 사진을 찍을 줄도 모르고, 친구의 말처럼 '사진기를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내 사진 실력으로 봤을 때,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중고로 구입한 8만원짜리 캐논 익서스로도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난 무언가가 두려워 이 세상에 나온지 8년이 되어가는 구형 DSLR에 세로그립, 렌즈까지 두 개씩 들고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게다가 그 사진을 저장하고, 작업하고, 글을 남기기 위한 랩탑은 덤인 것이다.
총 무게만 해도 5Kg가까이 된다.
무겁다.
심지어 도미토리 숙소에 지낼 때는 분실의 위험 탓에 그 모든걸 짊어지고 다닐 때가 많다.
난 대체 무엇이 두려웠을까?
그렇게 난 나를 둘러싼 불안에 대해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배낭안에 든 물건들을 하나씩 버려보기로 했다.
세계 각국, 여러 도시에서 내 물건을 버리기 시작한다.
먼지가 많이 날리던 그 나라, 수도에서 바지를 한 벌 쓰레기 통으로 버렸으며.
사막이 있던 그 나라, 어느 사막 도시에서 옷가지 한 벌을 쓰레기 통으로 버렸었다.
그렇게 하나씩 버리다 보니 많은 것을 버려도 그리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지금은 이동 중 내 대형 배낭을 통째로 잃어버려도 여행의 지속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할 정도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아까 말했던 DSLR이었다.
내 구형 DSLR은 팔아봤자 지금 20만원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오래 전에 출시된 모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버릴 수 없다.
생각한다.
대체 난 왜 이 사진기를 버릴 수 없는걸까?
그리고 어렴풋이 그에 대한 답이 도출되기 시작했다.
내게 사진기는 소유물의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이 것을 두고 그리도 불안해 했던 이유는 사진기 그 자체가 아니라, 사진기가 바라 볼 세상에 있었다.
언제 변화할지, 언제 무너질지, 언제 증발해버릴지 모르는 이 세상을 어서 빨리 담고 싶었던 것이다.
수동 모드가 지원하는 그 구형 사진기로 말이다.
최대한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찍고 싶었다.
이 사진기가 없으면 여행조차 불가능 하다 생각될 정도로 내게 중요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 사진기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가 절대로 버릴 수 없는 물건.
나와 세계 일주를 함께 할 낡은 내 사진기.
그 것이 세상에 대한 내 불안의 표상이었다.
아직 그런 모습으로 난 창살을 닫아 걸고 있다.
창살이란 것 역시 도둑이나 강도의 주택 침입에 대비키 위한 불안의 형상이다.
창살을 모두 잘라버리면 푸른 하늘이 더 또렷하고, 잘림없이 보이겠지만 난 아직 모든 창살을 잘라낼 수 없었다.
사진기.
그 것이 내 불안이라면 녀석의 무게를 감내하고서라도 어깨에 들처 메고 세계를 일주하겠노라, 생각한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물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 두 번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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