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흰 네모판이 두려워지기 시작하였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봐도 네모판은 네모판일 뿐, 둥그런 원 따위나 세모가 될 수 없기 때문이오.
사실 외형적인 특질을 고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몇 걸음 진일보하여 네모판을 바라본 적이 있소.
거기서 얻었던 지혜는 아무것도 없었소.
단지 네모판이 희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오.
만약 '이 네모판이 검은 색이었다면' 하고 생각해볼 때가 있소
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리면,
더 이상 이 네모판은 흰 네모판이 아닌게 되어버리오.
검은 네모판은 흰 네모판이 될 수 없기 때문이오.
하지만 흰 네모판은 검은 네모판이 될 수 있소.
흑(黑)과 백(白)은 하나이지만, 백(白)과 흑(黑)은 둘이기 때문이오.
그런 단순한 이치와 섭리로 당신과 지구가 공전하는 것이오.
어쩌면 지구란 녀석은 공전을 넘어서 공존을 도모하고 있는지도 모르오.
물론,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오.
지구별이 검은 네모판처럼 변해버리면,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기 때문이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오.
이미 끝나버린 사랑을 추억하는 것 만큼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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