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뒤 돌아서며 말했다.
"너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멋진 남자야"
아주 잠깐 그 남자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떤 남자일까?'
혹은
'어떤 남자였을까?'
그 날 수영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맥주를 마셨다.
몇 번이나 토악질을 해대고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대다수는 눈이 시뻘개진 나를 피했지만, 밤 거리는 항상 내 편만은 아니었다.
죽도록 얻어맞고 공공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다.
세면대를 가득 채우는 피 비린내가 역겨워 또 다시 토악질을 한다.
인상을 찌푸리는 청소 아주머니를 피해 밖으로 나간다.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오른쪽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들어 눈을 내리깔아본다.
오른쪽 신발이 없다.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왼쪽 신발은 그대로이다.
오른쪽 신발만이 사라졌다.
걸을 수가 없었다.
아스팔트가 이렇게 차갑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한다.
부끄러웠다.
나 같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멋진 남자에게
내 여자를 빼앗겼다.
혹은
나 같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멋진 남자에게
내 여자가 떠나갔다.
그런 지랄맞은 상황에서도 나지 않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쪽 팔렸다.
그런데
아파서 도망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그 때 나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남자의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남자와 함께였다.
나를 보고 인상이라도 찌푸렸으면 좋으련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화가 났다.
당신이 오늘 아침 나와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뜬 여자가 맞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옆에 있는 키가 큰 나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남자를 때려 눕히고 싶어졌다.
시퍼런 아스팔트 칼날을 맨발로 걸으며 그들에게 다가간다.
여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나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남자에게 뭐라 속삭인다.
나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온다.
죽인다.
오로지 생각나는 건 그런 류의 증오였다.
우습게도 나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남자는 힘까지 좋았다.
난 한 방에 서슬퍼런 아스팔트 칼날에 온 몸이 찢기는 고통을 맛본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복부를 강타 당해서인지 또 다시 구역질이 밀려왔다.
찢어진 이마에선 피가 흘렀다.
눈꺼풀을 들어 나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남자를 바라본다.
바닥이 스웨이드로 되어있는 구두가 보였다.
귀찮은 듯 다림질 되어있는 정장 바지에서부터
돌체 앤 가바나의 양각로고가 벨트에 박혀있었다.
상반신은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눈이 감겨왔다.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왼쪽 눈이 부어 이 곳이 어딘지, 내 몸상태는 어떤지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몸에서 악취가 흘렀다.
상처에서 굳은 피와 땀, 토악질을 해댄 분비물 따위의 역한 냄새가 났다.
지금, 그 남자의 몸에서는
에스티 로더의 비욘드 파라다이스 향과 정확하게 26시간 전까지 내 여자였던 그녀의 달콤한 체취가 묻어날 거라 생각했다.
그제서야 나 같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멋진 남자라는 사실에 수긍할 수 있었다.
우습게도,
왼쪽 신발은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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