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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00602)꼴 좋군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꼴 좋군"

 

 

그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쓰라렸다.

 

누군가가 내게 욕을 할 때도, 지랄 섞인 염병을 하더라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쓰라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말을 듣고 난 후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훌쩍 거리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휴지걸이로 오른손을 뻗었지만 틱틱 소리만 날 뿐이다.

 

제기랄 휴지가 없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바깥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떠들거면 화장실 밖에서 떠들 것이지..'

 

소심한 반항심이 솟아오른다.

 

다시 한번 휴지걸이를 바라봤지만 휴지는 없다.

 

물론 몇 걸음 밖으로 나가면 세수를 해서 눈물 자국을 닦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 찰나의 순간 마저도 울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싫었다.

 

이름 모를 사람에게, 두 눈이 발갛게 충혈되어 눈물자국이 그려진 두 볼을 보여주기 싫었다는 소리다.

 

.

.

 

아직도 화장실에서 잡담을 하는 무리는 나가지 않았다.

 

직업이 화장실을 지키는 근위대인 모양이다.

 

 

마음같아서는 꽥 소리를 질러 임무 수행을 방해하고 싶었지만

 

카타르시스의 정화를 느끼고 난 후라 그런지 내 숭고한 입에 욕설을 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난 5분 가량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

.

.

 

 

미친

 

저 인간들은 정말로 화장실을 투철하게 지키고 있었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대체 뭘 지키고 있는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이 곳은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 아닌 배설을 하는 공간이라고 똑똑히 가르쳐주고 싶었다.

 

 

난 혼자서 울고 눈물을 닦아야하는데 놈들은 내게 일각의 시간조차 부여하지 않는다.

 

혹시 놈들이 수행하는 임무라는 것이 내가 세면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놈들이 임무를 종료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철컥

 

화장실의 잠금장치를 풀고 바깥으로 나간다.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화장이 지워지지 않게끔 두 볼에 묻은 자국을 지워내려갔다.

 

 

"꼴 좋군"

 

입에서 그 말을 되뇌어본다.

 

꼴 좋군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눈물 자국을 닦으며 히죽히죽 거리는 동안 마스카라가 눈물에 젖어 흐르는 것조차 잊은 채 또 울어버린다.

 

 

임무를 교대한 또 다른 화장실을 지키는 근위대가 들어오고,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난 부끄러워 미친 척을 할까 생각을 했지만

 

그 것이 더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 같아 그만둔다.

 

 

그렇게 난 오후 내내 화장실에서 울며 깨달았다.

 

 

'다음에 마스카라를 살 때는 방수효과가 있는 제품으로 사야겠구나'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