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斷想)

(20111213)강이 시작되는 도시에서 보낸 일주일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아침.

 

자명종 소리가 울리기 5분 전 갤럭시에서 바흐가 연주되고, 2분 후 아이폰에서 베토벤이 울린다.

 

그로부터 3분 후 자명종이 또도독 소리를 내며 나를 일으켜 세운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거실로 가면 태양의 뜨거움을 반사하는 화사한 강이 정면에 보인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가면 운전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

 

출근.

 

결재판을 들고 직원들이 나를 기다린다.

 

확인란에 대충 펜을 긁고 돌려준다.

 

인사하며 말한다. 谢谢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과장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아직 이 곳의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나보다 10살은 족히 많아보이는 현지인보다 10배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이 곳에도 아름다운 자본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참 따듯하게도.

 

 

 

 

점심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식당에 가면 음식이 차려져있다.

 

한식이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음식을 주문한다.

 

식사 후 자리로 돌아와 의자를 젖히고 낮잠을 잔다.

 

달콤한 세상이다.

 

 

 

 

낮잠에서 깨어나면 직원을 시켜 커피를 타오게 한다.

 

이는 그다지 부끄러운 일도, 예의 바르지 못한 일도 아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계단 위쪽에 내가 앉아 있고, 그 직원이 한참 아래에 서 있을 뿐이니까.

 

그와 함께 내가 마신 커피잔을 치우는 것도 직원의 몫이다.

 

 

 

 

퇴근을 한다.

 

어김없이 기사가 대기하고 있다.

 

술이 마시고 싶으면 주점으로 가자고 말하면 된다.

 

노래가 부르고 싶으면 호텔로 가면 되고, 잡화를 사고 싶으면 번화가로 가면 된다.

 

난 명령할 뿐이다.

 

 

 

술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바구니에 집어던져둔 옷이 깔끔하게 세탁되어있다.

 

거실에서 보는 이 곳의 야경은 굉장히 아름답다.

 

한국의 맥주보다 더 저렴하지만, 훨씬 맛있는 이 곳의 맥주를 마시며 생각을 한다.

 

영화를 본다.

 

책을 읽는다.

 

소파에서 잠이 들면 춥기 때문에 방으로 슬금슬금 이동한다.

 

 

 

방에 들어가면 청소가 되어있다.

 

침대는 시트부터 베갯잇, 이불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다.

 

자기 전에 배가 고프면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먹는다.

 

설거지는 하지 않는다.

 

라면을 끓이기 위해 가정부를 부르지 않는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에, 이 것을 치우는 것은 당연히 가정부의 일이다.

 

 

 

 

꽤나 버라이어티한, 혹은 그로테스크한 유흥 문화는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착하고 순진해서 그런거 모르기 때문이다.

 

 

 

 

일 주일동안 나는 이렇게 생활했다.

 

그리고 우스웠다.

 

 

 

꽤나 많은 사람들의 꿈을 쉽게 앗아가 버렸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전문 직종에 종사하여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으니까.

 

그들이 꿈을 이룬다면 지금 내가 영위하고, 앞으로 영위할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기사까지 두는 건 조금 힘들다 손 치더라도)

 

 

 

 

돈을 벌어라.

 

옆의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많이 벌어야 쪽팔림을 면할 수 있지 않을까?

 

능력이 닿는다면 더 열심히 벌어서 운전 기사를 둘 정도의 재력을 갖춰라.

 

운전 기사에게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열쇠를 던져줄 정도로.

 

 

 

한강이 보이는 고층 주상복합 건물에서 가정부를 부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당신들의 꿈이다.

 

한 달에 한 번씩 휴가를 내서 해외 여행을 가는 것이 당신들의 꿈이다.

 

오랫만에 열린 동창회에서 친구들에게 내 재형저축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이 당신들의 꿈이다.

 

못해도,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남.들.보.다.는. 더 잘 살게끔 하는 것이 당신들의 꿈이다.

 

 

 

이 모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어라.

 

 

 

나는,

 

꽤나 많은 당신들이 그 것을 꿈으로 삼고 있는 동안 당신들의 꿈을 미리 맛보며, 내 꿈을 준비할테니.

 

 

 

 

 

p.s. 일 주일 밖에 맛보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건 조금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당신들 꿈, 생각보다 맛있지 않더라.

'단상(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0208)회복하는 상처  (0) 2013.04.16
(20120205)히말라야 등반기  (0) 2013.04.16
(20111128)그리고 당신  (0) 2013.04.16
(20111127)출국  (0) 2013.04.16
(20111101)7번 아이언을 휘두르다  (0) 201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