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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070428)미필적 고의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인도를 걷다 횡단보도를 만난다.

 

좌측에 있는 차들은 보행자용 신호등 옆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신호등따위를 무시하기때문에 항상 조심해야한다.

 

하지만 난 조심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오늘도 왼쪽에서 신호를 무시한 채 우회전을 하는 차에 갑자기 뛰어들었다.

 

미필적 고의.

 

차는 예상대로 급정지를 한다.

 

마음속으로 이겼다는 생각에 통쾌하게 왼쪽을 쳐다보니 운전자는 내 눈을 피해버린다.

 

젊은 남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른쪽에 탑승해 있는 젊은 여자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뒤쪽에 앉아있는 두명의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 상황이 재미있어 계속해서 운전자를 바라봤지만 내 눈을 마주치려하지 않는다.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걸 아는 것이다.

 

단순히 차림새로.

 

많은 끈이 붙어있는 카고바지에 이상한 그림과 글씨가 난무하는 반팔 티셔츠, 치렁치렁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밀리터리 매쉬캡에 헤드폰을 쓴 뿔테를 낀 남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서 굴러먹든 간에 '착실한'인간은 아닐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매스꺼웠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위에서 식도까지 위액이 전달되는 듯한 느낌이다.

 

4명의 우둔한 인간들을 뒤로한 채 나는 계속 보도를 횡단한다.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는 것은 무시한채.

 

도로를 횡단한 후 뒤를 돌아보자 사람이 없는데도, 보행자용 신호등에 파란불이 깜박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 정지해 있는 4명의 우둔한 인간들이 타고 있는 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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