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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00626)에리히프롬과 데오드란트 세번째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이번학기는 입에 불평 불만을 달고 살았지만 그 정도의 부피만큼 인생의 즐거움을 느꼈던 학기다.

 

먼저 당신을 만난 것 자체만으로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스스로 지식노동자를 자처하고 철학과 사회학, 기호학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인류학를 넘나드는 지식을 내뿜는 당신의 기개에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당신에게서 배운 가장 큰 개념은 라깡이나 부르디외, 허버트 마르쿠제등의 사람이 아니라,

 

'타자'라는 개념이었다.

 

모든 철학에 존재하는 타자라는 개념은 자신을 알아가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역설했다.

 

물론 소크라테스적 '지기(知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삼라만상은 피아로 구분되며 아(我)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피였다.

 

 

 

그리고 당신의 그 모습에 반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의 혼잡한 개념을 유치원생에게 가르치는 듯한 그 말투 하며

 

슬림한 블랙 수트를 입고 등장하던 것과

 

'설거지가 뭐예요?'라고 말하는 듯한 부루주아적 눈빛하며

 

그에 위배되는 지식 노동자란 프롤레타리아적 자아성찰까지

 

많은 것이 역설적이었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그런 당신을 좋아했던 것은 현재 내 모습과 가장 달랐던 사람이 당신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게 있어, 당신이 말했던 '타자'는 당신 그 자체로 굳어진 셈이다.

 

 

 

어설픈 문제 제기를 하지 말되, 논리적이지 못한 구성을 경계하며, 사회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한다는 당신의 말에

 

모든 것은 효율적으로 돌아가야하고 성과를 내야하며, 문제란 해결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고정되어 있던 내 관념이 타파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어줍잖은 지식을 고착화시켜 인생을 살아가려 했었다.

 

 

아마 당신이 아니었다면 열등감 넘치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갔을 것이 뻔하다.

 

 

나의 미래에 대한 성찰과는 별개로,

 

이런 모습으로 당신과 첫 만남을 가지고 싶진 않았었다.

 

진심으로 이렇게 만나고 싶지 않았었다.

 

가장 나쁘게 헤어진 전 여자친구와 우연한 기회에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엘리베이터에 우리 둘 밖에 없었고, 둘 다 45층까지 올라가야하는 상황에 필적할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그 것 역시 타자의 조건이라 칭한다면 그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내가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을 또 다른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