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헤어질 시간이다.
거자필반 회자정리라 했던가?
우린 사이공에서 머무는 내내 에어컨이 나오는 좋은 숙소에서 밤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 틈에 섞여 맥주를 마셨다.
보고싶던 후배와 만나 베트남 여행까지 며칠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으니, 이제 다시 각자의 길로 헤어질 차례인 것이다.
어쩌다보니 무이네까지 슬리핑 버스로 움직이게 되었는데, 오전에 슬리핑 버스를 타는 것 만큼 고역스러운 일도 없었다.
난 보조배낭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항상 들고 움직여야하는데, 비좁은 침대에 내 가방을 집어넣고 다리를 구겨넣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슬리핑 버스, 중국의 슬리핑 버스와 구조가 똑같다.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넘어올 때부터 이동을 하기 전 먹을거리를 사는 습관이 생겼는데, 생존에 필수적인 물이나 빵 따위가 그 것이다.
난 초코홀릭이기 때문에 마일로를 마시고 다시 취침
출바한지 2,3시간 쯤 되었을까?
휴게소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베트남에서 알게 된 캔커피 Birdy를 하나 마시고 다시 낑낑거리며 올라가 버스에서 잠이 든다.
생각해보니 이 때 이동할 때 워커를 신고 다녔는데, 슬리핑 버스는 자기 짐 뿐만 아니라, 신발도 비닐봉지에 넣어두고 각자 보관해야한다.
다리를 펼틈이 없었다.
생각했다.
"다음부터 슬리핑 버스를 타면 반드시 조리를 신고 타야겠다"
그렇게 버스가 1,2시간 정도 더 달리니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가 저린 것도 잊어버리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해졌다.
무이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리조트가 보이기 시작했고, 작은 게스트하우스나 백팩커스도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가 몇 번이나 멈춰 사람들을 내려주길래 구글맵으로 내 위치를 확인해봤다.
나는 이미 1&10게스트하우스라는 초저가 숙소에 가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명확했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내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모두 내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리도 조금 저리고,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묻는다.
"난 여기가 아니라 5Km정도 더 가야되는데?"
기사가 짜증스럽게 대꾸한다.
"모두 여기서 다 내려"
실제로 모든 승객이 하차를 한다.
더 이상 싸울 힘도 없고, 내 의견이 받아들여질 확률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구글 지도를 보며 걸어가 보기로 한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꽤나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몇개 보였지만 모두 무시하고 지나간다.
지도를 본다.
1/10도 못왔다.
젠장.
햇볕이 너무 쨍쨍하고 다리가 풀려왔다.
5시간동안 슬리핑버스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걸으니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난 택시라는 것을 잡아탔는데, 숙소까지 이동하는 5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미달이 누나와 수미누나가 떠올랐다.
나 택시타고 다니는거 걸리면 누나들한테 혼날텐데?? ㅋ
어쨋든 택시 요금으로 3만동을 지출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니 꽤나 젊어보이는 직원 한 명이 해먹에 누워 빈둥빈둥 거리고 있었다.
난 초췌한 몰골로 방이 있냐고 물었더니 당연한 듯이 있다고 대답한다.
<1&10 Guest house 숙박 정보>
도미토리 : 70,000동/1일
팬 싱글 : 100,000동/1일
에어컨 싱글 : 150,000동/1일
-여권 맡겨야 함
-밤 12시가 넘으면 문을 잠그지만 옆으로 들어갈 수 있음
-도미토리는 20인 1실로 꽤나 넓고 사물함은 4~50리터 배낭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
사실 여행을 시작하며 미달/수미누나 일행을 만나 캄보디아까지 같이 돌아다녔고, 다시 캄보디아 베트남을 후배 성휘와 함께 돌아다녔으니 진짜로 혼자가 되긴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 없었다.
정말로 혼자가 된 기념으로 도미토리를 선택했다.
새로운 친구들이나 만나 진탕 놀아보자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인용 도미토리룸(건물?!)에 난 3일 내내 혼자 지낼 수 밖에 없었다. ㅠ_ㅠ
오뉴월은 이 곳도 비수기라 여행객들 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어쨋든 난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를 빌려 무이네 해변을 돌기 시작한다.
저 멀리 바다가 보였지만 아직 점심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수영은 조금 참기로 했다.
난 캄보디아에서 자전거를 타고 4차선 대로를 종횡무진했기에 이런 작은 마을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무이네 곳곳을 돌아보고, 거리가 먼 사막은 내일 가보기로 결정했다.
어제 감명깊게 보았던 AO show의 소품인 바구니가 보였다.
이 마을에선 아직도 저 바구니를 타고 바다위를 떠다니며 고기를 잡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런 골목길 옆 집에 몇 달간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깔끔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파도소리가 들리는 그런 집 말이다.
이미 탈 만큼 탔지만, 어떻게든 얼굴을 지켜보겠다며 쓰고 다녔던 멀티 스카프
물론 지금은 배낭에 넣어두고 꺼내지도 않고 있다.
1&10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 테라스다.
이 곳에 앉아서 무선 인터넷을 할 수도 있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도 좋다.
해변이 50m옆에 있지만, 리조트 건물에 가려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하루 70,000동(3.5$)에 그런 뷰를 기대하는 것 부터가 어불성설이다.
도미토리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서 두번재 계단이 조금 삐그덕 거리지만, 배낭을 메고 올라가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벼운 내가 걸어다녀도 삐걱삐걱 거리는게 곧 무너질 듯 하다.
다음에 이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여행객들은 첫 번째에서 곧바로 세 번째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게 신상에 이로울 듯 하다.
도미토리 내부 사진이다.
아래 매트릭스에 한 사람씩 자는 식이었다. 위쪽에 방석처럼 생긴 건 베개다. =ㅁ=;;
생긴건 조금 넙데데하지만 실제로 머리를 대보면 매우 푹신푹신해서 졸음이 스르륵 쏟아졌다.
문을 열어놓으면 방충망이 없기 때문에 1인 1모기장을 설치해두었다.
사실 밤이 되면 이 곳도 시원해지지만,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핀란드 불가마 사우나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정말 40도는 우습게 넘어설 듯한 더위였다.
덕분에 난 무이네에서 지내는 내내 낮잠을 자며 땀을 한바가지씩 흘리고 다시 샤워를 하곤 했다.
가공할 만한 찜통 더위.
사진으로 게스트하우스를 보면 꽤나 깔끔해 보이지만, 내가 갔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는데, 중국에서 다년간 쥐와 함께 생활해온 내 눈에는 그게 쥐똥으로 보였다.
쥐와 함께 커피도 나눠마신 사이인데, 그들의 흔적이 있다고 해서 굴할 내가 아니다.
내가 잘 곳을 선택한 후 주변을 청소해나가기 시작한다.
매트릭스 위에 깔끔한 요를 깔고 나니 제법 개운해졌다.
어둑어둑해진 무이네
저녁은 PHAT hanburgers란 곳에서 먹었는데, 수제 햄버거 집이었다.
가격도 꽤나 괜찮은 편이고 맛이있어 무이네에 있을 때 매일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론니플래닛에서 추천하는 집이었다.
저 먼 바다에서 석양이 비친다.
이제, 리조트에 침투할 시간이 도래한다.
난 비록 3.5불짜리 도미토리에서 지내고 있지만, 마음만은 5성급 리조트에서 휴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리조트로 당당히 걸어들어간다.
리셉션에서 묻는다.
"수영장 써도 되지?"
대답한다.
"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시면 수영장이 나옵니다"
"응 고마워"
사실 리조트 내 수영장은 리조트 숙박객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난 무이네에 있는 3일 동안 매일같이 다른 리조트를 들락거리며 수영장을 이용했다.
첫날 들어갔던 수영장
이런 수영장에 들어올려면 내 숙소 며칠 숙박 비용을 모두 갖다 부어도 못 들어갈 것 같았다.
리조트 내부 시설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게 어디있냐고 항변할 사람들도 있겠다.
그런데, 그건 내 마음이다.
거대 자본으로 지어진 리조트가 멋대로 해변을 막아놓고 이 곳에서 원래 살던 사람들이 바다로 들어가기 조차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궤변이 아닐까?
그 리조트들은 마치 거대한 바리케이트 같았다.
나 같은 가난한 여행자들과 순박한 현지인들에게 바다에 들어갈 길조차 막아버리는 그런 바리케이트 말이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은걸까?
리조트가 해변에 지어지는 것은 탓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 리조트들이 해변을 따라 오밀조밀 늘어서는 순간, 나와 현지인들은 바다를 빼앗긴다.
리조트에 돈을 내지 않으면 그 바다를 볼 수 도 없다.
"지금은, 돈으로 바다도 사는 세상인걸까?"
리조트에서 수영을 하다 괘씸한 생각이 들어 혼자 화를 내며 바다로 걸어갔다.
비성수기다.
사람? 없었다.
오로지 리조트란 이름의 바리케이트로 막힌 거대한 바다를 바라보며 백사에 앉았다.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그렇게 난 돌아간다.
간판에 별이 몇 개나 박혀있는 리조트의 출구로 빠져나와 쥐똥이 널려있던 20인용 도미토리 입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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