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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01018)입사지원서를 쓰며 느낀 단상들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입사 지원서를 써본 사람과 써보지 않은 사람.

 

 

헹켈에서 만든 식칼로 순두부를 썰어버리는 것처럼 정교하다.

 

맥킨지에서 주장하는 MECE의 개념과도 맞아 떨어진다.

 

입사 지원서를 써본 인간 / 그렇지 못한 인간

 

 

나는 전자에 속한다.

 

현재도 입사 지원서를 열심히 쓰고 있는데, 둘보이는 열심히 좀 쓰라고 말한다.

 

내가 친구인 둘보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던 중 몇 가지 느낀 사실이 있어 그대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는 친구들의 입사 소식.

 

난 내가 취업도 하지 못하고 비실비실거릴 때 친구들이 입사를 하면 나의 비장과 위장, 대장이 터져 배가 아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는 비실거리지도 않고, 배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남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좀처럼 싫어하지만 친구들이 입사를 했다는 사실은 기뻐하면서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대인배다운 모습이다.

 

 

둘째는 나의 띄어쓰기 실력.

 

난 책을 읽고, 습작 활동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국문학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띄어쓰기를 잘못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런데 입사 지원서를 쓰면서부터 띄어쓰기를 잘못한 사례가 점차적으로 작아지고 있다.

 

정말 기쁜 일이다.

 

고인이 되신 나의 작문 스승님께서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면 뿌듯한 느낌마저 든다.

 

 

셋째는 사회의 채용 구조에 대한 법칙이다.

 

입사 지원서를 쓰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알게된다.

 

"왜 대기업에서 우리 같은 지방 사립 대학교를 꺼려하는거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말이다.

 

 

 

넷째는 자기합리화 혹은 정답을 향한 행진.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혹은 그렇게 자위한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자기 시간도 있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강도가 덜하다. (라고 말한다)

 

사실 정답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이건 나도 정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어떤 인간이 대기업에 들어가도, 그 인간의 격이 높아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vice versa.

 

 

 

나는 예부터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꿈인 남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작은 꿈을 꾸는 남자는 붉은 반달곰과 맞짱을 뜰 배포도 없는 남자이다)

 

당신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내 꿈이 있고, 난 지구가 끝장나기 전까지 그 꿈을 이룰 예정이다.

 

내가 어디로 취직하든 그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나의 이야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회사를 고르고 있다.

 

합격 통지서를 받은 회사도 있었고, 마지막 면접에 가지 않은 회사도 있었다.

 

모 회사는 내게 전화로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권문경씨.. 왜 입사포기 하셨어요? 연봉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연봉이 아니라 네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나의 고향친구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조금은 과격하지만, 그대로 옮겨적자면

 

"문경아, 그러다 좆되는 수가 생겨. 거기 못들어가는 아들도 많을거 아니라"

 

 

 

이런 말이 있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 것이 전문가의 모습이고, 그런 모습을 갖출 수 있다면 연봉이나 조건이 좋지 않은 회사에 몸을 담고 있더라도 빛이 난다.

 

아쉽지만 그런 인간을 본 적이 없어서 확인 불가능 상태이다.

 

물론 대기업에서도 빛이 나는 인간은 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하나 있다.

 

삼성전자 국내영업사업부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

 

소주를 그렇게 마시고 새벽 3시에 다시 일터로 향하는 그대 모습에 빛이 났었다.

 

 

 

 

구직활동을 행하며 느낀 단상들이다.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고, 별 재미가 없다.

 

하지만 현재 나는 행복하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항상 맥킨지의 로직트리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행복하지 않을 때도 가끔은 있다.

 

학생식당에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내놓거나,

 

애완용 돼지가 말썽을 부려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당근이 말라죽어있을 때..

 

 

그런 사소한 일을 제외한다면 현재 내 삶은 행복하다.

 

어딘가로 갈 지 모르는 이 상황이 기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난 어디론가 입사할 예정이고, 그 전까지는 모험을 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생각나 행복할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오늘은 정수가 오리고기를 사는 날이다.

 

이토록

 

인생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