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집어치워도 된다.
내가 자살을 생각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애석하지만 난 그런 생각을 할 만큼 멍청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내가 여행 중 "자살"이란 끔찍한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지하철이 있는 나라에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많은 나라들은 지하철 역사에 스크린 도어(Screen Door)가 없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 사고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일부 매스미디어의 교육 탓인지 난 스크린 도어가 없는 역에만 서면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찾아본다.
누군가가 철로로 뛰어들면 나도 따라 뛰어가 그 사람을 철로 밖으로 집어던질 공간이 어디쯤 위치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짧은 내 인생 속 여행 중에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코카서스 3국 중 내가 여행한 아르메니아(Armenia)와 조지아(Georgia)는 깊숙하고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자랑한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부터 지하철역을 방공호로 겸용하였으니, 표를 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탑승구까지 내려가는데만도 2,3분이 걸리는 깊은 역도 있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 속도도 한국의 1.5~2배로 빠르다.)
그리고 어느 역을 가도 난 스크린 도어(Screen door)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타본 어느 지하철보다 덜컹거리던 두 나라의 지하철.
역사 내부를 가득 채운 정체모를 살벌함이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생각했다.
'그래도.. 여기 사람들이 우리나라보단 덜 뛰어드나보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세계 2,3위를 다투는 높은 자살률을 가진 국가다.
(WTO에서 국가별 자살률을 조사하지만, 각 국 별로 조사 시점이 상이하여 정확한 비교가 될 수 없음은 참작하더라도 최 상위권임엔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1인당 GDP가 약 2만 3600불에 육박하는 잘 사는 나라다.
(무척 잘 사는 것은 아니고, 세계 30~40위권 정도 된다. 총 GDP로 따지면 10~20위 권이다.)
조지아의 경우 1인당 GDP가 대략 2,600불, 아르메니아의 경우 약 3,000불정도다.
대충 때려 셈을 하면 두 나라 국민 모두 우리나라 보다 10배는 못 사는 나라다.
당신들, 여기 와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 엄청 꾸미고 다니고 선남 선녀들이 길을 가로지르는 나라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인 당신이 받는 평균 월급과 이 두 나라 국민 평균 연봉이 비슷하다
물론 GDP란 몹쓸 지표로 상대평가를 행할 수는 없다.
일례로 우리나라만 해도 경제적, 정치적으로 높으신 분들이 극단값을 가지고 있는데, 높아도 너무 높다.
평균의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평범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아버지가 돈을 벌고, 어머니는 가사일을 하고, 아들 딸은 학교에 다닌다고 가정해보자.
최소한 평균 소리를 들으려면 아버지 연봉은 1억이 되어야한다.
가구원인 4명 곱하기 우리나라 인당 GDP 약 2만 3,600불을 하면 약 1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들, 그런 아버지들 많이 봤냐?
많이 못 봤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봤어야 한다.
연봉 1억이 우리나라의 평.균.이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의 가정처럼 네 사람 중 세 사람이 일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아버지는 정년퇴직이 코 앞에 닥쳐있고, 자식은 결혼을 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는 가정을 더해야 한다.)
하지만 조지아, 아르메니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잘 사는 몇몇 위대한 분들께서 평균을 함정을 만들며 크게 높여놓은게 저 정도란 말이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우리나라보다 진짜 10배는 못살아 EU의 원조까지 받고 있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어느정도의 자살률을 가지고 있을까?
WTO에 접속해 통계를 내본다.
조지아가 71위.
아르메니아는 100위권 밖이라 적혀있지도 않았다.
이 두 나라보다 10배는 잘 사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살률 2~3위를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
궁금해졌다.
이 기회에 파일을 다운받아 엑셀 작업을 좀 해보기로 했다.
세계 각국의 자살률 대비 GDP데이터 말이다.
나의 천부적인 스프레드 시트 실력으로 엑셀을 이용해 순식간에 자료를 정리했지만 도무지 레포트를 쓸 수 없었다.
상관관계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잘 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지하철에 뛰어드는 수치와는 전연 상관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정리한다.
난 그리 나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평범한 인간이라 '자살'같은거 꿈도 꿔보지 못했지만,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이거 내가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 아니다.
지금껏 이 글을 읽어오며 말한 것처럼, 인당 GDP와 WTO에서 조사하는 각 국 별 자살률을 데이터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여행하며 성장 중인 지금.
내게 '자살'을 논하는 것은 먼 우주의 이야기와 같다.
내가 대학생 때 교양으로 청강했던 '사진 촬영과 감상'과목 기말 프로젝트에서 '자살'을 주제로 택했던 것 과는 달리 말이다.
돈?
그거 인생에 별거 아니다.
없으면 불편하고 조마조마하고 꿀리는거 맞다.
그런데, 사람 지하철에 뛰어들어 뒤지는거랑 아무런 관계 없다는 말이다.
살아라.
당신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숨쉬기 위해 태어났다.
고작 지하철같은것에 치어 뒤지기위해 태어난게 아니란 말이다.
당신이 모르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이 지구에는 지천에 널려있다.
정말,
지천에 널려있었다.
아직 어린 내가 지껄여대는 말이 가소로와 믿지 못하겠다는 당신들은,
더 살아라.
더 살아보고 내가 맞은지, 틀린지 확인해봐라.
내가 틀렸다면, 먼 훗날 내가 틀렸으니 지금까지 죽지 못하고 힘들게 버텨온 날을 책임지라고 말해라.
진정으로 그랬다면, 내가 책임 질테니 말이다.
코카서스 여행 중 생각하는 자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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