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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00624)에리히프롬과 데오드란트 두번째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사람이 꽤나 많았다.

 

어제는 파워워킹을 하던 여학생 삼총사, 홀로 질주를 하던 남학생

 

손을 꼭 잡고 걷던 커플 한쌍

 

배가 조금 나온 50대 아저씨 한 분

 

두명이서 업치락 뒤치락 사이좋게 뛰며 역겨운 냄새를 풍기던 두 명의 남학생

 

그리고 나

 

도합 10명의 사람이 운동장을 뛰었는데 오늘은 그 보다 많았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조금은 피곤한 심신을 이끌고 트랙위에 멈춰선다.

 

Kiss의 1978년 발매된 앨범 Ace Frehley의 6번 트랙인 New york Groove의 웅장한 베이스에 맞춰 질주를 시작한다.

 

 

 

당시 난 어렸고 사랑을 알 리가 만무했다.

 

선물을 주고, (내 주관에 따른)사랑스런 눈빛을 보내고, (상대의 속마음을 헤아리진 않았지만)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여겼었다.

 

그와 더불어 사랑조차 모르던 그 시기에 불완전한 현실감각까지 동일선상에서 진행시키려 하였다.

 

아마 그녀에겐 그러한 사유(思惟)가 불쾌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한 사유(事由)로 사랑은 카타스트로프로 치닫는다.

 

어쩌면 난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디제시스 속에서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디제시스 사운드를 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이 논리대로라면 그녀는 나를 주인공으로 삼은 넌디제시스 속에서 나를 매개체로 미메시스를 발견했을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공간속에 묶여 전혀 다른 시간을 공상했던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죄인에 불과했다.

 

우리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없었겠지만 따사로운 눈빛을 보낼 이도 존재치 아니했다.

 

이러한 '차이'가 카타스트로프를 만들고, 시간이 지난 지금 디제시스를 회상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모두 그러했듯이.

 

 

 

하지만 난 조금 다르다.

 

모든 상황이 종결되었다고 착각한 시점에서 또 하나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

 

난 연역 추리의 형식적 오류를 범한 마냥 가슴이 쿵쾅거렸다.

 

마음이 '아프다', '슬프다', '고통스럽다'란 동사와는 별개로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제와 같이 트랙 12바퀴를 돌고, 어제완 달리 23분에 그 모든 일을 행하며

 

그 때의 내 심장처럼 다시 한번 가슴이 뛰기시작했다.

 

 

 

귓가에는 Kiss의 I'm in need of love가 울려퍼지고

 

다소 쌀쌀하지만 청아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플라톤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의 사랑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사랑을 이데아로 삼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러한 고민자체를 중단한 채 소크라테스를 공부함이 옳다."

 

가끔은 플라톤도 옳은 소리를 한다.

 

 

 

오늘은 당신과의 기억을(혹은 사랑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을 빌어 정리하였다.

 

점점 문제의 실마리에 접근하고있다는 느낌은

 

전혀들지 않는다.

 

 

 

 

 

 

하지만 칸트가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내일은 광대보다 우스꽝스러웠던 나의 유치한 이야기에 대해 정리하도록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