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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무이네-달랏) 무이네에서 달랏으로 (From muine beach to dalat)

by 빛의 예술가 2013. 6. 28.


무이네 해변에서 맞는 세 번째 아침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어나자마자 땀이 한바가지로 흐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두리번 거려보니 20인용 도미토리에는 나 혼자 멍청히 잠에서 깬 채 앉아있었다.


3일 내내 단 한명도 이 곳에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때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크게 웃어본 적이 또 있었을까?


그렇게 난 사소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배우며 변해가고 있었다.



이틀째 되던 날 창문 여는 방법을 터득한 후 모든 창문을 열어놓고도 더위에 고생한 1&10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룸





샤워장에 가서 씻을까 하고 생각하다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베트남 달랏으로 이동할 예정이니 마지막으로 한번 더 수영이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리조트에 다짜고짜 들어가 바다수영을 조금 한 뒤, 샤워를 하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수영장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 물장난을 치며 둥실둥실 떠다닌다.


허기가 진다.


점점 사회성을 잃어가고 동물적 습성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책을 읽고 싶으면 읽고, 잠이 오면 잔다.


나와 사회와의 관계에 선을 그은 후 어느 정도까지 타협할 수 있는지 조율 중이고, 어느 정도의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는지, 어디까지는 참아야할 지. 스물 아홉이 되어서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일단 배가 고프니 먹자.


PHAT burger로 간다.


내가 무이네에 머무르며 매일같이 찾아갔던 수제 햄버거 집이다.


외관은 아래 사진처럼 매우(?) 화려하다.



햄버거와 샌드위치가 주된 메뉴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딸 혹은 며느리가 보통 주문을 받으면 꼬마가 접시를 들고 서빙해준다.


꼬마가 귀여워서 팁을 줄까하다가, 이유를 알 수 없이 할머니에게 혼나는 걸 보고 머쓱해져 가만히 햄버거를 먹는다.




햄버거&프라이&콜라 다 합쳐서 62,000동(약 3$)


수미누나와 미달누나가 보면 '혼자서 이런 비싼 음식 먹었다고' 혼 좀 나겠다.


사실 조금 비싼 가격이다.






베트남에서 유명한 신 투어리스트(Sinh tourist)에서 달랏으로 가는 표를 물어보니 하루에 한 대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도 오후 버스라 포기하고 다른 여행사에서 아침에 이동할 수 있는 버스표를 구입한다.

(여행자 버스 무이네-달랏 : 약 130,000동, 약3~4시간 소요)


무이네 해변에서 베트남 고산도시 달랏으로 가는 버스는 미니버스밖에 없다.


난 그 사실을 모른 채 픽업버스인 줄 알고 느슨하게 앉아있다 자세를 고쳐 잡았다.


미니버스는 정말 좁았다.


난 보통 체격임에도 이렇게 고생인데, 옆에 앉은 서양인들은 얼마나 고생일까?


키가 190cm는 족히 되어보이는데도 가만히 앉아서 잘 버틴다.


대단한 정신력이다.




무이네에서 달랏으로 가는 길은 험로다.


구불구불 고개를 넘고 산을 넘고 다시 고개를 넘어 자연 폭포를 지나 산봉우리를 몇 개 더 넘으면 도착이다.



고산도시 달랏으로 가는 길.



남쪽나라에 사는 소들은 이렇게 날씬하다.


이 소는 보통 소보다 체격이 좋은 편이다.


물론 한국으로 데려가면 굉장히 왜소한 편이겠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모두 넘어야 달랏에 도착한다.


달랏은 해발고도 약 1,400~1,500m정도 되는 고산도시다.


그리고 베트남에 있는 도시지만 호텔이나 숙소에 에어컨을 비치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유는 날씨가 선선하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추워진다)


그래서 달랏에서 숙소를 구할 때는 온수 샤워가 가능한지, 침대에 두꺼운 담요는 있는지가 중요하다.






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호텔이라고 우습게 적힌 간판을 발견하고 들어가봤는데, 주인은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한국호텔이야? 라고 생각하며'적잖이 충격을 받고 가격을 물어봤는데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었다.

(조식 포함 6$에 기거&마지막 날에는 삼겹살도 구워주심)


옳다구나 하고 체크인을 하는데 주인이 갑자기 한국인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국말로.



주인은 베트남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꽤나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지금까지 만나본 숙소 주인가운데 가장 친절했다.



여행중 처음으로 긴 옷을 꺼내입었다.


그래도 베트남인데 선선해봤자 얼마나 선선할까? 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선선했다.


한국의 봄/가을 날씨와 비슷한 수준의 도시. 달랏.




배낭을 새로 꾸리고, 밀린 블로그도 할 겸 보드카와 콜라, 오렌지 주스를 사온다.


보드카-콕이나 스크루 드라이버를 만들어먹겠다고 사온 조합인데, 생각해보니 컵이 없다.


어떻게 쉐이킹을 하지?


'내 입을 글라스로 삼아 입에서 쉐이킹을 한 후 마시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멍청한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포기한다.


화장실에서 양치용 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세척한 후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한다.



간만에 먹는 칵테일이다.


선선한 도시에서 마시는 칵테일이라 그런지 맛이 더 달콤했다.


Men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이름의 보드카였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스크루 드라이버는 오렌지 맛으로 결정되니까.



준비 끝.


밀린 블로그를 시작한다.


사진 정리도 하고, 백업도 한다.


그리고 헤어진 수미/미달 누나들과 연락도 한다.


"그런데 누나들 지금 어디세요?"


-사파, 다시 하노이로 갈거야


"그럼 다음엔 어디로 가세요?"


-훼까지 내려가서 방비엥으로 갈거 같은데?


"저도 훼까지 올라갈거예요, 라오스 같이 들어가요"




그렇게 난 누나들과 다시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다시 만나 저렴한 숙소를 구하러 몇 시간씩 걸어다닐 것과,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을 먹을 걸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누나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함께 여행할 기회는 평생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달랏의 밤은 추웠다.


한국에서도 겨울에나 덮던 담요를 꼭 쥐고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