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책을 읽었습니다.
부정과 나태, 자괴따위로 얼룩져버린 면상이 마음에 들지않아, 깨끗이 세안을 할 요량으로 책을 읽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빠지지 않습니다.
더불어, 가네시로 가즈키의 읽지 못했던 소설을 한 권 빌리고
조지 오웰의 1984년도 함께 빌렸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홀로서기란 형편없는 책을 마지막으로 합니다.
차가운 스위치를 끄고, 문을 활짝 열어 새벽의 바람을 맞으며
스탠드와 노트북 모니터에서 발하는 은은한 빛을 이용하여,
책을 읽었습니다.
가장 처음에 읽었던 책은 필리핀 여행기.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왜 이런 책을 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네이버란 녀석이 있거든요.
오히려 출간된지 시간이 지났으니, 녀석보다 부정확한 지식을 담고 있는 그의 책을 읽으며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읽었던 것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1973년의 핀볼'
이 소설은 조금의 과장도 없이 10번은 족히 읽은 소설입니다.
그리고 제 특유의 문체는 모두 이 소설에서 배운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하루키의 모든 소설이 그러합니다)
당신과 제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하루키를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한 가지 두려운 사실은, 당신이 하루키의 문체를 좋아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서 배운 글을 바탕으로 하루키를 모방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상'의 아류작을 생산해내는 기분이라고 하면 제 마음이 조금 이해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참, 이상을 생각하니 최근 개봉한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오감도란 영화인데, 이상의 초현실주의 시인 오감도와 같은 제목입니다.
물론 형편없는 영화였습니다.
이상에게 현 세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듯이 부끄러웠습니다.
섹스하는 장면도 형편없었고, 주어를 배제하고 목적어만 존재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던 필리핀 여행기와 느낌이 비슷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의 소설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가네시로 가즈키야 언제나 그랬듯이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다 읽을 것이고,
조지오웰의 1984년은, 하루키의 신작을 읽기 전에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음...
이렇게 쓰고나니 저의 하루는 유희와 하루키를 위해 존재했던 하루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당신이 하루키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제가 드리는 말이 형편없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으실겁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현재는 하루키 이외의 어떠한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기분이니까요.
당신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아마도 어제 읽었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때문일 것입니다.
주인공이 말합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천국에 계신 당신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오후입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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