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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00627)에리히프롬과 데오드란트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나는 왜 사랑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가'

 

라는 주제로 생각을 하며 뛰었다.

 

 

예전부터 혼자서 뛸 때는 심심하기 때문에 무언가 주제를 잡고 트랙을 질주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오늘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아 조금 오랫동안 뛰었다.

 

파워워킹을 하던 여학생 삼총사를 여섯 번 정도 제쳤으니 운동장을 12바퀴정도 뛴 셈이다.

 

5km

 

적당한 거리다.

 

 

첫 번째 트랙을 돌 때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꾀한다.

 

과연 그 명제가 진실인지, 어리석은 질문은 아닌지 자문한다.

 

 

두 번째 트랙을 돌 때는 문제에 대한 접근을 행한다.

 

사랑이라는 것의 범위를 국한할 필요가 있다.

 

내겐 사랑과 동의어인 에리히 프롬의 말씀에 따라, 사랑을 연인과의 사랑에 국한하기로 한다.

 

 

세 번째 트랙을 돌 때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접근법에 대해 고민한다.

 

존경해 마지 않는 부모님과 누님을 과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

 

사랑 그 이상의 감정은 아닐까?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그 것도 사랑이라 말했다.

 

 

네 번째 트랙을 돌 때는 에리히 프롬을 예찬하며 질주한다.

 

학자로서 대단한 위용이다.

 

사랑을 구분지어 문자화할 수 있는 능력.

 

역시 나 같은 범인은 계획조차 하지 못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다섯 번째 트랙을 돌았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여섯, 일곱 바퀴를 돌게 된다.

 

우습게도 여덟째 바퀴때는 내가 드디어 게이가 되어버린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뛰었다.

 

애석하게도.. 옆에서 함께 돌고 있는 남자들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역겨운 땀냄새를 풍기는 그 인간의 멱살을 잡고 10m정도 위에 있는 관중석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난 게이가 아닌가보다.

 

아홉 바퀴를 돌 때쯤엔 우리학교 남자 공대생들이 떠올랐다.

 

(물론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저번 학기에는 공학관에서 듣는 수업이 많았기 때문에 자주 공학관으로 찾아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강의실에 꽉 차 있는 정체불명의 냄새때문에 진심으로 역겨웠다.

 

강의를 듣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악취였다.

 

 

열 바퀴를 돌 때쯤엔 그 인간들은 왜 데오드란트를 쓰지 않는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숨을 헐떡였다.

 

 

그렇게 트랙을 질주하던 중 심장이 밖으로 나올 것 같아 속도를 줄여 멈춰선다.

 

25분.

 

꽤나 괜찮은 기록이다.

 

 

 

호흡을 고르고 이온음료를 사러 내려간다.

 

마트에는 두 쌍의 커플이 앉아있었다.

 

포카리 스웨트와 조지아 커피, 비빔면과 팝콘을 산 뒤 방으로 돌아온다.

 

 

오늘은 사랑이 무엇인지 규정하였고, 내가 정말로 사랑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건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였다.

 

아쉬운건지, 다행인건지 내가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아직은 5km정도를 25분에 주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으쓱해졌다.

 

 

아마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달리기의 주제도 프로젝트화 되어가고 있다.

 

 

젠장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