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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20110226)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며

by 빛의 예술가 2013. 4. 16.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몸을 뉘었다.

 

왼손 새끼 손가락부터 오른쪽 새끼 손가락까지 차례대로 굽혀본다.

 

특별히 행하는 훈련을 배제한다면

 

지구에 현존하는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들은 그 손가락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냈다.

 

태초에는 이름 모를 장비를 타악기로 변모 시켰으며,

 

점차적으로 멜로디를 만들 수 있는 악기로 변신시켰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한 채 감탄하며 마일즈 데이비스의 So What을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만물의 영장이신 인간들에겐 그다지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워낙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생명체이니 말이다.

 

 

음악은 스테레오파닉스로 바뀌었고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사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는데, 기술의 S-커브 같은 우스꽝스러운 망상만이 가득했다.

 

i Books아이콘에 손을 갖다대자 1초도 걸리지 않아 내가 보유하고 있는 책들이 영사된다.

 

라 미제라블와 제인 오스틴의 엠마, 김유정 단편집을 비롯해 어린왕자도 있었다.

 

당연히, 김유정 단편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서이다.

 

나는 4개 국어를 구사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모두 무시하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누른다.

 

나 역시 젖소모양의 목베개를 베개위에 올려두고 비스듬한 자세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물 끓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가 올려둔 물이었다.

 

머그컵에 오사카에서 사온 북해도의 목장 우유맛이 난다는 커피를 쏟아부었다.

 

달콤한 향이 방을 감싸고  침대는 포근했으며, 변신은 황홀했다.

 

중국어 선생님 혹은 유학생 친구가 선물로 준 정체모를 중국 전통 과자를 야금야금 먹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필리핀에서 사온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영문 번역본이 눈에 들어왔는데,

 

Murakami  Kafra on the Shore라고 제목이 붙어있었다.

 

세상이 온통 카프카로 가득 차 있었다.

 

 

철우와 나리 커플에게 선물로 줬어야 할 '행운의 2달러' 짜리 호주 동전과

 

같은 공간을 점하고 있는 액수 불분명의 홍콩 동전까지.

 

모든 것이 카프카였으며, 변신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밟혀 죽어야했던 주인공.

 

주인공을 소멸시킨 후 일말의 불안 혹은 죄책감도 느끼지 않던 사랑했던 가족들.

 

외려 주인공의 죽음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으며, 희망찬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비일상의 소재는,

 

 

이미 진부하여 소설 깜 조차 될 수 없음에 조금 실망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조차 수필로 만들어 버리는 이 세상이 두려웠다.

 

정반합의 원리로,

 

변신조차 당연시 하는 이 세상이 흥미로워지기도 하였다.