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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기/아시아(Asia)

(여행기/방비엥) 비오는 방비엥 어슬렁 거리기

by 빛의 예술가 2013. 7. 23.


장장 3일에 걸친 육로 이동으로 인해 비몽사몽한 채로 일어난다.


우습게도 생각나는건 아침밥 뿐이었다.


과거 인간의 욕구에 관해 공부를 할 때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설을 학습한 적이 있었다.


가장 하층에 깔린 것이 Physiological.


다시 말해 밥이다. (물 포함)


일단 인간은 먹어야 살고, 그 다음 단계의 욕구도 이를 충족시켜야 진행될 수 있다는 학설인데, 비판적으로 동조하는 바이다.



물론 위대한 몇몇 성인들은 배가 곯은 상태에서도 Self actualization을 꾀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난 성인 군자가 아니다.


난 길바닥을 떠돌며 분탕질 중인 잡놈이라 매슬로우(Maslow)처럼 뛰어난 학자가 조직한 학설에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일단 밥 부터 먹자.





아직도 이름이 또렷이 기억나는 Big british breakfast


이 때부터 난 콩과 버섯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영양소를 섭취해야하기 때문에,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씹어먹는 습관이 이 때부터 생겼던 것이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채 비몽사몽하게 아침을 먹고 있는 엘레강스한 모습의 나.


아이스 밀크 커피 대신 데미타세 잔에 에스프레소가 담겨있었다면 뉴요커 뺨치는 수준의 고품격 아침 먹는 사진일 텐데..


다음부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습관을 들여봐야겠다.




아침을 다 먹고 나니 비가 내렸다.


누나들은 낮잠을 자러 간다고 한다.


난 가장 밑바닥의 욕구를 충족했기 때문에 차 상위 계층의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 욕구는 안전의 욕구다.


우린 이미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맹수에게 쫒기거나 내리는 비를 쫄딱 맞으며 자야한다던가의 걱정은 이미 해결된 것이다.


기 해결되어있었지만 가장 밑바닥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기억조차 나지 않던 안전의 욕구.


역시 매슬로우는 대단하다.


안전의 욕구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세 번째 욕구는 사랑, 관계의 욕구다.


좋다. 


난 방비엥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비를 맞으며 산책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비가 와서 동굴에 가거나, 폭포에 가기는 힘들기 때문에 어슬렁거리는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다니다 발견한 지도가 있었다.


꽤나 예술적인 터치감이 묻어나는 작품이었지만, 지도 본연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래쪽에 있다고 하는데, 대체 아래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병원이나 경찰서 따위의 여행자들에게 별 의미없는 공간을 그려놓았다.



그래서 지도를 무시하고 발길 가는대로 걷기로 한다.


매슬로우 욕구 4단계 Self esteem이 충족되는 순간이다.


내가 바라보는 길로 걸어가는 것.


그게 어슬렁거림의 기본이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다 보니 탐짱(Tham jang)의 입구를 찾아냈다.


론니 플래닛에서 말하길 방비엥(Vangvieng)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석회 동굴의 입구인 것이다.


날씨가 맑을 때 탐짱(Tham jang), 블루 라군(Blue lagoon), 탐푸캄(Tham phu kham)을 보는 것이 계획이었기 때문에 만족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난 발견하고 말았다.



입장료 팻말.



나중에서야 안 사실인데 사람이 지나가려면 2,000킵을 내야한다.


그리고 자전거도 2,000킵이라고 적혀있는데, 예를들어 내가 자전거를 타고 이 곳을 지나가면 4,000킵을 내야하는 시스템이다.


어이가 산을 찔렀지만 지금 들어갈 것도 아니기 때문에 참고만 하고 돌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며 여행자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걸어가본다.


온통 논밭이었고,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단촐한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 내 모습이 배타적인 무게를 지닌 채 다가왔다.






다시 시내로 돌아오며 발견한 한국 게스트하우스&식당


산과 동굴이 있고,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서 그런지 라오스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방비엥에 많이 찾는다.


중년의 여행자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어제 버스에서 뵈었던 아저씨&아주머니&꼬맹이 가족을 다시 만났다.


아저씨께서 과일을 하나 주시며 이런 말씀도 해주셨다.



"무슨 복을 받아서 세계일주를 다 한대요? 저 어릴 때는 그런거 꿈도 못꿨었는데.. 허허. 복 받으신 줄 아시고 여행 잘 하세요."





나가(naga)상을 지나며 느낀다.


Self actualization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설의 최상부를 차지하고 있는 욕구다.


난 이 순간 self actualization을 꾀하고 있었다.





공동 우물을 지나고,




이 곳으로 오는 여행객들을 마중이나 할까 하는 심산으로 버스 정류장에도 가보고,





여행자들이 한 명도 오지 않아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BBQ 화로 앞에 쪼그려 앉아서 비둘기와 함께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매정한 상인은 고기 조각 하나 던져주질 않았다.


비둘기와 난 혼연일체가 되어 비참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방비엥에 온 것은 환영하지만, 원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말기 위해 헐벗지 말고, 문신은 가려달라고 부탁하는 환영 및 경고문구다.


지금은 비수기라 그런 사람들이 많진 않았지만, 성수기가 되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행 관광 안내소가 있어 무슨 정보라도 더 얻어볼까, 슬금슬금 들어갔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하루중에 업무를 보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은, 직원 중심적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였다.


그렇게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돌린다.




바깥에는 미달이 누나가 있었는데, 수미누나는 아직 꿈나라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고 하며 같이 산책이나 가자고 한다.


난 이미 충분히 산책을 했으므로 가기 싫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랬다가는 얻어맞고, 한번 더 맞을 것 같았기 때문에 순순히 두번째 산책길에 오른다.



목이 말라 마신 콜라.


태국어와 라오스어는 80%이상이 유사하다고 하는데, 코카콜라의 저 웃는 모습의 글자 역시 태국과 라오스 공용이다.


산과 기암, 멋진 방갈로와 정겨운 다리, 굽이치는 강이 보이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이 곳에 앉아 콜라를 홀짝이고 있으려니 마치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그러던 중 비엔티엔에서 만났던 그 남자를 다시 만났다.


우리보다 하루 늦은 일정으로 같은 코스를 밟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가장 저렴한 숙소를 소개해줬지만, 한 사람이 묶을 경우 꽤나 비싼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많이 가는 바로 앞 숙소에 체크인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일 동굴과 블루라군에 가는데 생각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말했다.


조건은 날씨가 맑을 경우에.


만나는 시간과 장소도 정하지 않았지만, 왠지 내일 만나서 동행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레스토랑에는 4현 악기가 있었는데, 생김새가 기타랑 비슷해 연주해보려했으나 대 실패.


기타 네크가 용 모양으로 만들어져 매우 멋스럽다.


하지만 소리는 그다지 청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보는 악기를 잘 연주하지 못하고 있으려니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건다.


신기하게도 주인은 웨스턴 사람이었다.



- "혹시 일본인?"


"아니요 한국 사람인데요"


- "아, 일본인이었으면 부탁 좀 하려고 했는데"


"네 무슨 일이세요? 저 일본어도 조금 해요"


- "그래요? 이 사람이 제 자전거를 가지고 일본으로 갔는데, 예전에 타던 자전거를 놓고 갔어요.. 다시 말해서 바꿔치기?"



사실 자전거를 들고 일본까지 날아가진 않았으리라 믿는다.


무슨 전후사정인지 잘 모르겠지만, Kameda shogan씨가 이 글을 본다면 어서 빨리 방비엥에서 묶었던 숙소&레스토랑 주인에게 연락을 취해 자전거를 돌려주기 바란다.



일본어를 조금한다고 주장하지만, 저런 민사 사건을 중재할 정도로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난 연락하지 못했다.


일본어에 능숙한 사람이 있다면 아래 연락처와 메일주소가 있으니 방비엥 숙소 아저씨의 자전거를 되찾아주길 바란다.




이렇게 방비엥 어슬렁거리기는 끝이다.


누가 뭐래도, 마지막 레스토랑에서 연주했던 처음보는 4현 악기와, 주인 아저씨와의 대화는 매슬로우 욕구 5단계설 가운데 Self actualization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