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지 않는 노래는 없다."
난 이 위대한 법칙과도 같은 명제를 중학교 2학년 때 깨달았다.
정품 음반을 충분히 살 돈이 없었던 나는 라디오를 섭렵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그때까지 한국 음악의 계보에 대해 알게 되었다.
팝이나 록앤롤의 역사를 알게된 것은 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든 음악이라 하더라도 질리기 마련이었는데, 난 항상 그게 아쉬웠다.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한 사람들에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음악이 있었고, 지구가 끝장날 때까지는 언제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을거라 자위했다.
그리고 이제 곧 지구가 망할 시간이 다가온다.
돌이켜보자면 꽤나 즐거운 삶이엇다.
라고 되뇌인다.
결혼은 못해봤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번지점프는 못해봤지만, 즐거운 놀이기구도 탈 수 있었다.
마이클의 내한공연에는 못갔지만, X japan, 메가데스, 메탈리카를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지금은 빌리조엘의 The ultimate collection을 듣는다.
가사가 아름다워 곡의 분위기까지 따사롭게 만드는 Piano man을 듣고 있노라니 문득 걱정이 되었다.
'만약 지구가 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던 질문이다.
어떠한 논리적 반론조차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곧 끝난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혼란스러워진다.
지구가 말끔한 모습을 견지한다면 난 더 살아야 하는 셈이 된다.
더 살 수 있다?
당신과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무서운 상상이다.
즐겁게 저녁식사를 하고, 침대에 몸을 뉘였을 때, 어디선가 손에 곰인형을 든 김길태가 나타나는 꿈보다 더 끔찍한 상상이다.
어쩌면
조두순과 김길태가 어깨동무를 하고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를 부르는 것을 강제로 관람해야하는 상황보다 위태로울 지도 모른다.
지구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들에게 그런 추상적인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조두순이나 김길태, 유영철과 같은 군집.
북극곰의 사체.
배가 나온 이건희의 마이바흐.
1류와 3류를 구분하는 이승철.
합격 통지서와 슬픔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군인과
인위적인 노출을 행하는 여가수
깨어진 맥주병과 환희
그 밖에
울고 있는 당신과 시퍼런 지구
지구의 존속은
위와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를 배태한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처한 역설적인 현실과도 흡사하다.
문명의 시작이 일어난 그 때처럼, 로맨틱한 끝이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여자와 남자가 가냘픈 두 다리로
지구를 딛은 채 눈물 흘리며 헤어지는 것 처럼.
조금은 애처로운 장면으로 적요한 엔딩 크레딧이 올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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