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4일부터 세상은 조금 단순해졌다.
수 백만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가의 방위를 위해서였으니까.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주어진 K2소총으로 북한군의 대가리를 갈겨버리거나
무지막지한 K511트럭으로 북한군 1소대를 짓밟아버리는게 내 임무였다.
그 당시 난 아주 가끔씩 내 자동차로 사람을 짓밟는 꿈을 꿨다.
오천 사백 킬로그램이 넘는 내 자동차가 사람을 밟는 꿈.
게다가 난 미숙한 운전자가 아니므로 정확하게 사람의 머리를 밟아 터트린다.
6053부대 24호차가 그런식으로 사람을 밟는 동안에 세상은 더욱 단순해진다.
물론 이건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로,
내가 실제로 사람을 짓밟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2년동안 그러한 류의 단순함을 즐겼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작대기 하나가 많으면 필승이라 말하고
나보다 작대기 하나가 적으면 필승이라 인사받는다.
도대체 뭘 반드시 이겨야하는지도 분명했다.
난 짓밟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매주 내 자동차 밑에 기어들어가 각종 오일을 체크하고, 미션과 핫케이스에는 이상이 없는지.
편마모는 없는지.
브레이크오일은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버리자
세상은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수 백만가지 경우의 수가 수 천억가지 경우의 수로 늘어나버렸다.
필승과는 달리 안녕하세요라 말한다.
대체 사람들이 안녕한지 왜 물어봐야하는거지?
물어본다면 무슨 이유로 물어봐야하는거지?
사회화 과정이란 진부한 단어로 치부하기엔 어려운 안녕하세요란 인사부터
무지막지한 응용 단어/문장 까지.
복잡하다.
어쩌면 사람의 대갈통을 작살내버리면 인정받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 나을거라 생각한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문득 내가 사랑했던 6053-24호차는 안녕한지 궁금해진다.
만들어진지 20년이 훨씬 지난 내 자동차.
그래도 내가 시동을 걸 때마다, 북한군 한 소대쯤이야 문제없다고 으르렁댔었다.
갑자기 그 떨림이 그리워진다.
지랄맞게 기어변속도 잘 되지 않던, 파워 핸들도 아니던, 사이드 브레이크는 고장난지 오래고, 안간힘을 써서 밟아야 작동하던 제동장치하며, 순식간에 5단으로 변속하고 내리막 길에서 악셀레이터를 밟았을 때 112km/h의 속력이 나오던 그 계기판까지. 그리고 그 정도의 속도로 달렸을 때 보닛에서 울려퍼지던 팬 벨트의 소리까지
모든게 그리워진다.
이 정도로 그립다면,
인간도 아닌 내 자동차가 안녕한지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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