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900m의 속도로 내게 다가와 파릇한 풍광과 상쾌한 향을 발하던 봄이 올해는 늦다.
체감온도는 여전히 영하권이며, 두꺼운 윈드브레이커를 비웃듯이 시베리아 북풍이 몰아친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시지'
애초부터 바람은 내 몸 구석구석을 기억하고 있다.
날카로운 예조를 지나 뼈마디, 잔근육에서 머리카락의 시간까지 가늠한다.
그리고 내게 속삭인다.
'아직 눈물은 나지 않겠지'
어쩌면 바람은 내 몸 뿐만이 아닌 오장육부까지 샅샅이 훑고 지나가버린다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 봄을 기다리던 내게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사람이 다가왔다.
하얀 날개를 달고 나풀거리는 움직임으로 무리지어 다가와 나를 세차게 밟고 걷어차던 존재의 발길질에서 난 일말의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순수한 냉혹
난 피를 토하고, 살려달라 애원하고, 촌음동안 반항하였으며, 머리를 땅에 박은 채 꺽꺽소리를 냈지만 그들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계속 내게 발길질을 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지경으로 당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더욱 굳은 표정으로, 많아진 머릿수를 조금은 고뇌하며 여전히 나와 동시대를 호흡하고 있다.
그랬었다.
그 공간은 너무나도 차가워서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어쩌면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은 삽시간에 결정체가 되어 눈꺼풀에 매달려있었으리라.
그리고 눈물을 흘리려 하면 할 수록 내 눈을 찔러오는 날카로운 결정체가 너무나도 아파서 또 다시 결정체를 만들어냈었다.
그 악순환의 반복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던 굴욕적인 시대상과도 같았다.
그때 내 결정체를 녹이던 사람이 있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채 내 기억속에만 존재할 그 사람은
천천히 다가와 나를 안았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따뜻한 피가 돌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던 손과 발은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으며
아주 편안하게 심호흡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얼어붙은 결정체가 녹아 뚝뚝 소리라도 낼 것처럼 세차게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매년 봄이오면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에스티로더 플레저 인텐스의 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따뜻하고 날카로웠던 향
내 결정체가 수직낙하해 천천히 젖어가던 어깨와 조금은 아플 정도로 길었던 손톱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쓰레기통 속의 맥주캔
옷장 안에 혼재한 겨울옷과 봄옷
이 모든것이 내게 말한다.
'봄이다.'
점순이와 점돌이가 사랑하던 봄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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