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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80825)Cloud Smile _ A Short Fiction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분명 그 남자는 10년 후에 베를린 필 하모닉에 들어갈 거라고..

 

내게 말했었다.

 

 

 

1998년.

 

세상이 끝나기 1년 전.

 

우린 그런 투의 대화를 하고, 그런 류의 음악을 듣고, 그런 식의 사랑을 했다.

 

"바보야, 지구는 1년후에 끝장날거야. 그런데도 바이올린을 계속 칠거야?"

 

"바이올린은 켠다고하지 친다고 하지 않아. 그리고, 난 바이올린을 믿지 다른 어떠한 것도 믿지 않아."

 

 

확고함.

 

냉정함.

 

어느정도의 잔인함까지 동시에 갖고 있는, 그 남자가 ... 좋았다.

 

아마도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편안했으니까.

 

다른 남자와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으니까.

 

착각인지도 모를, 하지만 그런류의 특별함이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1999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어제처럼 오늘도 시작되고, 내일이란 놈에게 집어삼켜질 오늘이 가여워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다.

 

지구는 계속해서 공존하고,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다.

 

그 남자와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따위가 달라졌을 뿐.

 

그런 사.소.한. 일들이 달라졌을 뿐

 

나는 그대로이다.

 

 

 

 

 

2008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구가 종말했어야하는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는.

 

정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또 다시 학교를 졸업하고, 또 한번 학교를 졸업했다.

 

취직을 했고, 어떤 소심한 남자를 만났으며 칵테일이란 술을 마셔보고, 맥주에 잔뜩 취해보기도 했다.

 

머리에 총이라도 맞은 듯한 옆 부서의 쇼핑 중독자들과 어울려 쇼핑을 하기도 하고,

 

친구의 결혼식에 들러리도 서기도 했다.

 

이번엔 많은 것들이 변한다.

 

내가 계속해서 클래식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변했다.

 

1년이 지난 것과, 지구가 끝나야할 시점부터 2008년까지.. 그 두 시간안에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무언가..

 

잘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무언가.

 

그리고, 그 무언가라는 미궁은

 

내가 칼 리히터가 지휘하고 베를린 필 하모닉이 재연주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담긴  앨범을 매장에서 발견했을 때까지 줄곧 내 머리속을 휘감고 있었다.

 

앨범의 맨 뒷장에는 그 남자가 바이올린을 쥔 채 카메라 렌즈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 십명의 사람들 가운데 그 사람이 먼저 보였다.

 

아마도 수 백명, 수 천명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난.

 

그 사람을 제일 먼저 찾을 수 있겠지.

 

 

내가 계속해서 클래식을 듣는 것처럼.

 

그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특별함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채 내 마음속에 남아있으니..

 

분명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CD를 듣기 시작한다.

 

그 남자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즐겁고 경쾌한 바흐의 협주곡을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버릴줄은 몰랐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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