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이야.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
난 여전해.
너가 짐작한 대로, 여전히 잘 살고 있어.
어디선가 오염되어 더러운 내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대었더니 열은 나지 않아.
감기인지 몸살인지, 그도 아니면 죽을병에 걸린건지,
며칠째 끙끙 앓고 있어.
물론 끙끙 앓는다고 해서 술 마시는 일을 거른다거나 하진 않아.
난 일정량의 담배를 피고,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있지.
물론 지금도 맥주를 마시며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중략
세상은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걸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걸까?
지금의 나는, 몇 주 후의 약속까지 꽉꽉 잡혀있어.
변동할 수 없는 고정적인 약속.
지랄맞게도 고정부채따위가 생각나는건 왜일까..
중략
문득 생각해보니 비참하더군.
우리가 그 곳에서 '대학교'에 대해 얘기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당시 우리가 생각했던 대학교는 이런게 아니었을거야.
난 대학교에 들어오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바리케이트를 치는 거였어.
내가 말했던가? 웃음.
바리케이트를 치고, '조반유리'라는 글자를 대학건물에 붉은색 페인트로 칠하고.
그런식으로 학교를 봉쇄하고 싶었어.
경찰이 오면 화염병을 던지고, 특공대원이 오면 소화기라도 사용해서 무언가를 막아보고싶었어.
중략
요즘은 평균 취침시간이 2시야.
평균 기상시간은 7시.
생각해보니 5시간밖에 자지 않아.
그래서 이렇게 아픈건지도 모르지.
중략
네 놈이 들으면 웃겠지만
난 요즘에 수십명의 사람을 만나며 살아.
네 놈이 들으면 웃겠지만
조그만 조직의 장이란 직책도 맡고 있어.
네 놈이 들으면 웃겠지만
시간이 없다는건 핑계가 아니야.
그리고, 네 놈이 들으면 웃겠지만
권문경이란 놈은 더 이상 록음악을 듣지 않아.
중략
편지를 쓸 때마다 나란 놈은 더욱 더러워졌다는걸 새삼 느낀다.
조금씩 조금씩.
더러워져가고 있는 중이야.
웃음.
이런식으로 더러워지다보면, 언젠가는 새까맣게 변해버리겠지.
록음악이 뭔지 잊어버리고,
내가 언제 기타를 들었냐는듯 무관심해지고,
경찰의 발바닥이라도 핥으며 '바리케이트'라는 단어는 망각하겠지
난 이미 패배했어.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패배자야.
그리고, 이렇게 더러워진 이상.. 사람이 어디까지 더러워질 수 있는지 실험해보려고 해.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걱정되는 것은 없지만.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네놈에게까지 더러운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감.
물론 그 정도 수준이 되면 네 놈은 날 떠나야겠지.
가짜 영화감독이 만들어내는 가짜 영화의 가짜 주연배우처럼..
조금은 쓸쓸하게.
혹은
조금은 멋지게.
'단상(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1013)난(難) (0) | 2013.04.16 |
---|---|
(20081019)Good bye my generation (0) | 2013.04.16 |
(2080825)Cloud Smile _ A Short Fiction (0) | 2013.04.16 |
(20080704)격노 (0) | 2013.04.16 |
(20080519)향긋한 春, 들려오는 비명소리 (0) | 2013.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