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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잡문(旅行雜文)

변검술

by 빛의 예술가 2013. 11. 4.


중국(中国) 사천성(四川城)의 성도 청두(成都)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조금은 추운 날씨에 몸을 웅크린 채 수많은 인파 속을 쏘다니고 있을 무렵 변검술 공연이 열린다는 전단지를 발견했다.


그렇게 중국의 외딴 곳에서 관람했던 변검술은 참 신기했었다.


어쩜 그렇게 빨리 얼굴의 가면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지 그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뚫어져라 가면을 쳐다봤지만 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마술사의 트릭(trick)을 알아내기 위해 영롱하게 빛발하던 시선이 결국 잿빛처럼 변해 버리듯.


난 나풀거리는 기괴한 복장에 자꾸만 시선을 빼앗겼고, 공연자의 날렵한 몸 놀림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던 것이다.




마지막은 공연자가 모든 가면을 벗어버린 채 맨 얼굴을 드러냈다.


공연자는 당연히 남자였고, 의외로 앳되보이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에게서 박수와 환호성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나 역시 처음 접한 변검술에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맺는 계관(係關)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자조(自嘲)했다.





사실 중국 내에서도 사천(四川)지방에서만 전수된다는 변검술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천 지방이 아닌 타 지방 사람들에게도 전습(傳習)되고, 심지어는 외국인에게도 전수(傳受) 된다고 하니 그 비법이 여성에게 전수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21세기이고, 당신이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전 세계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미없는 연애 소설에 항상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이별 장면을 엮어본다.



여자가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며 말한다.


냉정한 표정의 가면이다.


"우리 헤어지자"


남자가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며 말한다.


놀란 표정의 가면이다.


"이유가 뭐야?"


여자는 가면을 바꾸지 않고 말한다.


"이유? 그런 걸 설명하고 당신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진 않았겠지"


남자가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며 말한다.


비참한 표정의 가면이다.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거니?"


여자가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며 말한다.


냉소하는 표정의 가면이다.


"사랑? 당신은 아직도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어?"




그렇게 계속해서 가면을 바꿔치기 하다 보면 결국에 남는 건 맨 얼굴이다.


변검술의 기본 원리는 그렇다.


아마 이별의 순간이란 것이 있다면, 서로가 가면을 바꿔치기 하다 결국에 맨 얼굴이 남게 될 때.


그 때가 이별의 순간일 것이라 확신했다.


어찌되었든 현 시대의 관계란 주어진 가면을 바꿔치기하는 동안에만 지속되기 때문이다.





가면을 바꿔치기 하며 지속되는 관계.


변검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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