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하지 않다.
잘 만든 가면은 태초부터 내 몸의 일부였던 것처럼
나와 함께 호흡한다.
마치 무라카미 류의 공생충처럼 뗄 수 없다.
가면이 말한다.
빌어먹을 세상의 작태를 관조하는 자세가 필요해.
네가 반드시 참여할 필요는 없어.
네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나서서 화염병을 던질 준비는 되어있으니,
어줍잖게 앞에서 사람들을 선동하지 마.
논리적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비논리적인 것에 더 쉽게 설득당한다.
가면은 그 사실을 간파한다.
토끼의 귀를 절단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지.
하지만 오가며 네가 밟은 수천마리의 개미는 안중에도 없어.
예를 들어 전자기타를 연주하다 줄이 끊어진다면 넌 슬퍼하겠지.
하지만 통기타를 연주하다 줄이 끊어진다면 슬퍼해선 안돼.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볼까?
네가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네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네가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네 기분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겠지.
두 가지는 다르지 않아.
빌어먹을 정도로 참혹하다.
가면은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우심방 좌심실에서 쏘아대는 피를 공급받아 성장하고 있다.
급속도로
가면은 너무 커버린걸까?
그런 걱정을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상황이 종결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난 가면을 벗지 않는다.
가면은 우리의 웃음을 지켜주듯이
난 가면을 지켜준다.
어쩌면
가면은 내 사지가 절단되는 그 순간에도
웃고 있을것이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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