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잡문(旅行雜文)

발주악벽(發走惡癖)

by 빛의 예술가 2013. 11. 9.

에게해가 치감아 돌고 있는 그 낯선 항구 도시에서 녀석들을 만난다.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말 두필.


발주악벽(發走惡癖)이라도 있을까?


해변을 끼고 돌기만 할 녀석들에게 눈가리개는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녀석들을 관찰하던 중 당신들이 생각났다.


당신들 말이지, 지금 눈가리개까지 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중인 당신들 말야. 지금 그 눈가리개를 벗으면 아름다운 바다가 옆에서 펼쳐질 거라는 건 알고 있어?


당신들에게 발주악벽은 악벽이 아니야.


진입불량, 발주 고착, 돌출, 모조리 지금의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두 발로 대지를 지탱하고 서서 어디든지 몸으로 부딪히며 세상, 나아가 자아를 깨닫는 일이지 앞만 보고 달리기 위해 눈가리개를 쓰고 달릴 준비를 하는게 아니야.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면 뭐해?


돈을 많이 번다고? 집을 살 수 있다고? 경력을 쌓을 수 있다고? 높은 등급의 배우자와 결혼을 할 수 있다고? 돈 몇푼에 꿀리지 않는 당당하고 씩씩한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불안한 미래에 멋지게 대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다고? 동창회 가서 어깨 펴고 양주 까고 싶다고? 나보다 못 버는 친구 은근히 깔보며 학창시절의 나쁜 기억 보상받고 싶다고? 별장 하나 짓고 멋진 노후 보내고 싶다고? 개인 변호사에게 유언장 남기며 끝까지 돈 많은, 멋진 부모로 남고 싶다고?


그래. 다들 멋진 일이긴 해. 그런데 눈가리개 쓰고 앞만 보면서 달리면, 


지금, 당신 옆에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없잖아.






당신이 원하는 돈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 만큼, 내겐 그 정도로 바다가 중요해.


난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눈가리개. 앞만 보고 달리기 위해 옆은 아예 볼 수 조차 없게끔 설계된 그 눈가리개.


벗어던지고 한번쯤 분탕질쳐보는 게 어떨까?


가지 말라는 곳으로 한번 가보고.


가라고 할 때 기다려도 보고.


갑자기 어디론가 튀어나가 보기도 하면서.


오만가지 발주악벽(發走惡癖)을 가져보는건 어떨까?


적어도 당신이 누가 빨리 달리나 경쟁하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라면 말이야.




Oct 2013. Kusadasi, Turkey.


권문경





'여행 잡문(旅行雜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의 일상화에 대한 경계  (4) 2013.11.13
열정과 삶에 관한 잡설  (0) 2013.11.11
마케도니아 국기와 축제  (0) 2013.11.06
변검술  (0) 2013.11.04
India's same. not changing.  (0) 201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