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장맛비가 사정없이 대지를 향하던 그 시간.
생전 처음 가 보는 차갑디 차운 외딴 그 곳.
지리산의 이름없는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광풍이 내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싫어했던 사람들의 부재가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내 귀가 베토벤의 '비창'을 외워버리는 그 순간.
지금까지의 삶에 회의가 시작된다.
그냥 이대로, 난 괜찮다고 우겨왔던 시간들에 대해서...
이건 실화다.
혼자서 기차여행을 했던 1달전 쯤의 이야기.
지리산자락 구례라는 곳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다.
건축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의 찜질방에 들어가니 손님이 나 혼자뿐이었다.
평수는 100평가량.
보석방에도 들어가보고,
얼음굴에도 들어가보고,
남자수면실에도 들어가보고,
여자수면실도 힐끗 쳐다봤다.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보고,
흡연실도 찾아가보고,
문이 닫혀버린 푸드코트도 관찰하고,
전동 안마기가 있는 쪽도 가 보았다.
사람은 없다.
단 한명도.
믿을건 여자 화장실.
난 미친듯이 여자 화장실을 노크한다.
다 죽어가는 쭈그렁 할망구라도 있으면 좋겠으니, 대답하라고 외친다.
설마 하는 마음에 1층에 있는 카운터로 내려가본다.
아까 내게서 6,000원을 받았던 사장도 없다.
무서웠다.
그런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난 우스꽝스럽게 생긴 찜질방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이 날이 혼자 여행을 시작해,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은 지 5일 째 되는 날이었다.
난 그렇게 스스로 감금된 채로 10시간이 넘게 버틴다.
우습게도 그 시간동안, 난 TV를 본다.
바보같이 생긴 상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10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웃는다.
크게 웃어본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생각하면서.
찜질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음껏 소리를 질러본다.
수십개의 베개를 바닥에 깔아 시트처럼 만들어버리고
그 위에 이불을 3장 정도 깔고 눕는다.
그렇게 난 잠이 든다.
현대문명의 가운데서, 난 그런류의 고독감을 맛 봤다.
아마 그 날이 내 청춘의 끝자락이었던 것 같다.
일그러진 극한의 고독.
그 고독이 내 청춘마저 일그러뜨리고
난 세상을 향해 백기를 들어올린다.
그리곤 잠에서 깨어난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찜질방 옷을 입은 채 바깥으로 나가 캔맥주를 마신다.
이젠 이런 옷을 입은채로 당당할 수 있다.
청춘은 끝났으니까.
'단상(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70923)첫번째 낙서 (0) | 2013.04.16 |
---|---|
(20070922)A Short Fiction #7. (0) | 2013.04.16 |
(20070908)변명 (0) | 2013.04.16 |
(20070906)A Shoft Fiction #6. (0) | 2013.04.16 |
(20070902)미쳐돌아가는 세상 (0) | 2013.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