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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잡문(旅行雜文)

마케도니아 국기와 축제

by 빛의 예술가 2013. 11. 6.

 

마케도니아에 도착했다.

 

불가리아 사람들 보다 잘 웃으며, 예상외로 따듯와 날씨에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를 보며 생긋생긋 웃던 찰나 그 것을 발견하고 내 인상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다.

 

마케도니아 국기였다.

 

그래, 욱일승천기를 빼닮은 국기를 어느 나라에선가 사용한다고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게 이 나라였구나.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지만 어디를 가도 욱일승천기를 쏙 빼닮은 자국기가 펄럭이는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Skopje)에서 난 봉화제를 떠올렸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일제 극우 세력의 침략을 정당화하며 그 아래 빌붙어 성장한 친일 세력이 득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록과 소설에 의존해 시대를 조명해 보자면 한민족이 한반도(혹은 대륙)에 기틀을 잡은 지 반 만년 이래 가장 처참했던 시간이라 평할 수 있겠다.

 

자국의 여학생이 독립을 부르짖다 형무소에 갖히고 갖은 고문에 이어 산채로 찢겨 죽임을 당했는데도 우리는 자력으로 시체조차 돌려받을 힘이 없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충청남도 천안시에서는 매년 3월 1일 전야제 때 축제를 한다.

 

그 여학생의 고향이 천안시 병천면에 소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화제'란 이름의 그 축제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들끓고 있는 축제 같지도 않은 축제들 가운데 과연 독보적인 존재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돈 벌자고 하는 축제가 아니라는 것.

 

2007년 나도 봉화제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유관순을 연기하는 여학생의 '대한 독립 만세'를 필두로 수 천 명의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을 하는 모습이 압권인데, 난 얼떨결에 행진의 맨 앞줄에 서게 되었다.

 

왼 손에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오른 손에는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맨 앞줄에 선 사람들은 유관순이 외쳐대는 '대한 독립 만세'를 제대로 복창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앞 줄에 선 사람들을 주욱 쳐다봤다.

 

모두가 남자였고, 한결같이 정장 차림이었다.

 

우스꽝스럽게도 명찰을 가슴팍에 달고 있었는데, 모두 높으신 분들이었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맨 앞줄을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이 투입되어 일반 시민의 행진과 맨 앞줄의 높으신 분들 간에는 5미터 정도 간격을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공권력은 참 열심히 일했다.

 

혹여나 시민들이 쥐고 있는 횃불이 높으신 분들께 가까이 접근해 뜨겁지 않도록 방어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한 밤에도 일하고 있었다.

 

10분 정도 행진을 했을까?

 

소형 앰프를 쥐고 있는 일본 순사 연기를 하는 학생들이 대열을 막아선다.

 

"조센징들, 어서 대열을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라!"

 

준비된 장총에서는 화약 터지는 소리가 리얼하게 울려 퍼진다.

 

유관순을 연기하는 여학생은 이미 쉴 대로 쉬어버린 목소리를 쥐어짜듯 다시금 외친다.

 

"대한 독립 만세"

 

그리고 행진은 계속된다.

 

순사들은 도망을 간다.

 

아직까지 높으신 분들은 맨 앞줄을 유지하고 있었다.

 

 

 

 

30여분 쯤 걸었을까?

 

독립을 외치는 대열은 병천 면내로 진입한다.

 

확성기가 꺼지고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횃불을 준비된 드럼통에 버려달라고 외치며 돌아다닌다.

 

지금까지 유관순의 바로 뒤에서 거만하게 걸어온 높으신 분들은 어디선가 기념사진을 찍으더니 준비된 검은 차를 타고 돌아간다.

 

그제서야 난 궁금해졌다.

 

'1919년 그 날, 높으신 분들은 과연 대열의 어디쯤에서 민족과 조국의 독립을 외치고 계셨을까?'

 

아니.

 

'1919년 그 날, 높은신 분들은 민중의 대열에 합류하긴 하셨을까?'

 

 

 

 

마케도니아에 도착했다.

 

어딜가도 펄럭이는 국기가 조금 거북하긴 하지만 괘념치 않기로 한다.

 

아무렴 어떤가?

 

이미 지난 일인데.

 

이건 욱일승천기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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