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피안에서 니체는 그런 말을 했다.
"괴물을 쫓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될 것을 주의해야 한다. 심연을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오래 들여다 볼 것이다."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가 아는 그녀는 지구 상에서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가장 록스타같은 삶을 살았던 여자였으며, 가장 행복해야할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았던 여자였고, 죽어서야 행복할 수 있었던 여자였다.
내가 다시 그녀를 떠올리게 된 것은 아르메니아(Armenia), 예레반(Yerevan)의 어느 골목 지하에 위치하고 있던 축축한 분위기의 선술집에서였다.
주인은 음향 설비에 돈을 좀 투자한 듯 했다.
술집 안을 가득 채우는 날카로운 베이스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칵테일을 몇 잔인가 마시고, 이리저리 둘러보던 선술집 내부에는 이미 한물 가버린 구시대의 유물 LP판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LP??.. 개나 줘버리라지'
술에 취한 나는 음원 불법 다운로드가 판치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 지저분한 음질의 LP가 웬 말이냐고 자조섞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재니스 조플린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Crying baby
숨이 컥하고 막힌다.
카트만두를 다녀온 후에 다시 듣는 이 노래가 이리도 아름답게 들릴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난 그녀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술에 취한 사람들을 조금은 원망하며 그녀의 삶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짧막한 그녀의 인생이 차갑도록 빠르게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29살에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가장 그녀다운 모습의 끝이라 생각했으며, 감히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것만이 그녀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내 귀에 울려퍼지는 대부분의 음악이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의 노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 시대가 생산해내는 대량 소비를 목적으로 한 음악이 취향에 맞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 실력조차 과거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니체가 떠올랐다.
그래, 니체가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난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걸까? 혹은 괴물이 되어가고 싶었던 걸까?
니체가 이 물음에 답을 할 수나 있을까?
아니, 이 부분은 쇼펜하우어의 영역이었던가?
답을 못하면 답은 한가지다.
니체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10월 4일.
Janis Joplin.
내 질문에 답을 알고 있을,
사랑하는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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