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에 새 식구가 생겼다.
하얀털이 복실복실하여 매우 사랑스럽게 생겼으며, 나이는 1,2살 가량으로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날아온 그레이트 피레니즈로 추측된다.
사실 강아지의 귀여움은 종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보내는 신뢰의 메시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내게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는 이 녀석은 정말 귀여웠다.
그러던 어느날,
그 집 옆을 지나갈 때마다 또각거리는 내 구두소리에 반응하듯 왕왕거리는 그레이트 피레니즈의 목소리에 반하게 된다.
가야금 산조를 즐겨듣는 내게, 현을 퉁길 때마다 들리는 왕왕거림은 골치가 아플 정도였다.
책을 펼쳐보아도, 한 밤중의 섹스 시간에도,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있어도 녀석의 왕왕거림이 생각났다.
그래서 난,
당연하게도 이웃집 강아지를 투절하기로 마음먹는다.
범행의 시작단계에는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치즈와 개사료, 그리고 1등급 한우 등심이 녀석을 유인하게 된다.
유괴의 기본원칙에는 신속함과 정확함이 있다.
상대가 아무소리도 내지 못할정도의 찰나의 순간에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녀석을 유인하게 되면 그 특유의 왕왕거리는 소리를 방어하기 위해 GIP마취총 한정을 구입했다.
지인은 내게 총을 건네며 말했다.
'사람이라도 납치하려는가?'
그 질문에는 생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총신을 거꾸로 잡아 무게를 가늠한다.
다음으로 행한 일은 녀석의 목에 감겨있는 튼튼한 쇠줄을 제거하기 위해 가벼운 고속 절단기 하나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시험삼아 철물점에서 산 쇠줄을 잘라보았는데 정확하게 8.2초가 걸렸다.
녀석의 목에 걸려있는 쇠줄보다 훨씬 두껍고 강해보이는 쇠줄이었기에 안심한다.
그리고 범행의 마무리.
녀석을 목적지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인피니티의 g37이 동원된다.
강아지를 납치하는데 볼보의 스테이션 웨건을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로도 정해두었다. 한남대교를 지나 강변북로를 타고 자유로로 이동한다. 장항 IC에서 빠져 mbc를 지나 친구의 오피스텔로 향한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만일 GIP마취총을 제대로 발사하지 못하였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왕왕거림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두었다.
내 인피니티 g37 뒷자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핵전자기펄스가 그 것이다.
일단 강아지가 왕왕거려 주인이 깨어나더라도, 핵전자기펄스를 가동해 주인집에서는 어떠한 곳에도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된다.
컴퓨터는 물론이거니와 핸드폰 또한 먹통이 된다.
게다가 강아지를 구출하러 현관 밖으로 뛰어온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가 현관문에 장력해재식 부비트랩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들이 강아지를 구출하러 뛰어오는 순간 현관 위 천장이 무너지며 그들은 현관으로 나올 수 없게 된다.
물론 이웃집의 창문에는 방범용 창살이 설치되어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창살을 자르고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한 5분이다.
결국,
그들은 어느 곳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게된다.
내가 마취총을 제대로 발사하지 못해 주인이 강아지의 애처로운 구원의 왕왕거림을 듣는다면
그들은 정말 재수없게도
눈 앞에서 사랑스런 강아지가 납치되는 광경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계획을 세우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고가에 구입한 핵전자기펄스를 100%믿을 수 없기에 또 한번의 대안을 꾸민다.
그들이 경찰과 접촉하는데 성공한다면, 상대는 경찰로 전환된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며 경찰과 싸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난 가장 가까운 파출소에서 출동하는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 근처 파출소를 검색한다.
경찰차로 파출소에서 집 앞까지 오는데 신호등을 2번, 사거리를 한번 지나야한다.
시험삼아 서른번쯤 주행해봤지만 10분 전엔 절대로 도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소짓는다.
그 파출소에서 람보르기니 경찰차를 이용해 출동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 가능성은 배제하기로 한다.
범행 당일날 이용할 소모품에는
프라다 가죽 장갑과 페라리 블랙, 동대문에서 삼천원에 구입한 복면형 털모자, 알텐바흐의 작고 가벼운 식칼 그리고 나이키에서 구입한 러닝슈즈를 확인한다.
그 외 불필요한 악세사리는 모두 내 몸에서 제거한다.
저 멀리서 이웃집의 그레이트 피레니즈가 왕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GIP마취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목표물을 향해 발사하는 시늉을 해본다.
웃음이 절로난다.
이제 내일 이 시간이면 이웃집의 그레이트 피레니즈는 나의 것이다.
-범행 3일 후-
설거지를 하던 중 남편이 내게 묻는다.
"그런데 이 강아지는 산거야? 귀엽게 생겼네"
대답한다.
"마음에 들어?"
그는 되묻는다.
"응 귀엽게 생겼네."
씨익
웃는다.
아직 내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내가 수 천만원을 들여 강아지 한 마리를 납치한 이유를,
그는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모른다고 해서 아무런 손해를 볼 것이 없다는 듯한 말투이다.
하지만 남편도 곧 알게될 것이다.
남자들이란 이야기가 끝장날 무렵 정신을 차리는 족속들이니 말이다.
녀석은 나를 보며 왕왕거린다.
나도 웃으며 녀석의 목소리를 흉내낸다.
"왕왕"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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