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레이아웃 - 더러운 빨래 - 그리고 본질
블로그 레이아웃을 수정한다.
나는 대학생 저학년 때 분명 HTML다루는 법을 배웠었다.
"나모 웹 에디터 혹은 드림위버같은 프로그램과 플래시를 이용해서 홈페이지를 예쁘게 꾸며봅시다." 따위의 과제가 주어지는 수업이었다.
꽤나 좋은 학점을 받았으니, 아마 내 과제물도 꽤나 괜찮았을 것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엊그제부터 시작된 블로그 HTML수정 작업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주 간단한 것은 웹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그대로 따라해볼 수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기능을 모두 집어넣기에 도무지 머리가 아파 중단한 상태다.
내가 HTML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우고 약 10년이 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폰트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는 내 모습에 조금은 의기양양해하며, 조지아 드라이 와인을 마신다.
와인을 절반정도 마셨을까, 갑자기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내가 대체 왜 블로그 레이아웃을 바꾸고 있지??"
난 지금 여행 중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여행지에서 여행기나 여행정보, 잡문따위를 포스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잘 알지도 못하는 HTML까지 찾아가며 레이아웃까지 수정하는 걸까?
그제서야 더러운 빨래가 생각났다.
블로그 레이아웃 - 더러운 빨래 - 그리고 본질
Darjeeling, West bengal, India 2013
콜카타(Kolkata)에서 직행한 웨스트 벵갈주의 다즐링(Darjeeling)에서 난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빨래 건조대를 목격한다.
(물론 여행을 계속하며 이 보다 더욱 지저분한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지저분한 벽면에 대충 감아놓은 전깃줄.
그래서 옷가지를 걸면 추욱 늘어져버리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건조 광경이었다.
게다가 이 곳은 보통 인도와 날씨 자체가 다르다.
다즐링의 우기는 심각할 정도로 습한 기후가 지속된다.
내가 이 곳에 지내는 일 주일 동안 6일은 안개와 비의 암흑 속에 휩싸여 있었고, 마지막 날 하루는 24시간 중 3분간 햇살이 비췄었다.
쉴새없이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고, 안개가 걷히면 다시 비가 흩날리는 날씨인데도 사람들은 야외건조를 하고 있었다.
'빨래 건조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무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난 그들을 비웃었다.
'이런 날씨라면 최소한 방 안에 널어둬야 할거 아냐?'
조소하며 방 안에 빨래줄을 달아 속옷과 티셔츠처럼 얇은 것들을 널어둔다.
그리고 난 3일 후에도 마르지 않는 빨래를 손으로 만지며 드라이기를 배낭에 챙겨오지 않은걸 후회했다.
내 티셔츠는 아직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빨래 건조대로 찾아가본다.
놀랍게도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빨래 건조대에는 또 다른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내 방에 널어둔 얇은 티셔츠는 아직 그대로인데, 이 곳에 널어둔 티셔츠는 다 말랐었구나'
블로그 레이아웃 - 더러운 빨래 - 그리고 본질
어쨌든 겉모습은 중요하다.
본인은 사람들 외모 안보고 마음을 본다던 그 친구도 멀쩡하게 잘 생긴 남자와 결혼하더라.
(물론 멀쩡하게 잘 생긴 그 남자가 마음까지 고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겉모습을 꾸미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
기본 바탕을 훌쩍 뛰어넘는 변신은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명제는 성형 수술의 성행으로 기 증명된 사실이다.
해서, 오늘도 사람들은 최대한 한계선까지 본인을 치장하기 위해 애쓴다.
최소한 옆에 앉은 김 대리보다는 말쑥하게 보여야하고, 지하철에서 마주앉은 이름모를 여자의 원피스에 주눅들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마음이 중요해요', '전 사람들 얼굴 안봐요', '착한 사람이 이상형이예요' 떠들어대는 사람들조차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에 왁스칠을 한다.
그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홍콩 바디샾에서 구입한 BB크림 바르고, 새로 사는 옷이 얼마나 잘 어울릴지 고민하며 ZARA로 가는 남자다.
이해한다.
하지만 최소한 '본질'을 잊어선 안된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가 중요로 하는 외향, 겉치레따위에 신경을 쓰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본인이 누구인지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짜로 섹시한 사람들은 얼굴 가죽이 잘 배열되고, 샤넬이나 구찌따위의 브랜드로 몸을 치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더기를 걸치고 있어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다.
본질에서 묻어나는 '진짜'모습이 그 사람들을 당당하고, 섹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난 깨닫는다.
블로그에서 중요한 것은 레이아웃(Layout)이 아니다.
컨텐츠(Contents)다.
물론 레이아웃이 예쁘면 더욱 좋겠으나, 어줍잖은 컨텐츠에 레이아웃만 예쁘다면 그런 블로그는 폐쇄하는 편이 지구 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
그래서 난 블로그 레이아웃 수정 작업을 멈췄다.
'이 정도면 그리 나쁜 디자인은 아니다.'
그렇게 자위한다.
주위 환경이 더럽고 지저분하다 해서, 빨래까지 더러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곳에 널어놓은 빨래는 내 방 안에 널어둔 것보다 빨리 마르지 않더냐?
블로그 외형(Layout) 수정과 파생되는 조소에 관련하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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