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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070912)한 여름밤 끝장나버린 내 청춘에 대하여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한 여름.

 

장맛비가 사정없이 대지를 향하던 그 시간.

 

생전 처음 가 보는 차갑디 차운 외딴 그 곳.

 

지리산의 이름없는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광풍이 내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싫어했던 사람들의 부재가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내 귀가 베토벤의 '비창'을 외워버리는 그 순간.

 

지금까지의 삶에 회의가 시작된다.

 

그냥 이대로, 난 괜찮다고 우겨왔던 시간들에 대해서...

 

 

 

 

 

이건 실화다.

 

혼자서 기차여행을 했던 1달전 쯤의 이야기.

 

지리산자락 구례라는 곳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다.

 

건축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의 찜질방에 들어가니 손님이 나 혼자뿐이었다.

 

평수는 100평가량.

 

보석방에도 들어가보고,

 

얼음굴에도 들어가보고,

 

남자수면실에도 들어가보고,

 

여자수면실도 힐끗 쳐다봤다.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보고,

 

흡연실도 찾아가보고,

 

문이 닫혀버린 푸드코트도 관찰하고,

 

전동 안마기가 있는 쪽도 가 보았다.

 

사람은 없다.

 

단 한명도.

 

믿을건 여자 화장실.

 

난 미친듯이 여자 화장실을 노크한다.

 

다 죽어가는 쭈그렁 할망구라도 있으면 좋겠으니, 대답하라고 외친다.

 

설마 하는 마음에 1층에 있는 카운터로 내려가본다.

 

아까 내게서 6,000원을 받았던 사장도 없다.

 

무서웠다.

 

그런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난 우스꽝스럽게 생긴 찜질방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이 날이 혼자 여행을 시작해,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은 지 5일 째 되는 날이었다.

 

난 그렇게 스스로 감금된 채로 10시간이 넘게 버틴다.

 

우습게도 그 시간동안, 난 TV를 본다.

 

바보같이 생긴 상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10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웃는다.

 

크게 웃어본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생각하면서.

 

찜질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음껏 소리를 질러본다.

 

수십개의 베개를 바닥에 깔아 시트처럼 만들어버리고

 

그 위에 이불을 3장 정도 깔고 눕는다.

 

그렇게 난 잠이 든다.

 

현대문명의 가운데서, 난 그런류의 고독감을 맛 봤다.

 

아마 그 날이 내 청춘의 끝자락이었던 것 같다.

 

 

일그러진 극한의 고독.

 

그 고독이 내 청춘마저 일그러뜨리고

 

난 세상을 향해 백기를 들어올린다.

 

 

그리곤 잠에서 깨어난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찜질방 옷을 입은 채 바깥으로 나가 캔맥주를 마신다.

 

이젠 이런 옷을 입은채로 당당할 수 있다.

 

청춘은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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