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은 밤의 세계였다.
친구들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며 걱정했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이 세상은 존재론적 증명을 논증해야만 하는 곳이니까.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신을 증명한 것처럼 말이다.
지구의 회전축이 빙글돌아 암운에 서광이 비춰올 때면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고,
적요한 어둠에 별 빛이 반짝이면 그 곳으로 향한다.
심플하고 정교했다.
난 그런 류의 단순함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갈 때는 밤의 세계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함께였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만, 그 누구도 먼저 아는 체 하지 않는다.
그 것이 룰이었다.
희미하게 지워져가는 짙은 립스틱을 한 여자와
쉬폰 원피스의 어깨팍에 얼룩이 묻은 여자
발 뒤꿈치가 갈라져 밴드를 붙이고 있는 킬힐을 신은 여자
그리고 가발을 쓴 내가 있었다.
모두가 어느정도의 동질감과 동료애를 느끼고 있지만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다.
이 곳은 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낮의 왕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난 그 것이 우스워 킬킬거리며 걸었다.
당시에는 그 상황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우스웠으니까.
밤의 세계에서는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망실로 점철된 우연만이 존재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난 존재론적 증명을 반증하며 술을 마셨다.
밤의 세계
그 곳에서 인간은 완전했고, 서로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다.
결국 밤의 세계에 신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론적 반증의 역설을 꾀한 나가시마 테츠야는 나보다 한 수 위의 사고력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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