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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00516)26살의 표류기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유일한 방법은 구심점을 찾는 것이다."

 

 

방향을 잃고, 목적을 잃고, 의지마저 잃어버린 채 엎드려 울고 있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돌아가는 세상 속 표류하는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님을.

 

더불어 그 방황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평생동안 어디로 흘러가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혹은 짐작대로만 흘러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버텨야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고통스러운 무언가가 끝나길 기다리고, 실제로 곧 끝날 것이란 몽상 속에 빠져있지만

 

착각일 뿐이다.

 

 

사실 그 것은 평생동안 그를 따라다니며 구심점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폭풍이 될 것이다.

 

또한 그 정면의 아름다움이 아스라히 사라지는 대양의 파도처럼 묻어나 그를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배면의 잔혹함은 따뜻한 봄날 사랑의 기억따위를 말살하고 냉혹한 웃음을 견지할 것이다.

 

 

그렇게 그는 뫼비우스의 띄에 서 있는 한 마리의 다람쥐처럼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길 위에 서게 된다.

 

뫼비우스가 쳇바퀴보다 더 잔인한 점은,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가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는 것이다.

 

사실은 쳇바퀴나 마찬가지로 그 영역을 벗어날 수 없음에도, 그에게 헛된 희망만을 심어주게 된다.

 

하지만 띄를 달리지 않을 수도 없다.

 

띄는 굉장히 얇은 조직으로 형성되어, 천천히 앞으로 나갈 때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쳐 오랜 시간 한 군데 서 있게 되면 띄는 산산이 조각나게 된다.

 

-the end-

 

 

 

일각의 시간동안, 세상을 표류하던 나는 내 머릿속까지 표류하는 베네치안 갤리어츠마냥 대양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살면서 별 소리를 다 들어본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아마 내 위로가 거짓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로를 할 수 밖에 없는 내 마음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입꼬리를 올려 웃어본다.

 

그도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그래 웃어야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척박한 웃음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대항해시대가 도래했다.

 

뛰어난 조타수가 한명쯤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해줄 수 있는

 

성소수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여자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거울 속의 그 남자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양을 표류하는 베네치안 갤리어스처럼

 

나 역시 그러하였고,

 

언젠가는 지구별 여행을 마친 채 럼주를 마시며 술집 여급에게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늙어가는 것도 바람직한 결말이라 느꼈다.

 

 

혹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부여잡은 채, 사실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노라고, 상황따윈 중요치 않노라고 우겨대며

 

그녀를 곁에 둔 채 서로의 역사를 탐닉하며 나의 구심점은 그대였노라고 노래하며,

 

늙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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