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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00911)플레인 토를 신은 남자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번쩍거리는 구두코 부분에는 먼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런 무늬가 없는 플레인 토를 신은 남자였다.

 

 

내가 남자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 외모나 옷차림 따위가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바짓단을 천천히 따라 시선을 떨구면 나타나는 것.

 

바로 구두이다.

 

다행스럽게 이 남자는 플레인 토에 청바지를 매치시키지 않는 현실감각을 지녔기에 안심한다.

 

(반대로 청바지에 플레인 토를 신은 남자와는 말을 섞을 필요조차 없다. 그런 남자는 연쇄살인범 보다 못한 놈이니까)

 

 

구두는 그 사람을 나타낸다.

 

어디서 살고 있는지, 여자와 함께인 남자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어느정도의 직급인지, 성격이 지랄맞진 않은지 등

 

한 남자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그의 구두이다.

 

 

 

내 앞에 있는 이 남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아까 말했던 것처럼 플레인 토슈즈를 신었다.

 

고지식한 남자다.

 

티끌하나 묻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성격이 정상은 아니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게다가 구두에는 주름이 아주 연하게 살아있다. 잘 걷지 않는 직업 혹은 직급의 남자다.

 

그에 반해 굽은 많이 닳아있다.

 

잘 걷지 않는 남자가 아니다. 직급이 높거나 실내에서 일을 하는 남자다.

 

어쩌면 사내에 계약된 구두닦이가 있는건지도 모른다.

 

가만히 보자 색깔이 마냥 검지만은 않다.

 

보라빛이 은은했다.

 

고지식한데다, 똘기가 있는 남자다.

 

구두끈이 엉키는 부분은 살짝 빛이 바랬으며 먼지가 묻어있었다.

 

다행이 미치광이 혹은 사이코패스가 아닐 확률이 높다.

 

사실 지금까진 조금 두려웠다.

 

용기를 내어 슬쩍 구두 바닥을 본다.

 

오 하나님. 스웨이드입니다.

 

조용히 환호한다.

 

이로써 남자에 대한 파악은 끝난다.

 

돈과 관련된 사안에 고민의 '고'자도 모르는 꽤나 높은 직급의 올드 패션드한 남자다.

 

 

놀아주기에 아주 적합한

 

그런 부류인 것이다.

 

자기가 사랑한 여자는 여왕이며, 자기가 하는 사랑은 로맨스, 그리고 그 로맨스가 해피하게 끝날 줄 아는 속물.

 

바지의 주름이나 넥타이를 매는 방법, 헤어스타일이나, 악세사리 착용 여부는 볼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도

 

구두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anyway,

 

let's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